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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경제 인터뷰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7. 15. 19:06

    ー 지금 미국에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가자 지구 침공에 격렬한 항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들은 단순히 가자지구 침공만을 가지고 분노하고 있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인종 차별이나 기후변화, 혹은 기성세대 등 여러 갈래에 걸쳐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지금 당장 좋기만 하면, 나 하나 좋기만 하면 만사태평’과 같은 시야 협착적인 종류의 관점이 지배적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인구 감소나 기후 변화 등, 장기적 시간 간격 속에서 고찰해야 할 위기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들지 않습니다. 세계 어딜 가나 마찬가지 상태입니다. 전 세계 어디를 둘러보아도 글로벌 리더십을 갖추어 굉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가가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초조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ー 일본에서는 항의 운동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보도 역시 미미한 움직임을 보니다. 일본은 예전부터 ‘항의’, ‘반항’이나 ‘항명’ 같은 것에 강한 억압이 가해지는 사회입니다. 일단 대세가 정해지면 모든 사람이 거기에 휩쓸려갑니다. 애써 반대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은 ‘분위기 파악 못 한다’며 배척당합니다.

     

    일본의 이런 풍토는 외교 분야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국제 사회의 대세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만 살피며 복지부동합니다. 가자지구 학살에 대해서도 일본에는 외교적인 철학이 없습니다. 그저 미국 뒤에 매달리며 숨어 있을 뿐입니다. 지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제노사이드’라는 건 일본 정부 역시 알고 있을 터입니다. 그럼에도 미국에 거역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머나먼 중동과 관련해서 일본은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구태여 미국에 거스르면서까지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자 모험을 감행해 보았자 실익이 없다고 여기는 겁니다.

     

    하지만 이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너무나 무책임한 처사입니다. 지금 보면 전 세계 다양한 국가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 저마다의 견식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독자적 정견을 제시해 마땅합니다. 동아시아의 대국으로서, 국제 질서의 향배에 관해 전 세계를 상대로 메시지를 던져야만 합니다. 일본 정부는 그러한 책임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ー 포기해 버렸다는 말씀이군요.

     

    국제사회와 관련하여 ‘세계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표명하는 것. 이것은 UN에 가입해 있는 193개 모든 국민국가의 의무라고 봅니다. 그게 아무리 몽상적이라 할지라도, 일국으로서 이러이러한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힐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정치가 중에서 국제 사회를 향해 자신의 철학에 기반한 메시지를 발했던 인물은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는 미국을 쫓아가는 것 이외의 다른 메시지를 꺼내 드는 사람이 없습니다.

     

    ー 결국 그렇게 일본의 세계적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건 아닐지요?

     

    그 말씀대로입니다.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은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영도력 있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저력 또한, 국력의 중요한 구성요소입니다. 이는 군사와 경제와는 다른, 좀 더 예지적인 성질의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일본은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를 논리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수사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진영을 불문한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현재 일본에 그런 사항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정치가가 없습니다.

     

    ー 그런 방면으로 보다 웅변적이었던 때가 예전의 일본에는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주권 국가였던 시절 일본은 고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국제연맹은 1920년에 생겼습니다. 대일본제국은 여기에 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미국은 자국 의회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했으므로, 상임이사국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이렇게 4개국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00년 전 일본에는 그만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부의 폭주로 말미암아 2차대전에서 패배하고 만 탓에, 메이지 시대 선인들이 애써 쌓아 올린 대부분의 결과물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제 60년대부터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일구게 되는데,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단기간에 국운을 되살려낸 선인의 노력은 높게 살 만합니다.

     

