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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선설 사회제도가 여러분께 당부하기를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8. 3. 19:22

    이번 도쿄도 선거에서는 유독 공직선거법의 허점을 노리는 탈법적 행위가 돋보였다. 어떤 정당이 24명의 후보를 옹립하면서 선거 벽보로 절반 이상 공간 차지하기에 이른 작태는, 포스터 내걸 권리를 돈 받고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게시판에 선거와 상관없는 사진이나, 별도 웹사이트로 유도하는 검정 도형을 떡하니 실은 포스터도 있었다.

     

    이제까지 정견 방송이나 선거 공보에는 어딜 보나 시민적 상식을 결여한 인물이 줄곧 등장하곤 했다. 이걸 그저 ‘민주주의에 드는 비용’ 정도로 여기며 우리는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비상식적 군상만큼은 전대미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딱히 선거를 이용해 돈을 벌거나 관심을 받으려던 건(매명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공직선거법이 ‘성선설’로 운용되고 있다는 그 자체를 조소하는 것이었다. 공탁금만 치른다면 공적 수단을 이용해 대의민주주의라는 것의 취약성과 기만성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망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이상주의적인 개념인가, 그것을 폭로하고 조롱하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 박차를 가한 진짜 동기였다고 필자는 본다.민주주의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제도인지, 오늘만 사는 우리들이 이렇게 깽판 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겠지?’라고 그들은 국민들에게 도발하듯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행위를 처벌토록 하는 법령 정비에 필자는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공직선거법은 민주주의의 기초이다. 그것은 성선설에 기반해 제도설계 및 운용되고 있다. 물론 현실의 시민들은 모두가 그렇게 성정이 선량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젖히고 공직선거법이 성선설에 입각해 설계된 이유는,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대다수는 사회가 평화롭고 안정적이면서 시민적 자유가 보전되기를 바라고 있고, 그렇기에 기초적인 사회계약에 따라 준법적으로 행동할 것이다’라는 인간 이해를 제도에 의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 사회 시스템은 현실적으로 시민들의 성정이 선하다고는 전제하지 않는 한편(실제로 그렇지 않다), 시민들의 성정이 선량할수록 시민들 자신이 최대 이익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성선설에 기초해 만들어진 제도는 유권자들이 보통 저자(시장)에서 하는 것처럼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닌, 시민 사회의 일개 구성원으로서 ‘장기간에 걸쳐 자기 이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사량토록 촉구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오랜 기간에 걸쳐’라는 조건이 있느냐 없느냐다.

     

    시장 참여자의 행동 기준은 ‘무시간 모델’이다. 주문과 납품 사이에는 시간 차가 없는 게 이상적이며, 지금 떠올린 아이디어곧바로 환금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장기적’이란 부사는 마켓 플레이스 어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이 자리의 이익만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시민 사회의 제제도는 오랜 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만 하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 수의 시민이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준법적으로 행동할 것이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성선설적 제도는 무사려의 산물이 아니다. 시민들의 옷소매를 붙잡고서 ‘제발 부탁이니 어른으로 자라 주게(그렇지 않으면 사회를 지탱 못 한다네)’ 하는 리얼한 간청의 산물인 것이다. (『주니치 신문』 718)

     

    (2024-07-27 08:5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한 걸음 뒤의 세상』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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