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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피지, 죽간 혹은 풀과 가위
    인용 2023. 5. 27. 18:50

    젊은 사람들은 미니텔을 모르겠지만 1980년대에 프랑스가 개발한 전화회선을 이용하는 데이터베이스입니다.

    도쿄도립대학 연구실에 미니텔 DM이 왔을 때 그것을 읽고 관심이 솟구쳐 회사에 전화를 넣었더니 영업자가 와서 상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미니텔 본체는 필립스가 만든 장난감 같은 기계였지만, 15,000건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할 수 있고 미니텔끼리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였습니다.

    다만 프랑스어가 기본 언어라서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모든 대학 불문과 연구실에 DM을 보냈던 것입니다.

    "미니텔이 들어간 곳이 있나요?" 하고 물었더니 "도호쿠대학 불문과 연구실에 팔았어요"하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당장 연구실 회의를 열어 선생님들을 설득해 도쿄도립대학은 일본에서 정식으로 미니텔을 도입한 두 번째 불문과 연구실이 되었습니다.

    미니텔에는 Alire, 말하자면 오늘날 Amazon의 책 카탈로그와 비슷한 데이터베이스가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은 탓에 데이터베이스를 보고 '아! 이런 책이 나왔구나!' 하고 알 수 있을 뿐이었지만, 프랑스의 책방에서 매달 보내주는 카탈로그를 처음부터 넘기며 읽는 것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Téléthèse라는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프랑스의 대학에 제출한 박사논문의 초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놀라운 시대가 되었다고 느꼈지만, 선생이나 다른 조교는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나 혼자 사용하는 형국이 되어 연구실에 가면 책상 위에 뜸직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단말기 앞에 앉아 회색 화면에 녹색 글자로 떠오르는 프랑스어를 탐독했습니다.

    미니텔은 실로 선구적인 네트워크 시스템이었는데, 1990년대 미국의 인터넷에 밀려나 IT 기술의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여하튼 나는 소수에 지나지 않은 일본의 미니텔 사용자였습니다.


    (미니텔 터미널이, 매킨토시 128K나, 한국 정부의 무상대여 정책으로도 유명했던 이른바 '하이텔 단말기' 등에 영향을 끼쳤을 개연성이 높지만, 아무도 이런 사항들을 공식 확인해주지 않으니, 안타까움은 더해갈 뿐입니다. 이 인용 포스팅도, 이제는 아무도 그 연원을 의심하지 않는 미국 기술을 구사해 쓰여지고 있지만, 인터넷의 등장은 아무래도 심대한 문명사적 변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1980년대 일본 비즈니스맨들은 기상천외하리만치 대단했네요. 아무리 연구 목적이었다지만, 국제 전화비는 괜찮았던 걸까요. - 인용주)


    ✴︎


    1970년대는 컴퓨터가 진화하는 시대였기에 어번 트랜스레이션도 여러 가지 신기한 문물을 들여놓았습니다. 

    워드프로세서도 나오자마자 구입했습니다. 왕이라는 미국 회사의 제품으로 600만 엔짜리였습니다.

    덩치는 큼직한데 화면이 작아 한 번에 세 줄밖에 보여주지 않습니다. 키보드로 글자를 입력하면 검은 화면에 녹색 빛을 내는 글자가 나오는 기계입니다.

    그때까지는 IBM의 전동 타자기를 사용했습니다. 타이피스트가 초고를 입력한 다음 오자가 있으면 잘못된 곳에만 수정 테이프를 붙이고, 그 위에 글자를 다시 썼습니다.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말로 설명해준다고 이해할 것 같지 않지만, 여하튼 그때는 그런 방법으로 오자를 수정했습니다.

    납품하는 곳에서 어구를 수정하기라도 하면 한 글자를 고치기 위해 그 길로 오토바이를 타고 타이피스트한테 달려갔다가 와야 합니다. 수정 하나도 이렇게 품이 들어가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면 화면 위에서 곧바로 오자나 어구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제 화면에 나오는 글자를 고치면 끝나는 거야. 수정액을 바르거나 수정 테이프를 붙일 필요가 없어졌어. 세상 참 좋아졌고말고."

    다들 흥분해서 이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납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엄청난 기세로 사무실의 자동화가 이루어졌습니다. (...)

    "음, 저 말이야, 여기 몇 번이나 나오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반'이 뭐지?"

    아무래도 그 말이 핵심어인 듯한데 무슨 뜻인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원문을 찾아보니 floppy disk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라카와, 플로피 디스크가 도대체 뭐냐?"

    "글쎄, 모르겠어. 들어본 적이 없는걸."

    주위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


    그 무렵 일본에서 처음으로 팔기 시작한 미제 컴퓨터의 광고 팸플릿을 번역하는 일거리가 있었습니다.

    상품 설명서인 영문 팸플릿에는 캘리포니아 청년 두 명이 창고에 틀어박혀 땜질 인두를 사용해 세계 최초로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그 설명서를 번역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거 솔깃한 이야기로군. 나랑 나이 차도 별로 안 나는데 전자계산기의 새로운 컨셉을 창조했구나. 장하다! 열심히 해봐라.'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사상가이자 무도가인 우치다 다쓰루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반평생을 정리한 자서전이다. 저자는 인생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을 진솔하게 보여주면서, 특별히 계획하지 않고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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