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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일본 3대 항구도시 작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9. 20. 07:00
‘대도시’와 평범한 ‘도시’를 식별할 수 있는 지표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구의 많고 적음은 물론 아니다. 정치, 경제적 중심지라는 것.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화적인 발신 기지가 있다는 것. 이는 상당히 그럴싸하기는 한데, 아무튼 대도시라는 것은 이 모든 것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다른 도시, 다른 나라 사람들이 거기에서 위화감 없이 살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 필자가 ‘대도시’에 대해 내리는 정의이다. ‘자기 안에 <타국>을 품은 장소’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일본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상당히 알기 쉬운 지표가 있었다. ‘차이나타운’이 그것이다. ‘차이나타운’을 포함하고 있는 도시를 필자는 멋대로 ‘대도시’로 결부 지어왔다.
필자의 정의를 따르면, 일본에는 세 대도시가 있다. 요코하마, 고베, 그리고 나가사키다.
이들 세 도시에는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항구 도시인 점, 외국인의 저택이 관광명소인 점, 바다를 향해 깎아지르듯 내려가는 경사면 위에 거리가 전개되어 있다는 점, 높은 지대를 ‘야마테山手’로 부르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사는 점, ‘야마테’에 미션 계통 여학교가 있고, 그곳이 유행의 기점이 된다는 점, 음식이 맛있다는 점, 야쿠자가 많다는 점, ‘일본 최초로 ~를 했던’ (신문이 간행되었다, 열차가 개통되었다, 카스텔라가 구워졌다, 모스크가 생겼다, 주식회사가 생겼다...) 장소라는 점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이것들은 전부 위와 같은 세 도시가 ‘외부’를 향해 문호를 개방하여, 자기 가운데에 ‘이국’을 품으며 활성화해 왔다는 증표이다. 즉, 이 세 도시는 ‘통풍이 잘되는 거리’인 것이다.
하지만 얘기가 여기까지라면 딱히 필자의 창의적인 발상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지금껏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내용을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다른 것을 말해보고자 한다. 이 세 도시는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출신지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고베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다카하시 겐이치로, 요코하마는 야하기 도시히코, 나가사키는 무라카미 류의 출신지이다. (무라카미 류는 사실 사세보지만, 뭐 가까우니까 괜찮겠지요.)
필자는 그들을 슬그머니 ‘일본 삼대 항구도시 작가’로 부른다. (숫자를 맞추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아마가사키 출신의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빼기로 한다. 하지만 다카하시는 나다 중고등학교, 요코하마 국립대학 등 일관되게 항구 도시의 학교를 고집하고 있으므로, 이 자세에 필자는 깊은 공감을 느끼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립 효고 고등학교에서 와세다대 문학부에 진학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나 <양을 쫓는 모험>에는 가파른 언덕길이(지금은 매립되었지만) 바다와 접하고 있으면서 동서로 난 좁고 작은 거리가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는 그가 자란 아시야의 전형적인 거리이다. 이 거리에서 그는 미국의 팝 뮤직을 듣고 미국의 소설을 읽으며 소년시절을 보냈다.
무라카미 류는 현립 사세보 기타 고등학교에서 무사시노 미술대학이다. 그의 경우는 ‘미군기지가 있는 도시에서 미군기지가 있는 도시’로의 이행 패턴이 명료하다. <69>에서 그는 60년대의 끝자락의 미군기지 마을에서 생활하는 활기찬 고등학생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미군기지’라는 일본 내의 이국에 대한 애착이 가장 강한 것은 야하기 도시히코이다. 야하기의 소설은 대부분 요코하마가 무대이다. 야하기 작품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요코하마 이외의 장소는 살 만한 곳이 못 된다고 말한다.
요코하마의 압도적인 우위성을 지탱해주는 것은 ‘미국’의 존재다. PX, 고배기량의 미국 자동차, 잔디밭이 있는 집, 포니 테일 소녀들, 아이스크림. 야하기의 <요코하마 소설>에는 지금은 사라진 ‘아메리칸 드림’으로의 러브콜로 충만해 있다.
그들의 소년기에 공통되는 통과의례로서 그들이 경험한 ‘미국’은 현실의 미국이 아니다. 그것은 1960년대 일본 소년들이 짜올려내어 미국에 투영한, 공포와 매혹의 ‘이국’이라는 이미지에 다름없다.
‘미국’은 소설과 팝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소년을 매료했고, 협박적인 군사력의 틈새에서 흘러나온 마약과 섹스로 무라카미 류를 매료했으며, 울타리 틈새로 엿본 자동차와 술과 음악과 음식은 통틀어 압도적 풍요로움으로 야하기를 매료했다. 그들은 각자의 자질에 따라 자신의 ‘이국’이라는 이미지를 택한 것이다. 그 이국의 이미지는 그들의 소설 전부에 지울 수 없는 향기로 스며들고 있다.
3대 항구 도시가 우리들의 시대를 대표하는 첨예한 작가들을 배출해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국과의 회로는 소년들을 고양시킨다. 소년을 사로잡은 공포와 매혹이라는 이국의 꿈이 그들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해, 결국 그들이 좋든 싫든 ‘글쓰기’의 길을 걷게 만든 게 아닐까.
도쿄는 지금 대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아카사카와 신주쿠 동북부에는 코리안타운이, 신오쿠보에는 방글라데시 타운이, 이케부쿠로에는 파키스탄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우에노 공원에는 매주 일요일마다 수 백명의 이란인들이 모이고, 신주쿠 가부키초에는 중국계 마피아가 일본의 야쿠자를 내쫓았다. 각각의 ‘민족 공동체’에는 일본의 경찰이 개입하지 않으며 내부의 분쟁이나 항쟁을 독자적 사법 시스템에 의해 판결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이미 일본 가운데 있는 이국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대량 유입에 의한 에스닉 그룹의 집단거주는, 단기적인 역사적 간격에서, 옛적부터 있어 왔던 에고이스틱한 발상에 입각하는 한, 일본 사회에 있어서 마이너스라고 여겨졌으리라. 하지만 앞으로 20년 뒤 ‘이국’과의 만남에 공포와 매혹을 느끼며 성장하는 지금 도쿄 초등학생들 가운데, 거대한 스케일의 작가가 등장하는 것을 상상하면, 필자는 수수깨끼의 흥분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1991. 1)
이렇게 써놓은 뒤에 수 년이 지나고(1996년 - 옮긴이)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이 출현했다. 아직 ‘거대한 스케일의 작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예언이 썩 잘 들어맞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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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석
하세 세이슈 <소년과 개> 는 163회 나오키 상 수상작(2020년)으로, 한국에도 번역출간되어 있습니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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