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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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학교 도서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2/5)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9. 26. 12:24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특수한 기능인’으로 일컫습니다. 어떤 기능을 갖고 있냐 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지하 1층까지밖에는 접근하지 못하지만, 자신은 지하 2층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하 2층에 내려가면 거기에는 태고적부터 연면히 흐르는, 지금도 온 세상에 펼쳐져 있는 ‘수맥’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도구로 무언가 여남은이나마 건져서는 갖고 올라옵니다. 지하 2층은 인간이 오래 있기에 위험한 곳이므로, 일을 보고 난 뒤에는 재빨리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데, 그렇게 지하 2층에서 경험했던 것을 서사의 형식으로 이야기해오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이 작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이러한 분야의 기능을 습득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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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문학이 갖는 의의에 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1. 14. 22:25
매년 이맘때가 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예정 글’을 쓴다. 첫 의뢰는 15년 전쯤에 받았다. 이 세상에 ‘예정 원고’라는 것이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확실히 뉴스가 예고 없이 날아들게 되면 긴 원고를 쓸 여유가 없다. 그래서 언론은 예정 원고를 준비해 놓는다. 예정 글이 실릴 일이 없어져도 글쓴이는 원고료를 고스란히 받는다. ‘작년과 똑같아도 상관 없어요’라고 담당 기자는 말하지만, 그건 좀 멋쩍으므로 매년 조금씩 버전업을 해 써보낸다. 일전에 라는 책을 냈을 때, 출간 1년 전에 썼던 예정 글을 그대로 게재한 적이 있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글을 활자로 내보냈다고 문예평론가에게 호되게 야단맞았다. 하지만 ‘일어난 일’에 관해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해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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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보이스를 찾아내기 위한 엑서사이즈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9. 5. 23:56
상당히 예전 일인데, 자신의 보이스를 아직 찾지 못한 청년이 있었다. 그가 자신의 보이스를 통해 자신에 대해 말하는 일이 시급한 상황이었으므로, 거의 3년에 걸친 ‘개인 작문 과외’를 했다. 맨 마지막 과제 무렵에는 상대편의 답장이 없어 서신 교환이 중단되었지만, 그것은 아마 그가 이제는 ‘엑서사이즈’를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자신의 문체를 확실히 손에 넣었기 때문이리라. 혹은 최후의 과제가 쓰기 상당히 어려웠기에 그랬을는지도 모른다. 작문 모임이라는 곳에 ‘자신의 보이스를 찾기’라는 강연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으므로, 하드디스크 밑바닥에서 옛날에 주고받았던 글들을 발굴해내어 읽어보았다. 그가 제출한 과제 ‘답안’은 제외하고서, 필자가 낸 과제만을 여기에 리스트화해둔다. 이를 통해 작문 교육에 일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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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와 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5. 25. 22:32
2017년 4월에 대만 담강대학(淡江大学)의 ‘무라카미 하루키 연구 센터’의 초청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계보와 구조’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전문은 뒷날 에 수록되었다. 며칠 전 어느 신문의 요청으로 영화 (2021)에 관한 인터뷰에 응했을 때, 이 영화의 주제도 ‘상처받아야만 했을 때 충분히 상처입지 않은 인간이 끌어안기를 거부한 부(負)의 감정은 악령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신문지상의 한계가 있어 설명이 부족하리라고 생각해, 블로그에 담강대학 강의록의 관련부분을 다시금 올려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 거의 배타적으로 ‘굴을 파고 드는’ 비유를 든다는 것은 방금 전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다른 비유도 이용합니다. 그것은 ‘이층 계단’ 혹은 ‘우물 바닥’에 내려간다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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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0 비교문학이란 무엇인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2. 26. 12:02
대학원에서 '비교문화 특강'이라는 걸 담당하게 되었으므로, 여세를 몰아 학부의 전공 과목 강의도 '비교 문학'으로 정해버렸다. '비교문학'이란 건 처음 담당하는 수업이다. 첫 담당일 뿐만 아니라, 필자 자신이 대학이나 대학원 다닐 때 그런 명칭의 수업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비교문학 학회에도 입회하지 않았고, 애초에 비교문학 책조차 읽어본 적이 없다. 참으로 대담하다. 아니, 대담하다기보다는 무모하다. 필자는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는 데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지루하다.) 하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칠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가르친다. 공부하면서 벼락치기로 가르치는 것이다. 이 벼락치기적 교수법은 상당히 스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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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일본 3대 항구도시 작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9. 20. 07:00
‘대도시’와 평범한 ‘도시’를 식별할 수 있는 지표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구의 많고 적음은 물론 아니다. 정치, 경제적 중심지라는 것.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화적인 발신 기지가 있다는 것. 이는 상당히 그럴싸하기는 한데, 아무튼 대도시라는 것은 이 모든 것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다른 도시, 다른 나라 사람들이 거기에서 위화감 없이 살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 필자가 ‘대도시’에 대해 내리는 정의이다. ‘자기 안에 을 품은 장소’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일본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상당히 알기 쉬운 지표가 있었다. ‘차이나타운’이 그것이다. ‘차이나타운’을 포함하고 있는 도시를 필자는 멋대로 ‘대도시’로 결부 지어왔다. 필자의 정의를 따르면, 일본에는 세 대도시가 있다. 요코하마, 고베,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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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으로부터 온 편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6. 19. 16:35
옛 친구이자 프랑스인인 M***으로부터 오랜만에 메일이 왔다. 미스테리한 내용의 의뢰였다. 우리들은 예전에 어느 대학에서 함께 프랑스어를 가르쳤던 동료다. 우리 딸과 동갑내기인 따님이 있어서, 아이들끼리 서로 금방 친해졌다. 그런 것도 있고 해서 그 뒤로도 가족 단위로 사귀게 되었다. 내가 고베로 옮겨가게 된 해에는 ‘프랑스에 놀러오시게나’ 하며 초청을 해와 여름 내내 그의 고향 근처인 프랑스 남쪽 해안에서 보냈다. 그는 일본을 무대로 한 라는 단편집을 써뒀는데 그것을 일본에서 출판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번역을 해 준 적이 있다. 그때 여름동안 해안가에서 둘이 초고를 살피며 ‘이 대목을 일본어로 어떻게 옮기면 좋을까’ 하는 식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는 웰메이드 단편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명의 프랑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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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레이 베이>(2018) 영화평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0. 7. 11. 19:50
영화 (2018) 을 위한 코멘트를 부탁받았다. 2018년 9월에 쓴 것.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반복해 "나는 오컬트적인 현상에 관심을 거의 갖지 않는 인간이다" 라고 쓰고 있다. 서문에서도 그렇게 밝히고 있다. "완전히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게 있어도 별로 상관없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상관 없이, 적잖은 수의 불가사의한 현상이 내 자그마한 인생 이곳저곳에 빛깔을 더하는 것이다." '있어 마땅한 것' 이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더없이 빈번하게 유령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적으로는 인생에 색채를 더하기는 하지만, 더는 삼키기 힘든 현실에 불과한 것이었다. 가와이 하야오와의 대담 때,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 나오는 다양한 초현실적인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