    그 시절 미국인은 경이로운 일본의 부활을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당시 미국 영화를 보면 그 심리가 역력히 드러나곤 했지요. 예를 들어 <사랑과 영혼>(1990)에는 주인공 패트릭 스웨이지가 일본어를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거래처가 주로 일본인인 바람에 일본어 회화 능력이 엘리트 사원의 필수 요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도 일본 제약회사 광고가 화면 가득히 펼쳐지는 한편, 해리슨 포드가 일본어밖에 말할 줄 모르는 주인장을 상대로 우동을 주문하는 인상적인 장면 또한 등장합니다. 동양에 일본이라는 신비로운 나라가 있어서는 그 나라의 문화나 상품이 미국 사회의 심층까지 밀고 들어오는 것을 대할 적의 놀라움, 그리고 미묘한 불쾌감이 화면에서 뚝뚝 배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평화헌법이 있으므로 군사 대국이 될 위험성은 없으나, 경제력만큼으로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잠재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당시 국제 사회가 평가하던 일본의 모습이었습니다. 80년대에는 세계 시가총액 상위 50개 기업 가운데 32개 사가 일본 기업이었으며, 또한 ‘재팬 애즈 넘버 원’(Japan as Number One)이라며 ‘일본형 경영 모델’이 진지하게 연구되었습니다. 하지만 거품 경제가 꺼짐으로 인해 일본은 경제 분야에서의 지도력을 상실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20년 가까이 일본은 미국에 이은 GDP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습니다만, ‘일본은 이렇게 살고 있다. 다 같이 일본을 따르거라’ 하는 식의 강한 어조를 발하는 일은 드물게 되었습니다.

     

    ー 정부나 정치가 뿐만이 아닙니다. 미디어나 개인 역시 ‘소리 높여 뭔가를 주장하는 일’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는 듯이 처신하고 있습니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큰 목소리로 주장해 봤자 자기한테 해만 된다고나 할까요.

     

    애초에 일본 사회가 동조 압력이 크기는 했습니다. 게다가 거품경제 붕괴 이후로는 소위 ‘잃어버린 30년’ 기간 동안 시민의 규격화가 지나치게 진행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일본이 가난해졌기 때문입니다. ‘파이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파이의 분배’에 대해서만큼은 이것저것 따지고 듭니다. 자기 몫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남의 몫을 갉아먹어야만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해야 타인의 몫을 덜어낼 수 있을까, 그러자니 구성원 전원한테 뭐가 됐든 등급을 매깁니다. 그 점수가 높은 자에게 한가득 먹을거리를 안겨주고, 점수가 낮은 자의 몫은 덜어냅니다. 그게 가장 ‘페어’한 분배 방법이라고 다들 합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등급 매기기에 기반한 선별 분배라는 발상은 언뜻 보기에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그건 상당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전 인원 등급 매기기에 앞서, 우선 동질화 작업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똑같아야만 숫자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다른 이보다 더 잘하는 인간’이 고득점을 얻을 수 있게끔 하는 방침을 채용했습니다. ‘생산성’, ‘사회적 유용성’, ‘소득’ 아니면 단적으로 ‘성공’, 이런 것들을 수치화해 전 국민에게 등급을 매기기로 작정한 겁니다. 그런데 이미 돈이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고득점을 부여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선별(원문 傾斜 – 옮긴이) 분배이다 보니, 이제는 단순히 차별이 확대되어 가는 셈이지요.

     

    더 심각한 건, 모두에게 똑같은 것을 시키고서 그저 상대적인 우열을 다투게만 놔두는 사회에서는, ‘참신함’이 생겨날 리 없다는 점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들 발목을 잡고, ‘모난 돌’을 끌로 치며, ‘물에 빠진 개’를 패주는*… 그런 짓거리밖에 안 하니만큼 말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자신의 견식을 흔들림 없이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언행을 하면 물어뜯깁니다.

    (* dǎ luò shuǐ gǒu. 본래 루쉰이 말한 ‘개’는 ‘용서받지 못할 자’를 의미하는데, 린위탕의 페어플레이론을 비튼 것임. - 옮긴이)

     

    그래서 오늘날 젊은이들은 ‘유리되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합니다. 집단에서 유리된다는 건 한마디로 ‘경쟁에서의 탈락’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체의 단체행동을 안 합니다. 시위나 파업을 벌이려면 누군가가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기 마련이거든요.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아무도 하지 않는 말을 한다.’ 그렇게 저항의 기치를 세웠건만 아무도 안 모인다면 그 사람 한 명만 붕 뜨는 겁니다. 그게 무서우니 누구도 분연히 싸우려 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학생운동도 사라지고 노동조합도 제 기능을 못 하게 됐습니다.

