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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와 뿌리내릴 곳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5. 27. 14:57

    제가 알고 지내는 젊은 친구로부터 청년층 빈곤을 다루고 있다는 현장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는 빈곤자의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의 직원을 하고 있습니다. 구조 거점에는 ‘배를 주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무료 급식대 앞에 줄을 서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끼니를 잇지 못하는’ 젊은이가 수백 명 있다는 사실을 듣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 중 많은 경우, 본가는 있지만 집에 있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집에는 자신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와 헤맵니다. 그런데, 돈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범죄에 휘말려, 피해자가 되든지 가해자가 되든지 하는 위험에 신변을 노출하게 됩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있을 곳이 없다’는 말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왠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아마 집이 되었든 학교가 되었든 ‘있을 곳’은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 있고 싶지 않다는 거지요. 이유인즉슨, 거기에 있으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가 전부 정해져 있고, 그 이외의 선택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좁은 곳에 처박혀서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숨도 쉴 수 없으니까요. 이게 젊은이들이 ‘있을 곳이 없다’고 말할 때의 실상이 아닐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정 내에서도, 학교 내에서도, 알바하면서도, 친구들과 있을 때도, 자신이 가져야 할 입장이나, 자신이 해도 좋은 행동이나, 꺼내도 되는 좋은 말이나, 입어야 하는 옷도, 전부 정해져 있어서 거기서 한 발짝이라도 나가는 것은 허락받지 못합니다. 그러한 ‘문어잡이 항아리’와도 같은 곳에 가만히 있으면, 일단 당장 밥을 먹는다든지, 숙식한다든지, 수업을 받는 등의 일은 허용되지만, 거기서 나가는 것은 불허됩니다. 그것이 ‘있을 곳이 없다’고 말할 때의 실감이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몇 년 전쯤에 미국 잡지가 일본의 대학 교육에 관한 특집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인터뷰에 등장한 대답들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캠퍼스 생활을 세 가지 형용사로 설명했습니다. Trapped, suffocating, stuck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덫에 갇혔다’, ‘숨이 막힌다’, ‘몸이 얼어 있다’. 아마도 이 칼럼을 읽고 있는 고등학생 여러분 역시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이 실제적 감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일본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냉랭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회가 그들을 방치하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이런저런 기회만 있다 하면 감옥과도 같이 ‘좁은 공간’에 가둬두려 하고 있습니다. 쇠창살 속이니만큼 ‘바닥이 차다’는 식으로 느끼는 겁니다.

     

    전에 브라질에서 10년 살다가 일본에 돌아온 친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자녀가 초등학교 마치고 돌아와서,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이 이상한 질문을 하셨는데, 대답을 못 했어’라고 말했던 모양입니다. ‘무슨 질문을 받았는데?’라고 물어보니, ‘너는 앞으로 무엇이 될 거야?’라는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브라질에 있었을 때는 어른들한테서 그런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지라 그 뜻을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저도 어렸을 적에 그런 질문이 싫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항상 거짓말로 둘러댔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째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른 시기부터 ‘틀’에 가둬두려는 걸까요?

     

    지금은 초등학교 때부터 ‘커리어 여권’ 에 해당하는 걸 갖게 해서, 최단 거리로 앞으로의 커리어 형성에 돌입하도록 아이들을 ‘좁은 길’로 몰아넣고 있는 꼴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이 뭐니?’라고 물어보면,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 같습니다. 당연합니다. 생물은 살아감에 있어 그 가동역이 넓으면서, 다음 행동에 관한 선택지가 많은 곳에 있으면 안심하고, 자유도를 잃으면 불안해집니다. 지금 일본의 교육은 아이들을 생물로서 약하게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게 아닐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형설시대』 2월호)

     

    (2024-05-08 09:50)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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