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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renity에 관하여
    인용 2024. 4. 13. 10:52

    시타가와 선생과 '가르치는 방법'의 핵심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나도 합기도를 가르치기 때문에 잘 아는 일인데 신체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의미로 '간단'하다. 이해력이 나쁜 사람이건 움직임이 둔한 사람이건 어떻게 하면 좋아지는지 가르치는 쪽에서는 이치가 잘 보이기 때문이다(시타가와 선생은 딱 잘라서 "내 말을 들으면 누구든지 잘할 수 있다"고 단언하신다). 말씀하신대로 신체 운용은 누구나 스승의 지도를 따르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잘하게 된다.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이런 수련을 하면 반드시 잘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쪽은 딱 잘라 단언할 수 있고 가르침을 받는 쪽도 그 말을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신체 운용은 '잘했을' 때의 쾌감이 강렬한 신체 기억으로 남아서 가르치고 배우는 쪽 모두 이를 개인적 경험으로 공유하기 때문이다.

     

    전방낙법을 좀처럼 못하던 사람이 결국 고단자가 되는 일은 자주 있다. 다른 사람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전방낙법을 몇 개월 걸려 겨우 해내면 그 달성이 가져오는 신체적 쾌감을 강렬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쾌감을 그때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추구하면서 열심히 수련하게 된다.

     

     

    그러나 대학의 전공 수업에서는 합기도와 유사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내가 가르치는 현대사상 과목에서는 학생들이 그 과목을 일 년간 매주 수강해도 뭔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강렬한 신체적 쾌감을 맛보는 일이 없다. 학문을 하도록 이끄는 강렬한 신체적 쾌감이란 굳이 말한다면 '뇌가 가속하는 느낌'인데 이를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느낌을 설명할 수 없고 애당초 이 세상에 그러한 쾌감이 있다는 것조차 학생들은 모른다.

     

    무도고 철학이고 집중적인 수행이나 돌파하고 넘어서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어떤 단계에서 경험한 강렬한 쾌감의 기억이다. 신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내 몸에 이런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잠재능력이 있었단 말인가!' 같은 발견의 쾌감인 것처럼 지성의 작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나의 뇌에 이런 사고를 할 수 있는 잠재능력이 있었던가!' 같은 발견의 쾌감이다.

     

    신체적 쾌감을 느끼도록 돕는 데이터와 그에 기반한 적절한 지도방법은 많지만, 뇌가 가속할 때의 쾌감과 사고의 액셀을 밟는 감각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세상에는 정말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109~110쪽)


    실제로 학문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자칫 선망의 마음을 넘어서 남을 질투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 이상한 감정에 대하여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질투는 무언가를 창조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지 않은 감정이라고 단언해 두고 싶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가? 여기서 체념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상대가 안 돼서 단념했어요.

    그래도 그리워 못 잊을 그 사람.

     

    이것은 전쟁 전에 유행한 ‘비에 피는 꽃’이라는 노래의 가사인데, 유학생활 동안 나는 가끔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세상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하버드 대학 시절의 멈퍼드와 아틴이 그랬다. 그런 우수한 사람들을 일일이 질투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그러한 영재들에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하거나, 그들이 나와는 상대가 안 될 정도의 재능을 보였을 때 나는 혼자 이 노래를 부르면서 체념하곤 했다. 체념한다고 해서 모두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질투심이 안 생긴다. 그리고 남을 질투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기의 정신 에너지가 조금도 소모되는 일이 없고 판단력도 둔해지지 않는다. 결국 그것이 창조로 이어져 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학문의 즐거움』 ~ 103쪽)