     

    ー ‘생존자들(勝ち組)’ 개인이 풍족해지는 한편으로, 중앙정부나 지방이 관할・공유하게 되어 있는 공공 자산, 커먼웰스 등은 열화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일본이라는 이 공동체 자체가 쪼들리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경쟁 상대의 몫을 ‘줄이는’ 경쟁을 하고 있으니만큼, 이런 나라가 넉넉해질 턱이 없습니다. 애초에 어떤 나라가 잘사느냐의 여부는 뭐로 정해지겠나요? 이건 개인 자산의 총화가 아니라, 국민 전원이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의 풍요성에 기반해 고량해 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삼류 독재 국가를 봐보세요. 독재자와 그 측근들이 국부의 태반을 사유재로 삼아 점유하고 있습니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치면, 독재자와 그 권속들의 사재는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나라를 과연 ‘부자 나라’라고 할 수 있나요?

     

    다시 말하는데, 나라 살림은 공공재의 과부족으로 결정 납니다. 교육이든 의료든, 문화 활동이든, 국민 누구나 무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설령 개인 자산이 빈한한 사람이라도, 불안함 없이 넉넉한 생활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재가 빈약하다면, 예컨대 사회복지제도가 미비하다든가, 국민개보험제도가 없다든가, 학교 교육이 전면 유상이라든가, 도서관이나 미술관, 공연장에서 고액의 입장료를 징수하는 등의 사회가 그런데, 이러면 빈곤층은 계속 가난해질 뿐, 사회적 상승의 기회가 사라집니다.

     

    현재 일본은 공공재가 점차로 빈약해지고 있습니다. ‘민영화’라는 이름 아래 공공재를 헐값에 팔아먹으며, 권력자와 그 간신들의 사유재로 둔갑시키고 있습니다. 그것도 겁날 정도의 기세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공재를 갖다가 자기 사재로 챙기는 사람들이 ‘승리자’로 불립니다. 이들이 현대 일본 사회의 초부유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편,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까지 그들이 접근할 수 있었던 공공재에 ‘출입 금지’ 처분을 받습니다. 이를 역사학 용어로 ‘울타리 치기’라고 일컫습니다. 공공재가 희박해져 갈수록, 가난한 시민들은 아무리 열악한 고용 환경일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업은 그렇게 인건비를 삭감해 갑니다.

     

    국력을, 어떠한 지표로 산정할지에 관해서는 다종다양한 사고방식이 존재할 겁니다. 저는 ‘집단 차원에서의 퍼포먼스 향상’으로 헤아릴 것을 주장합니다. 평상시에만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닙니다. 위기 상황에 조우하게 될 시, 그에 대응해 적절히 모습을 변용해 생을 이어갈 수 있는 능력. 그것을 저는 ‘집단의 힘’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깁니다.

     

    집단의 일부에 이렇게 천문학적인 재산을 쌓아 올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가 가난하고, 변변한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의료적 보장도 충분치 아니하며, 문화자본 역시 갖지 못하는 나라. 그런 나라를 저는 ‘국력이 낮다’고 평가합니다. 그러한 나라는 위기 내성이 낮은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서는 어떠한 ‘혁신’(이노베이션)조차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심각합니다. 혁신이란 게 애당초, 학술이 되었든 예술이 되었든지 간에 그 분야의 자원이 임의로 산개된 곳에서만 일어나기 마련이거든요. 집단 전원에게 그 기회가 돌아가는 곳에서만 혁신은 일어납니다.

     

