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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미합중국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7. 29. 20:20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사이에 있었던 토론이 마무리되었다. 양측 모두 상대를 비방해 대는 차마 눈뜨고 못 볼 광경이 펼쳐진 가운데,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당당하게 내리꽂는 트럼프라는 상대 앞에서 입바른 팩트에 기초해 반론하지 못하였던 바이든의 쇠약한 모습을 본 미국 유권자들은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민주당은 후보를 교체해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지금 당장 대권주자를 선정한다손 쳐도 11월에 있을 대선 일정에 대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세계는 2기 트럼프 행정부를 맞게 될지 모른다. 그는 ‘미국 제일주의’를 내걸고서, 전임자의 정책을 대거 갈아엎으면서, 국제 질서 유지에는 부차적인 관심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미국 제일주의’(아메리카 퍼스트)는 트럼프가 독창적으로 쓰기 시작한 구호가 아니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축은 찰스 린드버그 대령을 리더로 옹립한 대전간기 시절 반전파 사람들이다. 그들은 구라파 지역의 전쟁에 미국은 관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가령 나치가 유럽 전역을 지배하며 가열한 탄압을 행할지라도 미국과는 상관없는 일이고, 구라파의 구질서를 유지케 하는 데 미국 젊은이의 피를 흘려야 할 필연성은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필립 로스의 소설 『미국을 노린 음모』는 이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린드버그 대령이 1936년 대통령 선거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꺾고 대통령에 오른 미국을 묘사한 ‘근 과거 서사’이다. 소설 속에서 일본은 미국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데, 동아시아 내에서 미영불 열강의 간섭을 뿌리치며 식민지 확대에 열을 올린다.

     

    두 번째 임기 때 트럼프 역시 그와 비슷한 불간섭주의를 채택하며, 푸틴과 시진핑에게 ‘당신들 세력권에서 무엇을 하든 미국은 관여하지 않겠다’라고 자유 재량권을 줄 가능성이 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로부터의 탈맹, 기후변화와 관련된 파리 협정으로부터의 탈퇴, 유엔 제기관에 대한 기금출연 중지 등이 정치 일정에 오를 것이며, 당연히 미일 안보 조약 폐기안에 대해서도 역시 슬금슬금 패를 꺼내 들 가능성은 있다.

     

    물론 주일미군 기지는 미국 입장에서 손 떼기가 상당히 아쉬운 ‘자산’이다. 아마도 ‘안보 조약을 유지하고 싶다면 미국에 더욱 조공해라’ 이렇게 트럼프는 들고나올 것이다. 미군기지의 반영구적인 임차, 소위 ‘눈치코치 분담금’ 증액, 무기 대거 구입 등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들이밀 수 있다. 일본 정부로서는 이 모든 사항을 유유낙낙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금껏 80, 독자적인 안보전략을 끝끝내 마련한 적 없이 ‘일미 동맹 기축’ 일변도로 해왔으므로 손쓸 새가 없다. 증세, 개헌, 징병제 도입 등 그 어떤 대가도 울며 겨자 먹기일 뿐이다.

     

    참으로 암울한 미래이다. 허나, ‘미국 제일주의’가 미국의 영속적인 안태(安泰)를 보증해 주지는 못한다. 합중국은 즉 ‘국가 연합’(United States)이다.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려는 일개 ‘국가’(state)가 ‘텍사스 퍼스트’나 ‘캘리포니아 퍼스트’ 등을 꺼내 드는 경우, 연방정부에는 이를 물리칠 논거가 과연 존재할까.

     

    합중국 헌법 제정 당시에도 주정부에 독립성을 맡길 것인가, 연방정부에 커다란 권한을 부여할 것인가를 둘러싼 격한 논쟁이 있었다. 그 까닭은 제임스 매디슨, 알렉산더 해밀턴 등의 『연방주의자 논고』(The Federalist)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결국에는 연방정부에 군사적으로 대규모 권한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유는 만약 주정부가 군사를 전관하게 된다면, 외국군이 쳐들어왔을 때 어떻게 할 거냐는 공상과학적 상상을 연방주의자들이 내놓았기 때문이다. “영국이 버지니아주에 군사적 침공을 하였을 때 코네티컷이 ‘남의 나라 일이다’ 라고 수수방관한다면 합중국은 어떻게 되겠느냐”라고 연방주의자는 미루었다. 분명히 이러한 설정에는 설득력이 있다.

     

    텍사스주에서는 현재 독립운동이 뜻밖에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주민투표나 주의회 결의로 독립이 선언되었을 경우, 연방정부는 이에 어떻게 대처할 셈일까. 텍사스를 설득하기 위해 “중국이나 러시아가 텍사스를 공격해 오면 어쩔 거냐. 뉴욕 주가 ‘텍사스를 위해 뉴욕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릴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면 어쩔 거냐” 라는 식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미국이 건국될 시점에서의 논거를 연방정부가 다시금 고문서 바깥으로 끄집어내 탁탁 털어서 재이용하기라도 할 텐가? 과연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주간금요일』 72)

     

    (2024-07-14 09:24)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한 걸음 뒤의 세상』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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