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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건 어떤 겁니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5. 30. 14:49
어느 국회의원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치 현안에 관한 이야기겠거니 하며 찾아갔다. 그런데 “선생님은 죽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정권 교체 가능성에 관한 여러 가설을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별안간’ 하는 질문을 받아서 놀랐기는 했다. 허나 ‘죽음’은 나 자신의 염두를 떠난 적이 없던 주제였으므로, 생각나는 바를 술회했다.
인간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저마다 무언가를 앓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병이 ‘죽음’이다. 다른 동물 같았으면 ‘자기의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아두고 살 수밖에 없다. 한 명 한 명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참기 힘든 사실을 완화시키려면, 저마다 꼭 이야기를 지어내야만 한다.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이야기 형식이다. 이에 필자 역시 자전 서사를 하나 지니고 있다.
필자가 이미 고희를 넘긴 지 오래다. 치아는 임플란트고, 무릎에는 인공관절이 들어가 있다. 옛날 같은 수렵 시대였다면 음식물도 잘 씹지 못할 것이며, 집단을 따라다니며 걸을 수도 없는 노인이므로, 하루아침에 길가에 버려져 죽을 운명이었다. 장기에도 이곳저곳 손상이 와있지만, 의학의 진보 덕분에 살고 있다.
따라서, 현재 상태로서는 ‘살아있다’기보다는 ‘아직 죽지 않았다’에 가깝다. 점점 죽음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죽음에는 이르지 않았음을 생생히 느끼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생물학적인 죽음이 찾아와 장례가 끝나고 ‘추모회’도 소란스레 열리며 유고집도 나오고 칠회기를 마칠 무렵에는 지인이고 친구들이고 점차 귀적에 든다. 그리고 누군가가 ‘여러분도 이제 슬슬 운신을 못 할 춘추가 되셨으니, 이번 십삼 회기쯤 해서 우치다 선생 법요도 어지간히 하려 하니 다들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라는 말이 나오고, 모두가 ‘그럼 그럼’ 하며 수긍합니다. 그다음부터는 오래된 문인 제자가 가끔 묘비에 때를 벗기러* 찾아올 뿐, 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 역시 차차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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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대개 화장한 뒤 비석만 세움. 마치 목욕시키는 것처럼 물을 떠서 씻겨 주는 것이 일반적인 성묘의 정경이다. – 옮긴이)
그렇게 생각하면 대체로 생물학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십삼 년 전 쯤부터 ‘죽음이 시작되고’, 십삼 회기 뒤에는 ‘죽음을 마치는’ 계산식이 나온다. 다시 말해 인간은 27년에 걸쳐 천천히 죽는다. 이것이 스스로 지어낸 ‘서사’이다.
이런 얘기인데 어떻습니까 했다. 그랬더니 예의 국회의원도 깊이 수긍하며 “그렇군요. 그런 사고방식도 있었군요” 하고 납득하고 계신 것 같았다.
‘자기의 죽음이라는 참기 힘듦’을 완화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현세에서 공덕을 쌓으면 내세에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것, 극락정토에 왕생한다는 것, 조만간 미륵보살의 구원이 도래한다는 것 등등 모두 수많은 사람들이 택했던 이야기이다. 그 가운데서도 걸출한 것 중에 ‘황천’으로 떠난다는 이야기란 게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쓰는 장편 소설을 유심히 살펴보면 언제부턴지 대부분 주인공이 ‘구멍’에 떨어져, ‘황천’을 헤매다 돌아오는 그런 구조를 엿볼 수 있다. 가와이 하야오는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대담을 통해, 이렇게 ‘사후 세계’에 관한 상상력을 행사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죽고 나서 갈 수도 있는 곳을 알아보는 건 실로 엄청난 방법이에요. 그러니까 황천 나라에 가서, 그것을 보고 오는 경험을 몇 번씩 하는 겁니다. 그러면 머잖아 자기 자신이 어디로 가면 좋을지, 거기에 어떻게 갈지를 알게 되는 겁니다.”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이와나미 서점, 1996년)
역시 가와이 하야오 선생의 언사는 특출나다. (주니치 신문 ‘시좌視座’ 3월호)
(2024-05-08 16:13)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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