    마케팅 용어에 ‘얼리어답터’(초기 수용자 - 역주)라는 게 있습니다. 혁신가가 전대미문의 참신한 발상을 제시했다고 치죠. 이때 곧장 달려가 반응하고, 혁신가를 지원하며, 그 산물의 의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또 설명도 하는 사람들이 얼리어답터입니다. 천재적인 혁신가는 어느 집단에서든 탄생합니다. 이에 반해 얼리어답터의 사람 수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성쇠합니다. 얼리어답터 층이 퍽 두터운 사회에서는 혁신가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습니다. 얼리어답터의 층이 얇은 사회에서는 아무리 천재적인 혁신가가 등장하더라도 그 가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현재 일본은 얼리어답터 층이 점점 얄팍해지고 있습니다. 얼리어답터의 조건이라는 게 마냥 ‘변화에 대한 감도가 좋다’ 뿐만은 아닙니다. ‘시간 여유와 약간의 돈이 있을 것’이 필수 조건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일만 하는, 혹은 지갑이 텅 비어 있는 사람은 ‘새로운 것’ 같은 데에 흥미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렇듯 ‘시간 여유가 있으면서 푼돈도 있는’ 사람들이 일정 수는 존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중산층’이 필요합니다. 얼리어답터는 ‘중산층의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2차대전 이후 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실팍한 복지제도를 정비했습니다. 그 결과, 이전까지 문화자본에 접근할 기회가 없었던 노동자 계급 출신 자녀들 가운데 대학을 가고 악기를 연주하며 그림을 그리는 등의 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렇게 60년대 영국은 록 음악, 패션, 영화, 문학 등의 분야에서 순식간에 세계 정상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복지제도의 세례를 받은 자식들 세대가 대부분 견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혁신이 ‘중산층의 부산물’이라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두터운 중산층이 존재하고 ‘시간과 푼돈이 있는 계층’이 생겨나면 혁신가들이 종횡으로 활약할 환경이 갖춰집니다.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합니다. 학술적인 세계 표준을 제정할 수도 있고, 새로운 예술 분야를 일구어낼 수도 있으며, 획기적인 기술을 탄생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 역시, 50년대 말부터 80년대 말까지 약 30년 동안 그런 상태에 가까웠지요. 활기 있었습니다. 오늘날 일본이 잃게 된 가장 큰 인적 자산이 바로 이 ‘얼리어답터’, 즉 ‘시간과 푼돈 있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돌아온다 쳐도 ‘기생충’, ‘무임승차자’ 같은 말을 들으며 배제의 대상으로밖에 치부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가는 한 ‘새로운 세계 표준’이 생겨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겠죠.

     

    ー ‘무한 쟁탈전’이 지속되면 사람도 나라도 피폐해지기 십상입니다. 일본이 뭐라도 다시 살아날 길이 있을까요?

     

    ‘코먼의 재생’을 난 제안하는 바입니다. ‘일본적 코뮌주의’라고 해도 좋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정치사상을 연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차별점이 뭐냐면, 공공재를 넉넉히 해둠으로써 비폭력적으로, 장기적으로 계급 재편을 촉구하는 노선을 채용한다는 겁니다.

     

    종래의 커뮤니즘 혁명론은 권력자, 부유자로부터 권력과 부를 폭력적으로 빼앗고 그것을 민중에게 분배하는 수순으로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전의 권력자가 소유하던 것들은 많은 경우, 차기 권력자가 된 혁명가들의 ‘사재’로 점유되고 말았으며, 공공재로 공유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어찌하면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고 완수해 낼 수 있을까요? 제가 제출하는 대안은 이렇습니다. 타인의 권력이나 부를 막무가내로 빼앗지 말고, 대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재()를 내미는 모양새로 ‘공공을 재건’하는 길입니다.

     

    권력이나 부는 지배층이 독점할 수 있습니다. 독점하지 못하는 것도 또한 있습니다. 문화자본이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다든지, 음악을 연주한다든지, 스포츠나 무도를 연습한다든지, 전통 예능을 수련한다든지, 종교적인 수행을 하는 것이 문화자본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지성적, 감성적으로 성숙을 이룰 수 있기 마련입니다. 모든 시민에게 이를 습득할 기회를 개방하는 일은 가능합니다. 또한 이러한 사업에 드는 경비는 거의 무시할 만한 수준입니다.

     

    가만히 보면 지금 일본의 지배층은 문화자본에 흥미가 없습니다. 지성을 갖추는 것도, 풍부한 감정을 지니는 것도요. 신체지와 관련된 무예나 전통 예능을 습숙하는 것 역시 그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문화자본을 습득하여, 세상의 구조와 인간의 본질에 관한 깊은 통찰을 얻는 것에는 어지간한 현실 변성력이 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지언정, 시민적 성숙을 이룩한 시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어 나갈 터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고베에 도장을 열고 아이키도란 걸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느끼는 게, 무도 수련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술과 지혜는 말이죠, 권력이나 재물과는 다르게, 퍼주어도 줄줄 새 나가는 일이 없더군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문인들이 저한테서 기술과 지혜를 습득해 나갑니다. 그리고서 자신만의 도장을 열어 자기 문인에게 전합니다. 그 문인들이 마찬가지로…. 아무리 증여하여도, 문화자본은 축날 일 없는 무진장한 부인 것입니다. 문화 자본의 경우, 증여와 가납(嘉納)* 시스템이 어지간히 활발히 기능한다 해서 그 누구도 해를 입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의 소유물을 빼앗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요.

