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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독창성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 21. 17:45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와 관련해 ‘이 영화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라는 인터뷰를 받았다.

     

    이미 여러번 말했지만, 이 영화의 뛰어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점은,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다국어(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수화 등)로 상연하는 무대의 연습을 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설정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에서도 주인공 배우 가후쿠가 <바냐 아저씨>의 대사를 차 안에서 카오디오로 들으며 연습하는 장면이 있는데, 연습 장면과 결과인 무대를 집중 조명한 점이 이 영화의 독창성이다.

     

    <배우가 배우를 연기>하는 설정에는 독특한 리얼리티가 생겨난다. 그렇다 함은 연기력이 부족한 연기자가 명배우를 연기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도리어 연기를 잘하는 연기자가 자칫 발 연기를 연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그렇게 된다면 ‘명연기’로 절찬받고 만다).

     

    배우가 배우를 연기할 때, 그 이외의 설정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긴장감이 생겨난다. 딱히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관객은 조금이나마 집중하게 된다.

     

    다국어 연극이라는 점도 교묘한 설정이라고 보았다. 일본어였다면 우리는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금방 의미를 따라가고 만다. 그것만으로도 ‘연극을 본 느낌’이 난다. 하지만, 모르는 언어로 행해지는 연기를 보면 회화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우리는 배우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숨소리, 목소리 발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또다른 별종의 집중력을 관객에게 요구한다.

     

    다행히도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는 널리 알려져 있는 희곡이므로 관객은 대사가 귀에 설어도,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곤혹스러워지지는 않는다. 관객은 그저 배우의 ‘피지컬’에 주목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런 탓에, 관객에게는 이야기의 진행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무례한 태도가 용납되지 않는다. 도리어 관객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연극에 ’참여’하기를 요청받는다.

     

    대사의 대다수를 ‘알아먹을 수 없는’ 설정 그 자체를 장점으로 내세운 영화가 외국어 장편상을 수상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22년 4월 17일)

     

     

    (2022-12-29 13:2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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