    자연과학자는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지요. '왜 이 남자는 이런 의미 불명의 말, 혹은 확실히 틀린 말을 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의료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는 확실히 그것이 당연하지요. 환자가 앓고 있는 증상을 호소할 때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든지 "당신은 틀렸다"라는 진단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증상을 하나의 자연물로서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다른 증상과의 유추가 가능해 보이는 패턴을 찾습니다. 어떠한 신체 현상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먼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러고 나서 지성을 최고속으로 회전시켜 무수한 가설을 검증해 나갑니다. 저는 이와타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이분이야말로 정말로 현장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환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이런 증상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진단을 내려서 진료 행위를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의사 자신의 지적・신체적 능력을 최고 레벨로 유지해야 합니다. 판단력과 이해력을 최대화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기분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생글거리며 미소 짓는 상태일 때, 눈앞에 있는 현실을 열린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가 가장 머리 회전이 빨라질 때입니다. 머리 회전이 최고로 빨라지지 않으면 대처할 수 없는 위기에 맞닥뜨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성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슬프거나 화를 내거나 원망하거나 초조한 정신상태에서는 지적 능력이 향상되지 않습니다. 평소와 같은 정도까지는 머리가 움직일지도 모르겠지만, 감정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한,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머리가 회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진짜 위기 상황에 던져져서 자신의 지적 잠재성을 총동원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면 그는 방긋 웃을 겁니다. 그것이 머리 회전을 가장 좋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좋은 기분 상태를 유지하는 것, 열린 마음이 되는 것은 단지 교훈이 아닙니다. 궁지에 몰린 생물이 채택하는,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전략입니다.

     

    (『배움엔 끝이 없다: 우치다 선생의 마지막 강의』 77~78쪽)


    @levinassien: 매일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라 안팎으로 '미쳐 돌아가는' 것만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마전은 말하자면 '언론이 감지해 낼 수 있는 범위의 기삿거리'에 불과할 뿐이지, 그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소버(sober)'하게, 묵묵히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벽돌을 쌓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한 작업은 바깥에서 보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으로만 비치는지라, 결코 '뉴스'거리로 오르는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밑바닥에서부터 재구축하는 작업은 '눈에 띄는 변화'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루틴'을 쌓아 올리는 일에 가깝습니다. 부지런히 착실하게.

     

     

    합기도적 측면에서도 비슷하게 말해볼 수 있겠는데요. '변화하고 있음'이 감지되는 움직임을 일으키면 결국 혼쭐납니다. 변화란 빈틈과도 같습니다. 말하자면 공룡이 자기 발밑에서 움직이는 뭔가를 감지해 내서 잡아먹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무도 수행을 하다 보면, 등속으로 움직이는, 운동의 질이 변화하지 않는 움직임은 들키기가 여간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도적 관점에서의 이상적인 동작 양태입니다.

     

    정치나 무도나 모두 인간의 몸짓이므로 원리는 매양 같다고 봅니다. 현실을 뿌리째 변성(變性)시킬 수 있는 건 '뉴스거리가 되는 사건'이라기보다도, 외려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매일 정밀하게 행해지는 등속 운동'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말이죠.


    도쿄대학의 약학 전문가인 이케가야 유지 선생과 대담을 했을 때도 최첨단의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열린 사고방식과 산뜻한 미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케가야 선생은 제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말을 하고 있을 때 기어가 바뀌면 부릉부릉하는 회전음이 들립니다. (😂) 실내의 온도가 1~2도 올라간 느낌이 듭니다.

     

    (『배움엔 끝이 없다: 우치다 선생의 마지막 강의』 83쪽)

     

    제목: 할리우드 영화의 욕망기호론

    해설: (...)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은 공화당과 FBI와 미식축구와 치어리더와 시골이 너무 싫어서 세계를 향해 미국은 엉망인 나라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는 기시다 슈처럼 표현하면 '미국 외부의 자기'였다는 가설을 검증해 보고 싶다.

    텍스트・참고문헌: 마치야마 도모히로 『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 우치다 다쓰루 『영화의 구조분석』은 가능한 한 읽지 말고 오기 바랍니다(내용이 겹치기 때문에).

     

    이런 강의계획서를 읽고 불끈불끈 강의가 듣고 싶어지는 학생은 도대체 어떤 부류일까?

    태도가 아주 불량한 학생들이 코에서 담배 연기를 뿜으면서 줄줄이 몰려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리 자업자득이라고는 하지만.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280~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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