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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악과 신체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인용 2023. 5. 13. 08:39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음악과 삶>

     

    사실 몸의 느낌이 예민한 아이들은 악기를 다루는 것도 능숙하다. 어릴 때 악기에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은 보통 몸의 탄성과 귀의 예민함을 타고난 아이들이다. 그에 비해 머리가 좋고 이해력은 뛰어난데 몸의 느낌이 부족한 아이들은 좌절감이랄까, 분노랄까, 아무튼 굉장히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머릿속에 음악이 있는데 그걸 꺼내서 보여주지 못하니 답답한 거다. 마치 언어 소통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아이들을 보며 몸과 악기를 능숙하게 잘 이용하는 능력, 흔히 '테크닉'이라 부르는 기악적 감각을 더욱 잘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몸의 감각이 좋아지면, 음악가는 소리에 더 빠르게 반응해 소리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음악적 스펙트럼 또한 굉장히 넓어지게 된다. 몸의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음악 해석의 범위가 넓어지고, 늘어난 해석의 범위에 영감을 받아 새로운 몸의 움직임과 소리를 만들게 되기도 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데 있어 몸과 머리의 상호적 대화는 그야말로 무의식과 의식의 조화로운 춤이다.

    단순히 기악적 기능뿐 아니라 해석 능력의 범주라고 할 수 있는 리듬감 또한 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리듬감이란 말 그대로 제시간에 소리를 내는 감각이다. 메트로놈 같은 기계의 소리를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정한 박자를 몸의 일부로 만들어 소리를 내고 동시에 그 소리의 질감까지 조절하는 건 쉽지 않다. 박자는 찰나의 순간에 흔들린다. 그리고 박자의 흔들림은 아무리 미세한 양이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정말 높은 수준에 이른 연주자들의 연주를 주의 깊게 들어보면, 큰 박은 일정하게 유지하지만 속박의 밀고 당기기는 자유롭고 조화롭다는 걸 알 수 있다. 동적 에너지를 일정한 양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수준으로 박자를 갖고 놀려면 단순히 박을 '세는' 게 아니라 박의 무게와 느낌을 몸 안에서 정확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뛰고 있는 심장의 맥박을 음악의 속도와 일치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박자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리듬(rhythm)'이라는 단어보다 '펄스(pulse)'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는 이유다. 유리스믹스(eurythmics, 일종의 리듬 체조를 의미한다)라는 방식으로 수업하면 이런 펄스의 느낌을 몸의 움직임과 연결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인식하는 즉시 내면에 반응과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지식'에 비해 몸은 훈련과 반복을 필요로 한다. 몸은 빨리 바뀌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템포보다 스트레칭을 훨씬 더 천천히, 더 차근차근 해나가는 건 은근히 재미있었다. 마치 바이올린 테크닉을 처음으로 구체화하던 초등학교 5~6학년 때 같았다. 좌절과 희열을 번갈아가며 느끼는 배움의 재미랄까. 며칠 동안 죽어라 움직이려 해도 움직이지 않던 손가락이 마침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의 희열,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던 손목의 움직임이 팔을 다른 방식으로 비틀자 너무 자연스럽게 움직일 때의 짜릿함 같은 게 자꾸만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배움의 재미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스트레칭 루틴으로 돌아갔다.

    몸의 평정심을 유지해야 연습한 만큼의 기술적 기교와 예술적 집중력이 발휘된다. 이완된 부드러운 몸의 감각과 날카롭게 바짝 날선 머리, 이 둘 사이의 텐션이 있어야 실황 연주의 흥분을 유지할 수 있다. 좋은 몸의 느낌으로 파도의 움직임을 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어할 수 없는 바다의 흐름에 영혼을 내맡기고 그저 움직임을 감각하는 서퍼처럼,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받아들이고 변하면서 그저 악보에 적힌 텍스트일 뿐이었던 음악을 살아나게 만드는 기분이란…!

    몸과 마음의 상태가 최적화되면 어느 순간 생각이 없어지고 몸이 지휘권을 휘어잡아 무아지경 상태로 넘어가는 뇌의 구간이 있다. 이때는 생각했던 음악이 완벽히 체화된 상태다. 가장 본능적이고 지성적이며 성숙한 상태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자신에 도취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악보로 기록된 한정된 데이터를 어떻게든 의미 있는 소리의 이야기로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공부를 끝낸, 그리고 공부된 뇌의 음악이 내 몸으로 완벽히 다운로드되어 자동 재생이 되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 거다. 여기까지 오면 나도 놀랄 만큼 다른 해석이 나오기도 하고, 연주하는 행위가 해석의 범주에서 창작의 범주로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무슨 방언 터지는 것도 아니고 무아지경 상태라니.


    실제로 몸의 의식이 발전하며 중요한 몇 가지를 발견했다. 평생 힘겹게 편법으로 버티고 있던 트릴 주법을 분석하다 돌파구를 찾아 더 나은 조정을 할 수 있게 됐고, 손가락 두 번째 관절 움직임을 좀더 넓히니 비브라토가 훨씬 부드러워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왼손 각을 특정한 각도로 더욱더 정확히 잡으면 시프팅(포지션을 바꾸는 주법)이 좀더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처리된다는 걸 발견했을 때는 정말 기뻤다.

    좋아하는 음악가들의 몸도 주의 깊게 보게 되었다. 그야말로 미친 왼손 테크닉의 소유자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Augustin Hadelich)는 굉장히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고, 모든 포지션 이동이 곡선의 형태를 띤다. 팔과 손에는 절대 과한 힘이 들어가지 않고, 그 프레임을 유지하면서 손끝의 밀도를 굉장히 섬세하게 움직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음악적 표현의 거의 80퍼센트가 활에서 나온다. 활의 움직임 또한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자유롭지만 굉장히 정교하다.

    안네 소피 무터(Anne Sophie Mutter)는 좀 더 강하고 절도 있는 움직임을 구사한다. 한 음 한 음 약간 망설이는 것처럼 왼손을 움직인다. 마치 지판을 타고 움직이듯 손을 쓰는 것이다. 오른손 엄지가 활 위쪽으로 많이 올라가 있어 강하고 안전하지만, 색깔은 많이 만들어내기 어려운 포지션이다. 아마 음악적 표현을 왼손에 많이 기대는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이가 많아도 나이와 상관없이 생기를 띤 채 계속해서 유연한 생각과 단단한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은 분명 몸의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불편한 고통을 어떻게든 감수하며 새로운 몸의 움직임을 찾아가는 사람의 정신적・동적 능력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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