    (* 흠향. 강도관 유도 창시자의 이름이기도 함. - 옮긴이)

     

    긴 타임스팬으로 보면 결과적으로 시민적 성숙도의 차이에 따라 사회가 계층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어른’이 ‘아이’보다 사회적 상위에 자리매김한다는 뜻입니다. ‘어른’이 ‘아이’를 수탈하거나, 학대하는 일은 없습니다. 안 그러기 때문에 ‘어른’인 겁니다. 그리고 ‘어른’이 될 기회가 만인에게 열려 있는 사회를 만들어내는 걸 나는 ‘커뮤니즘 혁명’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잠정적으로 말씀드리는 ‘코먼의 재생’이란, 문화자본을 공공재로 삼고, 여기에 접근할 기회를 최대화하는 것입니다.

     

    ー 저희 같은 미디어는 그러한 것들을 소위 ‘스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그걸로 모두 돈벌이에 나서라고들 부추기고는 했는데요….

     

    스킬로 ‘파이프라인’을 만들려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구조나 인간의 본질에 관한 지()에 다가갈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제공되어야만 합니다. 사람이 성숙해질 수 있는 길을 가로막는다든지, 여기에 돈을 내라고 하는 건 안 될 일입니다. 사람이 성숙해지고 이에 따라 세상살이에 부담이 없어짐으로써 이익을 보는 건 사회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시민들이 성숙해져서 이익을 보는 건 그 사람 개인뿐만이 아닌, 사회 전체입니다.

     

    (2024-06-30 09:55)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1]

     

    앞에서 저는 연구자는 ‘뭔가를 짊어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최전선에 서는’ 것은 자신의 배후에 뭔가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전선을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업계 내부에서의 자신의 등급을 올린다든지, 업적을 평가받고 대학에서 정년 보장을 받는다든지, 저서가 팔린다든지, 학회에서 상을 받는다든지 하는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물론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그런 일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기 이익 추구를 동기로 삼아서 연구를 하면 ‘머리 회전수’가 어느 정도 이상은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는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리사욕을 추구할 때 잠재 능력을 최대화한다’고 사람들은 대부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력한 사람에게는 처벌을 준다는 단순한 상벌 시스템을 도입하면 모든 사람은 잠재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문부과학성의 관료는 거의 전원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그런 단순한 인간관으로 교육 정책을 입안해 왔기 때문에 일본의 교육제도는 이 지경까지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그다지 노력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자기 혼자뿐이라면 애당초 노력할 의욕이 안 생기지 않습니까? ‘귀찮으니까 노력하는 것을 그만두자’고 생각해도 그럼으로써 피해를 입는 것이 자신 혼자라면 힘을 낼 기력이 솟아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누가 생각해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지성을 향상시키려면 자신 이외의 ‘뭔가’를 짊어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당연한 말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고 자신이 실패하더라도 함께 고통을 나눌 사람이 많을수록 인간은 노력합니다. 짊어지는 것이 많으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 좋은 머리를 이용해서 무엇을 하는가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나는 머리가 좋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만 전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용 방식은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좋은 머리를 갖고 태어났다면 뭔가 다른 도움이 되는 길이 있지 않을까요? 태어날 때부터 눈이 좋은 사람은 멀리 있는 것이 잘 보이는 능력을 사용해서 ‘폭풍이 온다’든지 ‘육지가 보인다’고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코의 기능이 좋은 사람은 ‘뭔가 타는 냄새가 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자각해 화재를 빨리 진압할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힘이 좋은 사람은 도로를 막고 있는 바위를 치워서 모두가 잘 다닐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천부의 재능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요?

     

    『배움엔 끝이 없다』 67~68; 88~89.

     

    [2]

     

    이노센스(innocence)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성스러운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아까 했는데요. 그것이 이노센스입니다. 무구하고 무방비하다는 거죠. 이때 상처를 입으면 아이는 자기방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적 쇄신을 위해서는 일종의 무방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기방어를 제대로 하고 어떤 공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동시에 지적일 수는 없습니다. 지적이라는 것은 무방비하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방비하다는 것’은 아주 고도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학교 교육, 특히 초등・중등 교육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진무구해도 괜찮아, 무방비해도 문제없어, 무방비한 채 있어도 아무도 너희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단다.’

