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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스트 오브 블랙 (장강명 소설 <재수사>)
    인용 2023. 6. 10. 18:02

    "우리 때는요, 대학교 주변에 음악 크게 틀어주고 병맥주 한 병 시키면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어두컴컴한 바들이 있었어요. '주다스 오어 사바스'가 그랬고, 그 근처에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곳도 있었고, '폴리스'라는 곳도 있었고……. 이제 다 문 닫았죠. 우리들은 그런 데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주인공 흉내를 내면서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냈어요. 어려운 소설책을 들고 가서 허세를 부리면서 읽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일부러 어려운 용어 써서 아는 척 하면서 문학이며 철학이며 같잖은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요. (…) 그런데 그러면서 머리가 굵어지는 거예요. 진짜 아이디어도 그런 데서 나오는 거고요. 청년들의 상상력을 북돋워주는 공간이니 창의성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니 하는 것들 다 쓸모없어요. 나 무슨 공기업에서 젊은 영화학도들 위해서 만들었다는 공간들 많이 가봤거든요. 그런데 가보면 일단 조명이 너무 밝아. 그리고 거기서 뭘 할 건지 계획서를 보내래. 그런 데서는 시시한 것들만 나와요. 젊은이들에게는 돈 걱정 안 하고 성과물에 대한 압박 없이, 죽치고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그런 곳이 요즘 젊은이들한테는 없어요. 미국 젊은이들한테는 집에 차고가 있어서 그게 돼요. 미국 젊은이들은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도 만들고 얼터너티브 록도 작곡하고 수제 맥주도 만들고 그러는데 한국 청년들은 그러지 못하죠. 저는 대학가에 있는 스몰비어 가게들 가면 슬퍼져요. 빨리 마시고 나가라는 곳이잖아요. 자리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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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재수사>를 자꾸 단편적으로만 소개해 버릇하면, 자칫 이 작품이 가진 미묘하고도 다양한 의미와 흥미를 반감시키게 될까 염려되지만, 그래도 소개드려볼까 합니다. 위 글의 화자는 1970년대 생으로 추정되는데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한다는 사회문화 면에서의 이른바 '20년 격차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화자는 일본의 1950년대 생에 해당되겠습니다. 위의 묘사 일부는 일본의 1970년대의 청년문화를 양성해냈던 '공기'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제가 알고 지내는 어떤 청년은, 이 대목을 읽고서,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시스템』을 공고히 하고, 『시스템』의 자기강화성을 거의 자발적으로 유도해내는, 어떤 의미에서 세련된 통제를 이끌어내는 직간접적 기제에 대한 상세한 통찰"이라는 식으로 해석하더군요. 젊은이들은 사물을 으레 원리의 문제로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지요. 난감하네요.

    장강명 장편소설 <재수사> 알라딘 링크

     

    재수사 1

    발표하는 작품마다 우리 삶과 연관된 가장 사실적인 순간을 포착해온, 그야말로 장르불문의 올라운더 소설가 장강명의 신작으로,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형사 연지혜가 22년 전 발생한 신촌 여대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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