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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일 안보 조약이 사라지는 날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7. 18. 18:46

    매년 헌법기념일이 되면 호헌 관련 집회*에서 불러주는 일이 많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고베에도 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일미 안보 조약이 폐기될 경우 예상되는 일본의 미래’ 이야기를 하고 왔다.

    (* 자국의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음을 골자로 하는 현행 헌법 지지 - 옮긴이)

     

    예전에도 얘기한바, 미국 내부에는 미국의 동맹국과 체결하고 있는 안전보장 조약이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론 폴 의원은 해외 미군 기지의 전면 폐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해외 미군 기지를 유지하기에는 재정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정이 있다. 미국에는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킨다’를 기본적인 신념으로 두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수천만 명 규모로 존재하고 있다. 이는 일본 미디어가 대체로 보도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리버테리언은 징병과 납세를 기피한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는 것이지, 그러다가 노상을 헤매며 영락한다 할지라도 공권력의 보호를 요망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는 다섯 번에 걸쳐 징병을 기피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꾀병’이라든가 ‘비국민’ 같은 식으로는 비판하지 않는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떠한 이유로 목숨을 걸 것인지를 각자 결정하는 게 자유의지주의자들이 살아가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건 미국에만 해당하는 얘기일 뿐 일본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리버테리언의 관점에서 보는 일본은 여러모로 ‘비 리버테리언적’임을 의식하는 게 좋다. 일본은 자국의 국방 전략을 미국에 일괄 위탁하고 있다. 자력으로 안전 보장 전략을 입안하지도 않고 실시하지도 않는 나라라는 말이다. 미국으로부터 조언받은 대로 병과를 편성하고, 무기를 구입하며, 기지를 설영해 온 것이다. 최근에는 ‘통합 작전 사령부’를 창설함에 따라 자위대와 주일 미군 사이의 일체화가 더욱 강화된 형국이다.

     

    한국의 경우 전시작통권이 625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에게 위양된 바 있다. 이후 역내 군사 충돌 발발 시, 미군과 한국군 둘 중 누가 지휘권을 가지느냐 하는 문제가 양국 사이에 뒤엉켜 있는 상태다. 작전통제권을 유지해 놓고 있으면 미군은, 한국군을 ‘2군’으로써 이사(頤使)할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굴욕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해 두면 북측과의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그 즉시 미국을 분쟁 당사자로 ‘휘말리게 할 수’ 있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미국이 ‘한국의 문제에 관여할 바 아니다’라고 나와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상당히 결론짓기 어려운 것이다.

     

    일본도 ‘만약의 사태’에 미군이 피할 수 없도록 다양한 책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합리적으로 행동하느라고 그러는 것일 테지만, 미국 리버테리언이 볼 때 이것은 자기 몸을 자기가 지킬 기개가 없는 약자의 교활함으로밖에는 비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예비 선거 와중에 나토로부터 탈퇴하겠다고 언급했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UN 혹은 파리 협정에서도 탈퇴할 법하다. 리버테리언으로서는 당연한 처사다. 그 판국에 이르러 ‘일미 안보 조약 폐지’라는 선택지가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우선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키라’고 일갈해 둔다. 그래도 일본 정부가 매달린다면 ‘사정이 그렇다니 해주겠다만 그만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 주지’라는 식으로 트럼프 특유의 ‘딜’을 꺼내 든다. 그리고 일본은 쥐어 짜일 만큼 쥐어짜인다.

     

    그러나 그렇게 애를 쓴다 해도 문제는 또 있다. 가령 일본과 중국 사이에 우발적인 충돌이 생겼을 때, 미국 내에서는 ‘일본을 위해 미국이 중국과 전면전에 나설 필요는 없다’며 평화 반전론이 지배적일지 혹시 모른다.

     

    이렇듯 ‘일미 동맹 중추’를 일본 정치가나 미디어는 주문처럼 외어 왔음에도, 그 동맹이 미국 손으로 백지화될 리스크에 대해 조금이라도 상상력을 행사해 보자는 취지로 가두 연설을 하고 왔다. (『주간금요일』 48)

     

    (2024-07-01 08:4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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