     

    무방비로 이노센스를 가진 채 성장하는 아이는 크면 아주 느낌이 좋습니다. 돈을 좋아한다든지 권력을 좋아한다든지 유명하게 되고 싶다든지 생각하지 않죠. 어른이 되어도 이노센스를 유지하는 아이는 사회적 승인을 까다롭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어도 모두가 상냥하게 대해 준 경험이 있으니, 어떻게든 명성을 떨치고 싶다든지 돈만을 탐한다든지 다른 사람에게 굴욕감을 줄 수 있는 입장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아이들 대부분이 다 그 입장에 선 이유는 어딘가에서 이노센스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무구하다든지 무방비한 모습을 지금 아이들에게선 거의 볼 수가 없죠.

     

    학교 교육이 해야 하는 일은 아이들 안에 겨우 남아 있는 이노센스를 지키는 것입니다. 무방비하지 않으면 완전히 새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강고하게 자기 방어를 하면서 지적으로 혁신적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103~104.

     

    [3]

     

    ‘연금생활자’라는 말을 프랑스어에서는 ‘랑티에(rentier)’라고 합니다. 이 랑티에들이 상당수 존재하였습니다. 정확한 통계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사치만큼만은 부리지 않는다면(사치에는 ‘권속을 거느리는 일’도 포함됩니다), 일생동안 무위도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존재하였습니다. 생활을 위해 남에게 명령받는다든지, 조직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자유인’이 수십만 명 단위로 유럽 각지에 산재해 있었던 것입니다. 귀족 또한 일종의 랑티에입니다만, 그보다 수입이 좀 적고, 생활 수준이 낮다 하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 아무에게도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는’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존재할 수가 있었어요.

     

    19세기에 활약한 명탐정들인 오귀스트 뒤팽이나 셜록 홈즈는 전형적인 랑티에입니다. 그래서 팔걸이 의자에 앉아 파이프를 물며 철학을 하고, 시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연극을 보고, 과학 실험을 하며, 살인사건 추리같은 걸 할 수 있었어요. 그들 자신이 꼭 문예 운동의 기수라든가 과학자가 아닐지라도, 동시대의 가장 민감한 향유층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은 ‘뒤팽과 나’ 라든가 ‘홈즈와 왓슨’의 뜬구름 잡는 대화를 증거로 대는 한 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에 새로운 사조가 등장했다, 자연과학계에서 모종의 발견이 이루어졌다, 혁신적 정치운동이 일어났다 하는 때에는 랑티에들이 가장 빨리 반응했어요. 뭐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한가하기도 하거니와, 자기들의 생활 그 자체에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여, 그러한 신기한 이야기에 달려듭니다. ‘다음 주에 개썰매를 이끌고 북극으로 출발하려 하는데, 대원이 한 명 부족하구려’ 하는 이야기를 듣고서, ‘, 나 갈래’ 하고 곧장 손을 드는 축은 랑티에밖에 없었어요. 직장이 없고, 부양가족이 없으며, 약간의 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19세기 말까지 유럽 지성의 최전선을 담당해왔어요. 이러한 ‘유한leisure’ 계급이야말로, 유럽 근대의 예술적, 또는 학술적 혁신의 온상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만 그렇다는 것이지 그다지 역사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만, 그저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치다 다쓰루, 위기의 위기.

     

    [4]

     

    아이들은 사춘기 무렵부터 성적인 욕망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초자아라고 하는 지극히 엄숙한 규범이나 도덕이 리비도를 억압하고 은폐하고 심지어 악마화합니다. 한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로서 자연스레 갖게 되는 성적인 본능을 마치 죄악인 양 억압하고, 아이들을 죄인인 양 몰아세웁니다. 그러면 초자아와 리비도 사이에 끼어 있는 에고는 깊은 죄의식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춘기 시절에 겪는 이러한 죄의식의 내면화 과정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섬세하게 그려져 있지요. 주인공 싱클레어에게 모든 악의 화신은 동네 불량배인 크레머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악이 바로 자기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춘기 무렵 성적 충동을 느낀 순간부터이지요. 이 책에서는 싱클레어의 심리세계를 묘사하면서 초자아가 어떻게 한 소년의 내면에 강한 죄의식을 심어주는지를 아주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성격과 더불어 한국에서의 성교육과 관련하여 중요한 개념은 ‘사유 금지(Denkverbot)’입니다. 이 개념은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의 주요 이론가 빌헬름 라이히가 특히 강조합니다.

