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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베르테르에게 에뜨랑제가인용 2024. 4. 27. 19:44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허석과 만날 일이 기쁘면 기쁠수록 내색을 하지 말자. 그리고 한편으로는 누구의 삶에서든 기쁨과 슬픔은 거의 같은 양으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이처럼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은 이만큼의 슬픈 일이 있다는 뜻임을 상기하자.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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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인 서울 ー 혼밥하는 ‘라떼’가 온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4. 25. 18:01
『도쿄 중년 싱글의 충격(東京ミドル期シングルの衝撃)』 (미야모토 미치코, 오에 모리유키 엮음) 동양경제신문 출판부의 와타나베 씨한테 새로 나오는 책 서평을 부탁받았으므로 조금 긴 소개문을 썼다. 제목이 살짝 도발적이기는 하지만, 저간의 인구 동태와 지역 커뮤니티 형성을 다룬 견실한 연구이다. 그러나 대단히 충격적인 사실은, 이러한 연구에 관해 극히 최근까지 아무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인구 감소에 관하여 논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인적자원’ 부족이나 시장 규모 축소, 연금 및 의료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관해서는 얘기한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고령기에 들어가 사회적으로 고립화한 싱글족의 언더클래스>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거북한 얘기를 도마 위에 올린 예외적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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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ree-Body Problem인용 2024. 4. 21. 11:46
빛과 어둠이 하나가 됩니다. - 미야자키 하야오 구르지예프가 쓴 《삶이란 오직 ‘내가 나’일 때만 진정한 것이 된다》에는 고비 사막의 남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옝기사르(Yangihissar) 현 근처에서 요양하던 중에 그에게 찾아온 계시(epiphany)의 순간이 묘사되어 있다. 그가 머물던 곳은 한 방향으로는 비옥하고, 다른 방향으로는 생명을 앗아가는 완전한 불모지인 독특한 장소였다. 구르지예프는 이 장소에 관해 “천국과 지옥이 정말로 존재해서 각기 어떤 힘을 방사(放射)한다면, 그 두 원천 사이의 공간을 채운 공기는 바로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구르지예프에 의하면 공기는 ‘두 번째 양식’(second food)이었고, 그가 가 있던 장소의 공기는 ‘천국과 지옥의 두 힘 사이에서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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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자.인용 2024. 4. 20. 19:16
Hic Rhodus, hic salta! 인간이 누군가를 교육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교육이란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educate)'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자는 아이들의 잠재적인 재능을 '끌어내는 사람'이지 죽은 지식을 '처넣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교육자(educator)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 아이들의 잠재적 능력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거의 신의 영역이 아닌가요.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교육자의 양성과정이 대단히 엄격합니다. 독일에서는 교사의 양성과정이 의사의 양성과정과 거의 유사합니다. 의사가 인간의 육체를 다루는 직업이라면, 교사는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이지요. 교육은 인간의 심리와 정서, 감수성과 인지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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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페어 퀸의 쓸모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4. 16. 14:42
고령자가 집단 자결하는 게 고령화 사회의 비책이라고 공언하였던 젊은 경제학자의 발언이 화제를 부르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인간은 물러날 때가 중요한 듯하다’라는 말에도, ‘과거의 공적을 써먹으며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사람이 여러 층위에 너무나 많다’라는 사실의 적시에도 필자는 동의한다. 그러나, 쓸모없는 자는 유해무익하니까, 집단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논(論)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도적인 차원에서라기보다는 조직인의 경험에 기반해 그리 생각하는 것이다. 조직에 기생하며, 아무런 가치도 창출하지 않고, 외려 새로운 활동을 가로막기나 하는 ‘무임승차자’는 모든 조직에 일정 수 포함되어 있다. 이런 ‘밥만 축내는 이’의 비율을 줄이는 건 분명 집단의 퍼포먼스를 높이는 데 어느 정도까지는 도움이 된다. 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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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구니히로 『재미난 일을 하면 어떻게든 굴러간다』 한국어판 추천문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4. 16. 13:06
미시마 군이 쓴 『우리끼리니까 전하는 안부』(‘쪼꼬미시마’ 출판)를 박동섭 선생이 한국어로 옮긴 결과물이 곧 출간된다. “추천문 좀 어떻게….” 라며 부탁을 해오기에, 일필휘지하다시피 썼다. 미시마 군과는 어지간히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아직 그가 첫 직장에 다니던 이십 대 후반 무렵 조우했으므로, 지금으로부터 20년 정도 지난 얘기다. 그때 그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저는 여행 다니는 사람이올시다”라고 말했던 게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일 관련된 얘기는 거의 안 하면서, 미시마 군은 이제까지 자기가 전 세계를 이곳저곳 여행 다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재밌는 친구였다. 재밌는 사람은 또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책을 하나 내고 싶다고 하기에 ‘그려 쓸란다’ 했다. 같이 작업을 하다 보면, 종종 얼굴을 맞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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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ity에 관하여인용 2024. 4. 13. 10:52
시타가와 선생과 '가르치는 방법'의 핵심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나도 합기도를 가르치기 때문에 잘 아는 일인데 신체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의미로 '간단'하다. 이해력이 나쁜 사람이건 움직임이 둔한 사람이건 어떻게 하면 좋아지는지 가르치는 쪽에서는 이치가 잘 보이기 때문이다(시타가와 선생은 딱 잘라서 "내 말을 들으면 누구든지 잘할 수 있다"고 단언하신다). 말씀하신대로 신체 운용은 누구나 스승의 지도를 따르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잘하게 된다.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이런 수련을 하면 반드시 잘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쪽은 딱 잘라 단언할 수 있고 가르침을 받는 쪽도 그 말을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신체 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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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만 죽어라 파고든 너도 결국 실업자니까.” (소설가 김진명)인용 2024. 4. 11. 22:00
“인문학만 죽어라 파고든 너도 결국 실업자니까.” 형연은 은하수의 날 선 비난에도 신경 하나 쓰지 않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대신 인문학 공부는 돈이나 지위 같은 다른 힘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져다 줘. 바로 내면의 힘이지. 눈에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가지면 가질수록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이 차오르며 삶이 떳떳하고 행복해져. 나는 돈을 많이 안 벌겠다, 조금 벌고 그 대신 검소하게 살겠다, 그리고 남는 시간과 열정을 더 의미 있는 일에 쏟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좋게 들리기는 한다만 그게 그리 쉽게 될까?” “불안하지. 하지만 인문학이 깊어지면 불안이 인간의 존재조건임을 알게 돼. 인간이란 어차피 불안에 시달리며 살게 되어 있다는 말이야. 그래서 당황하거나 극단적으로 반응하지 않아. 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