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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의 베르테르에게 에뜨랑제가
    인용 2024. 4. 27. 19:44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허석과 만날 일이 기쁘면 기쁠수록 내색을 하지 말자. 그리고 한편으로는 누구의 삶에서든 기쁨과 슬픔은 거의 같은 양으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이처럼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은 이만큼의 슬픈 일이 있다는 뜻임을 상기하자.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편지를 가슴에 껴안고 즐거워하거나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내 모습을 악의로운 삶에게 들키면 안 된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질투심 많은 삼신할머니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랑스러운 아이일수록 안아주지 말아야 한다, 삼신할머니에게 그 사랑을 들키면 반드시 해를 입기 때문이다. 삼신할머니란 아이들을 보내준 장본인인데 그 아이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내 말에 할머니는 '삼신이 마음속에 선과 악을 함께 갖고 있으며 변덕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면서 그것은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선과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은 굳이 할머니 말씀을 듣지 않아도 나 스스로 체득한 지 오래이다. 나는 선이나 악 모두가 내 마음 깊이에 똑같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중 어느 한쪽만을 나의 진실한 모습이라고 주장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선한 것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지만 악에 대해서는 실수라거나 충동이라거나 하는, 자신의 통제로부터 이탈되었다는 뜻의 이름을 달아 진정한 자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들은 삶을 위대하고 진지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만 보려는 서정적 인간임에 틀림없다.

     

    - 은희경


    나는 지금 아이러니에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왠지 음악이 인간 정신의 최고 절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최소한 고도의 낭만적 악당을 다루든지. 그러나 현실에 영웅이나 악당은 거의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검지도 희지도 않은 평균적 존재다. 일반 사람들은 회색이다. 지저분한 회색의 얼룩.

     

    우리 시대의 근원적 갈등은 주로 이런 흐릿한 회색의 중간지대에서 일어난다. 그곳은 우리 모두가 그 속에서 기어다니는 거대한 개미집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속에서 괴로운 운명을 만난다. 잔혹하고 잔인하게 취급받는다. 조금 더 높이 기어올라간 자는 곧 다른 사람들을 고문하고 모욕하려 한다.

     

    내 생각에, 이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대다수의 인민에 대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진실을 써야 한다. 그래야 리얼리즘 예술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 비극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일프와 페트로프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환자가 발을 잘 씻고 의사에게 갔다. 의사에게 가고 나서야 자기가 엉뚱한 발을 씻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 이런 것이 진짜 비극이 아닌가.

     

    나는 능력이 닿는 한 이런 것을 쓰려고 노력했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 완전히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꿈과 희망 이야기, 그리고 그들에게서 걸핏하면 나타나는 수상쩍은 살인 충동에 관한 이야기를.

     

     

    라이크는 정력적인 여자였다. 『감사관』에 나오는 하사의 과부와 좀 닮은 면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사교계의 여왕쯤으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체르니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시는 어떤 특정한 인생 법칙을 제시하고 있다. 유명 인사는 무심코 당신에게 악수를 청할지 모르지만 그 아내는 기껏 손가락 두 개만 내밀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니콜라예브나를 두고 한 것일 수도 있다.

     

    메이예르홀트는 그녀를 광적으로 사랑했다. 그런 사랑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랑이 우리 시대에도 존재한다는 상상은 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거기에는 무언가 불길한 요소가 있었고 결국 불행한 종말을 맞았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지키려면 그것에 아무 관심도 갖지 않는 게 최선이다. 우리가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것들은 금세 사라져버린다. 당신은 모든 것, 특히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반어법*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들이 살아남을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삶의 가장 큰 비밀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노인들은 그 비밀을 몰랐다. 그들이 모든 것을 잃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의 운이 좀 더 좋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 쇼스타코비치의 반어법, 이솝 우화의 이중 화법은 그뿐 아니라 당시 지식인들이 자주 채택했던 화법이다. 그는 특히 조셴코 작품의 말투를 많이 모방했다. 그의 공식적・비공식적 발언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이런 이중 화법을 파악해야 한다. 볼코프는 이것을 체제와의 패러디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김병화)


    옛날에 할아버지가 원두를 직접 갈아서 커피를 만들어주신 적이 있거든요. 제가 대학생 되던 해였는데, 할아버지는 저한테 막걸리보다 커피를 먼저 가르쳐 주셨죠.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인생이 쓴 물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겠지만, 쓰디쓴 순간에도 깊은 맛이 있다는 걸 기억하라고요. 커피를 처음 마실 때는 무슨 맛으로 먹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도, 정성스레 끓인 커피 한잔의 맛을 알고 나면 쓴맛 속에 감춰진 비밀 같은 인생의 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요.

     

    - 김지혜, 『책들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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