     

    “아이의 자연스런 성을 도덕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불안하고, 소심하고, 복종적이고, 권위를 두려워하는 아이, 세상 말로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아이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인간의 저항능력을 마비시키고, 성적인 사유를 금지함으로써 사유 일반을 억압하고, 비판능력을 거세한다.”

     

    어렸을 때부터 성적인 것과 관련한 사유를 금지당하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사유하도록 유도받게 되면, 이것이 그 이후 한 인간의 인격 형성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비판능력을 거세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성숙한 민주시민을 기르는 데 치명적인 내상을 입힙니다.

     

    김누리,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194~198.

     

    [5]

     

    하지만 이것이 시스템의 전면적인 괴사(壞死)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백주 대낮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상당히 비참한 상황입니다만, 그 이면에서는 새로운 활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역사는 ‘다음 단계’에 돌입해있습니다. 그럼에도 신수 훤한 양반들(굳이 표현하자면 ‘사회 지도층’이겠지요), 그러한 조류 변화를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느꼈던 건 얼마 전에 지인의 결혼식 피로연에 초청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지인의 결혼 상대는 빵을 만드는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러한 연고로 제가 앉은 테이블에는 신부 측의 ‘빵을 가르쳐 준 스승’과, 그 밑에서 배웠던 젊은 동기 빵 기능사들이 동석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모두 같은 스승에게서 수업을 받은 후 해외에서 연수를 거듭하며, 일본으로 돌아와 각지에서 빵집을 개업한 분들입니다. 자세한 기술적 사항을 제가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의 빵은 세계 일류거든요’ 라고 단언할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지금 프랑스 빵 기능장들이 필사적으로 궁구하고 있는 것들은, 우리들이 이미 10년 전에 하던 것들입니다. 일본 빵은 10년 앞서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서는 활짝 웃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타입의 언명(言明)을 듣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분명히, ‘우리들이 세계 일류다’ 라고 마치 ‘오늘 날씨가 좋네’ 정도의 캐주얼한 어조로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종합 상사, 제조업, 언론, 학계, 엔터테인먼트 모두 ‘정신이 들고 보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세계 표준이 된 것 같은데’ 하는 얘기가 곧잘 귀에 들려왔습니다. 확실히 그렇지 않고서야 세계 제 2차대전 패전 이래 단기간에 세계 제 2위의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애잔한 이야기입니다만, 그런 말들이 쑥 들어가고 난지 30년이 흘렀습니다. 따라서 현재 40세 이하 연령대는 ‘일본인이 각종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했던 시절’을 리얼하게 상상할 수 없을 거라고 봅니다. 이런 얘기를 기성세대가 해봤자 젊은이들이 ‘노욕’으로밖에는 여기지 않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운이라는 것은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는’ 것입니다. 고희(古稀)를 지나서까지 오래 살아 보니 이를 절절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치다 다쓰루, <여명 직전 (이 가장 어둡기 마련) > 에필로그.

     

    [6]

     

    음악은 한 인간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조명해준다. 그것은 인간의 마지막 희망이며 마지막 피난처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반쯤 미쳤고 짐승이며 백정인 스탈린조차도 음악 속에서 그런 면모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는 음악을 두려워하고 싫어한 것이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증언』)

     

     

    더욱이 기타 플레잉의 진수는, 플레이어가 ‘악기의 정령’이라고 불릴 만한 것의 안내를 받아서, ‘내가 기타를 치고 있는’ 상태를 버리고 결국 ‘나의 신체를 매개로 해서 현이 하나로 울린다’는 상태를 성취하는 것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대체 왜 유독 기타라는 악기에서 연주자의 빙의가 빈번히 일어나는 것인가.

