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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존속의 비책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5. 21. 17:32
대입의 계절이 왔다. 필자는 도쿄에 있는 의학 관련 대학의 이사 및 지방 여대의 평의원을 하고 있다. 그런 탓에 계절이 돌아오면 여기저기서 입시 상황에 관한 보고를 듣는다. 살아남는 대학과 벼랑 끝에 몰린 대학 사이의 격차가 해마다 벌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현시점에서 정원을 충족하고 있는 대학 역시 저출생이 지속될수록, 머지 않아 ‘벼랑 끝’에 서게 된다. 모처럼 전국 방방곡곡에 질 좋은 교육연구 거점을 세워온 형국이었다. 이를 시장 원리에 맡기고 통폐합해서, 교육 기관의 도쿄 집중화를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일까?
근대 일본에서 교육을 충실케 하는 것은 국가적 급무였다. 메이지 시대 말기까지 도쿄, 교토, 센다이, 후쿠오카에 제국대학 4곳을 만들었다. 최종적으로는 타이베이, 경성을 포함한 아홉 제국대가 탄생했다. 구제고교의 설립은 한층 일렀다. 도쿄일고의 경우 메이지 19년. 메이지 41년까지 센다이, 교토, 가나자와, 구마모토, 오카야마, 가고시마, 나고야에 여덟 개의 ‘넘버 스쿨’이 설립되고, 이후에도 소재지를 학교 이름으로 딴 ‘네임 스쿨’은 마쓰에, 히로사키, 미토에서 뤼순까지 19개교가 설립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래, 1990년대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고등교육기관을!’이라는 국가 목표가 의문시되는 일은 없었다. 이런 150년래의 국가 목표를 인구 통계상이라는 이유로 말끔히 포기하면서 ‘통폐합 작업을 시장에 하청’하자고 했다. 시장에 맡겨 두면, 머지않아 수도권 인근에 고등교육기관이 밀집하게 된다. 이미 한국은 그렇게 되었다. 인구의 50.5%가 서울 주변에 밀집해 있는 이웃 나라에서는, 부산을 필두로 지방대의 폐교가 줄 잇고 있다. 일본도 이대로 가다가는 이런 시나리오를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지방이 ‘교육 공백 지대’가 되고 마는 일본 열도의 풍경에 대해서 고위 교육 공무원들은 어느 정도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걸까? 필자 눈에는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출생에 고통받는 일본의 대학은 생각지도 못한 ‘지원군’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인 유학생의 대량 유입이 그것이다.
오래전부터 인문계 대학원은 ‘중국인 유학생 없이는 정원을 메꿀 수 없는’ 상태가 이어져 오고 있었다(대다수 독자분들은 모르고 계셨겠지만). 이에 더해 학부 단계부터 입학하는 중국 학생도 늘고 있다고 한다. 다카다노바바에는 중국 학생 전용 입시 학원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는 이야기를 도쿄 사람에게서 들었다. “다카다노바바 역 앞에서 마주치는 젊은이들이 대화하는 걸 지켜보면 중국어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라구요”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연을 듣고서, 문득 일본 대학의 저출생 대책이 떠올랐다. 학부 입시에서 ‘중국어로 시험을 쳐도 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중국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장절할 정도의 입시 경쟁 사회이다. 석사까지 따지 않으면 사무직에 종사하는 것조차 어렵다. 한편, 일본은 대학이든 대학원이든 들어가기 쉽다(정원 충족에 필사적이므로 당연하다). 비교적 손쉽게 학위를 딸 수 있다. 학비는 서양에 비하면 5분의 1 정도다(더구나 역사적인 환율도 역시). 한자로 쓰여진 글도 읽을 수 있고, 치안이 좋으며, 어딜 가나 중국요리를 먹을 수 있으며, 지리적으로 가깝고, 시민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부유층 자녀들이 이를 눈치채고 ‘일본에서 청춘을 만끽하고 싶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도 뚱딴지같은 소리는 아니리라.
지금은 학부와 대학원에서 일본어로 시험을 응시하는 게 필수적이다. 이걸 ‘입학 후에 일본어 보충 강의를 만들어 편의를 봐줄 테니, 기초 학력이 있는 사람은 우선 합격시키겠다’는 대학이 나온다면, ‘만끽’ 파 수험생들이 곳곳에서 모여드는 것이다(아마 그럴 거다).
대학의 존속과 다문화 공생 사회의 창출을 한 번에 거두는 ‘일석 이조’의 아이디어이다. 무엇보다 지일파 중국인 졸업생을 배출하는 일은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 있어 커다란 이점을 가져다줄 것이다. 문제는 문부성이 ‘입시에서의 중국어 사용’을 허할 것인지의 여부다. (『주간금요일』 2월 7일)
(2024-05-08 09:43)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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