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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정의 종언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7. 22. 13:59

    도쿄도지사 선거일 이튿날 ‘일본닷컴’이라는 매체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아래는 그 기사에 약간 가필한 것.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선거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의례라는 인식이 상당히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다는 것이었다. 선거는 본래 유권자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의원을 뽑는 소중한 기회라는 인식이 일본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에 투표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정책을 실현시켜 주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닌, ‘자신과 같은 부족에 속해 있는 사람’에 투표하는 것처럼 필자에게는 보였다. 자신들과 ‘케미스트리’가 맞는 인간이라면, 그 유아성이나 성격의 흠결조차 ‘동봉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가령 투표 결과, 세상이 보다 살기 힘들어진다 해도, 그것은 ‘자신이 속하는 부족’이 정치권력을 행사한 귀결이므로, 이렇다 할 불만 사항은 없다.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보다도, ‘자기와 똑같은 인간들로 이뤄진 부족’이 권력과 재화를 얻는 것. 그것을 우선한다. 이것이 ‘정체성 정치’의 실태이다.

     

    자기가 유아적이고, 이기적이고, 편협하며, 공격적인 인간이다 싶은 생각이 들면, 옛날 사람들은 그걸 ‘성숙’해지기 위한 인센티브로 삼았다. ‘조금은 똑바로 사는 어른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오늘날은 ‘그런 모습인 내가 사랑스러워’라고 커밍아웃하는 게 인간적이고, 단적으로 ‘좋은 일’ 취급받는 시대인 거다.

     

    솔직히 말해서, 이해가 잘 안된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그렇게 좋은 걸까?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 미칠 지경인 걸까? 나는 똑같은 인격 그대로인 건 딱 질색이다. 숨 막히고, 자유롭지 못하며, 무엇보다 재미가 없어서 못 견디겠다. “자기 자신에게 못 박혀있는 것”을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체험이라고 썼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애당초 ‘자기가 반드시 자기여야만 할 때의 불쾌함’을 추력으로 삼아, 생물은 이제까지 진화해 오지 않았나? 단세포생물이 단세포생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만족하게 되면 그냥 거기서 ‘끝’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체성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필자는 기묘한 생물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째서 ‘자기 모습 그대로 있고 싶은’ 걸까. 자기 모습 그대로 있는 동안 자신한테 짜증을 느꼈던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걸까? , 진짜로. 솔직하게 그렇게 물어보고 싶은 거다.

     

    선거 얘기를 마저 하도록 하자.

     

    이번 도지사 선거에서는, 선거를 단순한 매명 행위나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자들이 다수 후보로 등록했다.

     

    공직선거법뿐만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제도는 대부분 ‘성선설’ 혹은 ‘시민은 대개 상식적으로 행동할 것이다’라는 가정하에 설계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성선설’에 입각한 제도는 빈틈투성이다. 그 틈새를 ‘해킹’할 시, 눈치 빠른 인간이면 누구라도 간단하게 자기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후보자에게 여러 특권이 보장된 선거라는 기회 역시 이용하면, 사리사욕을 추구한다든지, 대의제 민주주의 그 자체를 조롱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 사실을 이번 선거는 밝혀냈다. 이제 ‘성선설’은 버티기 어려워진 듯하다.

     

    따지고 보면, 선거가 이렇게까지 경시 받기에 이르게 된 것은 2012년 이후 아베, 스가, 기시다 3대 자민당 정권의 입법부 경시가 하나의 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필자는 본다.

     

    일본국 헌법에는 입법부가 ‘국권의 최고 기관’으로 명시되어 있다. 아베 정권 이래, 행정부를 입법부보다 상위에 놓는 데 자민당 정권은 다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국정의 근간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들이 차츰 국회 심의를 거치지 않은 채 각의만으로 결정되어, 야당이 거세게 반대하는 법안들이 강행 처리되었다. 국회 심의가 실질적으로는 아무 의미를 갖지 않는 ‘형식적인 의식’과도 같이 보이도록 하는 데 자민당 정권은 매우 열심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제가 입법부의 장입니다’라는 틀린 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는 아마도 ‘의석의 과반수를 점하는 정당의 총재라면 자유로이 입법할 수 있다’고 그가 느낀 실제적 감각이 얼핏 드러난 것일 테다. 그런데,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부의 장, 그리고 그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장을 한 사람이 겸하는 정치체제를 ‘독재제’라고 부른다. 결국, 그는 ‘내가 독재자다’라며 민주주의의 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언명을 수차례 반복한 셈이 된다.

