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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불日佛 우익을 나란히 놓고 보아하니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6. 19. 12:13

    전에도 밝힌 바 있듯, 곤도 세이쿄의 저서 『군민 공치론』 복각에 즈음하여 이 책의 해설을 쓰고 있다. 지난 1년쯤 동안 곤도 세이쿄의 저작과 연구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ー우치다 료헤이, 도야마 미쓰루, 후쿠자와 유키치, 김옥균, 미야자키 도텐, 기타 잇키 등등ー의 책을 내리 읽었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에 프랑스 19세기 극우 사상(파시즘과 반유대주의)을 연구했었다. 논문도 썼고, 연구서도 옮겼다(베르나르앙리 레비의 『프랑스 이데올로기』와 노먼 콘의 『시온 의정서』). 반세기 가까이 지나고서 거의 같은 시기의 일본 우익 서적을 읽고 있다. 불가사의한 부합(符合)이다.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동서의 차가 그리 크지 않다. ‘원초의 청정’이 이런저런 ‘이물異物’의 혼입으로 인해 더럽혀지고, 쇠퇴하고 있다. 따라서 ‘이물’을 적시하고, 그것을 도려낸다면, 다시금 집단은 그 활력과 윤택함을 회복할 수 있다 하는 서사이다. 프랑스의 경우, 회귀해야만 할 ‘진정한 프랑스’에는 역시 왕이 군림한다. 일본의 경우, 회귀해야 할 지점은 ‘임금 곁의 간신을 척결하여 군민 공치를 이룸’이다. 중간 권력(소가 씨, 후지와라 씨, 헤이케, 아시카가 씨, 도쿠가와 씨)은 배제되고, 이에 따라 성왕과 양민 사이에는 어떠한 소원함이 없이, 군민의 의중은 한결같이 일치한다. 번잡한 관료 기구나 번문욕례 어느 것도 없다. 곤도 세이쿄를 가만히 읽다가는 ‘이런 세상이 만약 있다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명백히 현재 프랑스에 ‘왕당파’는 없다. 그런데 일본에는 ‘천황제’가 있다. 천황제라는 태곳적 기원을 가진 제도와 의회민주주의(원문 立憲 데모크라시 제도 – 역주)이라는 근대적 원칙을 어떻게 양립시킬 수 있겠는가. 그것이 일본인에게 절박해 있는 정치적 숙제이다. 유사 이래 적당한 ‘정답’이 존재하지도 않으며 설령 있다 해도 그것을 베껴서 될 일이 아니다. 스스로 머리를 써서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것을 ‘생산적인 물음’으로 여긴다. 이 물음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정답 없는 물음에 직면함에 따라 사람은 정치적 성숙을 이루는 법이다. (시나노 마이니치 신문 5월 10일자)

    (2024-05-29 10:15)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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