     

    (…) ‘그것’의 위력이 개인의 기량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범은 어느날 밤 헤리겔을 도장에 불러, 어둠 속에서 과녁을 향해 두 발의 화살을 쏘는 것을 보여주었다. 헤리겔이 과녁을 보니, 처음 쏜 화살은 과녁 한가운데에 적중했는데, 두 번째 화살은 처음의 화살을 쪼개서 적중했다. 이러한 신묘함은 개인적 노력을 아무리 쌓아올려도 결코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활에는 ‘신령’이 깃들어 있을 때에만, 이로써 ‘신들린’ 것 같은 퍼포먼스가 가능한 것이다.

     

    활에 위대한 영이 깃들어 있다는 신앙은 물론 아와 사범의 독창적인 발상이 아니다. 고래적부터 일본에는 화살에 신령이 깃들어 있어서 그것이 사냥 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여준다는 신앙이 존재했다. 민속학자이자 국문학자인 오리구치 노부오에 따르면, 고대 사람은 사냥의 능력을 가져다주는 ‘짐승의 혼さち’이라고 불리는 신령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짐승의 혼’이 빙의한 사냥꾼은 초인적인 수렵 능력을 발휘한다. 고대어에는 ‘짐승의 혼이 깃든 활さつ弓’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활’ 그 자체에 ‘짐승의 혼’이 빙의되어 있다는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오리구치는 쓰고 있다. 활시위가 격하게 웅웅거릴 때, 고대 사람은 그것을 ‘상위 차원에서의 혼의 발동’을 들었다. 활의 진동음은, 그것이 가져다줄 풍성한 사냥감의 기대와 불가분의 관계였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들이 갖고 있는 신체의 태고적인 층에서는, 활시위의 웅웅거림을 외경과 기대가 섞인 감정으로 들었던 고대인의 기억이 지금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우치다 다쓰루, 우드스탁

     

    [7]

     

    예를 들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극히 희박한 나라가 있다고 합시다. 거기서는 해외 서적과 DVDCD 해적판이 염가로 유통됩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단기적으로는 그것으로 큰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타인이 독창적으로 고안한 것을 통해 일군 성과를 타인이 모방하고 복제하여 부를 얻는 것이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혁신가에 대한 경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자신이 손수 노력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타인이 만들어 내는 것을 기다려 그것을 훔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회는 구조적으로 ‘손수 노력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자’는 의욕이 파괴됩니다. 그 나라에도 혁신적인 재능은 태어날 테지만 그들은 자신의 독창적인 고안이 표절자에 의해 탐식의 대상이 되는 사회보다는 독창성이 충분한 경의의 대상이 되고 대우받는 사회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하겠죠. 단기적인 이익을 좇아 저작권을 가벼이 여기는 사회에서는 창조에 대한 동기 그 자체가 손상됩니다. 중국처럼 해적판이 횡행하는 나라와 미국처럼 저작권이 주식처럼 거래되는 나라는 저작권 문제에서 정반대인 듯 보이지만, 원저작자에 대해 순수한 감사를 잊고 있는 점에서는 꼭 닮았습니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191~192.

     

    [8]

     

    하토야마 씨의 사임 이후 몇몇 신문사에서 취재를 와서 “하토야마 정권을 어떻게 총평하십니까?”라고 묻기에 저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떤 식으로 구축되어 있는지를 백일하에 드러냈다는 점이 최대의 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점에 관해 말하자면 오자와 이치로와 하토야마 유키오는 정치의 기본적인 방향성에서는 일치합니다. 미국으로부터의 외교상의 자유재량권, 가스미가세키에 대한 견제와 언론에 대한 경계심이라는 세 가지 점에서 말이지요.

     

    그런데 대미 전략은 오자와 씨에게는 최우선 과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주적은 검찰과 가스미가세키와 언론이기 때문이지요. 그의 ‘검찰 증오’는 특히 깊지요. 이것은 스승인 다나카 가쿠에이 이래의 원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나카 가쿠에이의 록히드 사건 배후에 미국 국방성이 있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록히드 사건 이후 미국의 허가를 얻지 않고 일본이 외교상의 자유재량권을 행사하려고 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는 것을 보면 미국의 허락 없이 미국의 국익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외교적 선택을 한 경우에 얼마만큼의 페널티가 부과되는지 일본의 정치가는 록히드 사건에서 알게 된 셈입니다.

     

    『배움엔 끝이 없다』 144~14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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