     

    현행 헌법하에서 독재제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유용한 방책은 ‘입법부의 위신을 저하하는 것’이다. 유권자의 대다수가 ‘국회는 기능하지 않는다’ ‘국회 심의는 내용 없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은 선량하지 않은, 사리사욕을 우선시하는 인간이다’라는 인상을 품으면, 민주정은 사실상 끝난다. 바로 그렇기에 자민당은 지난 12년 동안, 국회의원은(자당 의원을 포함해) 지성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보통 시민 이하일지 모른다’는 인상을 부식(扶植)하는 데에 엄청난 노력을 들여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성공했다. 지성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평균 이하’인 의원들을 대량으로 배출함으로써 자민당은 쓸모없는 정당이 되었으나, 그 대가로 입법부의 위신을 짓밟는 데에는 완연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사람들이 선거에 입후보했으며,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이번 선거의 현실이 드러났다.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2위에 오른 이시마루 신지 후보는 아키타카다 시장 시절에 시의회와 여러 차례 대결했으며, 시의회가 잘 안 돌아가고 있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내비쳐 인터넷에서 주목을 모았다. ‘입법자’와 ‘행정자’는 대립 관계이며, ‘행정자’가 상위에 있어야 한다는, 아베 전 총리가 체현해 왔던 ‘독재 지향’ 노선을 그는 충실히 견지하고 있다. 유신회도 ‘독재지향’ 면에서는 다를 바 없다. ‘의원 수를 줄여라’라는 제언은 ‘쓸데없는 비용을 삭감하기 위해서’라는 합리적인 정책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정치적 입장의 대표자가 의회에서 의논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행정부 수장에게 전권 위임하라’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자민당의 비자금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그 지위를 이용해 아무렇지 않게 법률을 파괴하는 현실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이 사건은, ‘국회의원이란 변변찮은 인간이다’라는 민주주의를 공동화하는 메시지, ‘권력 측에 가까운 의원이면 위법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법의 지배를 공동화하는 메시지를 두 가지 동시에 발신하고 있다.

     

    이 메시지를 ‘경고’로 받아들인 사람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여기며 정치 개혁을 목표하겠으나, 이 메시지를 ‘현상 보고’로 받아들인 사람은 ‘민주정이 끝났다’는 허무감에 잠길 뿐이리라. 그리고, 일본인의 상당수는 이 뉴스를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과 함께 받아들이는 것처럼 필자에게는 보인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일찍이 “민주정은 최악의 정치 형태다. 다만, 과거의 모든 정치 형태를 제외한다면”이라고 말했다. 어째서 민주정이 ‘최악’인가. 그 이유는 운용하기가 극히 어려운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민주정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시민’이 다수 존재할 것을 전제로 하는 제도이다. 유권자의 다수가 ‘건실한 어른’이 아니고서는, 민주정은 그만 중우정치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민주정은 사람들을 향해 ‘부탁하건대 어른이 되어 주시게’하고 간청한다. 민주정은 유권자를 향해 ‘지금 당신의 모습과는 다른 인간이 되어 주시게’하고 간청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오지랖’이라며 화를 내는 유권자가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다수의 유권자가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제도의 간청에 화를 내며 ‘나는 나 그대로가 좋다. 나는 나 자신이 정말 좋은 거다’라고 불평하게 됨으로써 민주정은 종말에 근접하게 된다.

     

    시민을 향해 정치적 성숙을 촉구하는 정체는 민주정 말고는 없다. 제정, 왕정, 귀족정, 과두정 모두 ‘시민이 유치하고 우둔할수록 통치 비용이 싸게 먹히는 정치체제’이다. 따라서, 이 모든 정치 체제는 시민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성숙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어려운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는 일은 우리 지배자가 대신 해 줄테니, 너희들은 그냥 우둔하게 있어라’ 하는 감언을 계속 내보낸다. ‘임금이 베푸는 덕 같은 건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 이라고 노래를 부르며, 자신이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고복격양’ 고사에 나오는 노인이야말로 우민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 가운데, 민주정만이, 시민을 아이처럼 다루지 않는다. 시민에게 ‘어른이 되거라’라는 성가신 작업을 강요한다. 그래서, 민주정을 다들 싫어하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민주정은 계속 혐오받을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여러분은 지금 있는 그대로도 충분합니다. 성숙할 필요도, 자기 자신을 쇄신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는 달디단 메시지를 속삭이는 사이에, 민주정은 끝장나 있는 것이다.

     

    (2024-07-12 08:4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한 걸음 뒤의 세상』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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