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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에 기초한 사회의 함정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8. 22. 20:34
얼마 전, 모 문학상 심사와 관련된 편집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 문학상은 투고된 작품을 편집자들이 우선 ‘사전 검토’한 후에, 후보작을 추려서 심사위원회에 회부하게 되는 식이다. 응모작이 수백 통 되니만큼 당연하다. 이렇게 예비 심사를 하는 와중에, 어떤 젊은 편집자가 글쎄 어떤 작품을 놓고서 ‘떨어뜨려야겠어요’라며 낮은 평점을 매겼고, 그 이유를 물어보니 ‘주인공에게 공감이 안 돼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라고 한숨을 내쉬며, ‘주인공에게 자신이 공감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학 작품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놓았으니까요….’라고 필자에게 사연을 전해준 그분에게, 필자 또한 이거 참 큰일입니다 하고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기준에선 『악령』이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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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 레터) 혁명, 그 상속과 증여인용 2024. 8. 15. 17:19
1918년 명보가 자리를 뜨고 나서, 성수는 자신도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10분쯤 기다렸다. 오랜 친구와의 만남이 바라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게 진심으로 유감스러웠다. 함께 먹고 마시며 지난 모험담을 추억하고 누군가 지난날 자신의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며 흥청거리는 대신, 그들은 지금 서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고 큰 충격을 받은 터였다. 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는데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보다 훨씬 더 불쾌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성수의 잘못을 감히 그의 앞에서 지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그의 마음에 들고 싶어 안달할 뿐이었다. 부하들은 경의를 표했고, 동료들은 칭찬 일색이었으며, 아내는 그를 숭배하듯 대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든 성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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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프라우다와 인스타그램인용 2024. 8. 10. 19:51
Я делаю себе карьерутем, что не делаю ее! 나는 출세를 이루겠노라 ー 출세를 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만약 소련과 같은 희한하고 오염된 나라에서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난 타인의 의견에 덜 민감하게 반응했을 거 같다. 전체주의에서는 ‘이웃에 대한 거짓 증언’이 국가 이데올로기를 지탱하기 위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르보 패르트가 ‘의심스러운’ 작곡가로 지칭되는 걸 내 귀로 직접 들었고, 나도 ‘유별나며’ ‘학구적’이라고 ‘낙인찍혔다’(나중에 서방에서도 종종 이런 평가를 받곤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그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다뤄진 이들도 많았다. 알프레드 시닛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예디손 데니소프(1929-1996), 발렌틴 실베스트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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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물) 학교 교육의 폭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인용 2024. 8. 10. 19:19
아치는 교실에서 전형적인 학습 능력이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아이였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도 읽고 쓰는 능력이 또래 아이들보다 뒤떨어져서 지능 테스트 성적은 초등학교 1학년 정도였다. 담임교사와 학교 심리학자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치는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결여되어 있는 아이였다. 예를 들어 말놀이 게임에서 친구가 “beer와 wine은 왜 비슷하지?”라고 물어보았을 때 모두가 “마시는 것”이라고 대답했다면 아치는 “deer는 음료가 아니야!”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방과 후 요리 클럽에서 아치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즉, 요리 클럽에서는 ‘학습장애아’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히려 가장 유능한 클럽 구성원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룹으로 나눠서 케이크를 만들 때, 아치는 레시피를 제대로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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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 사회제도가 여러분께 당부하기를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8. 3. 19:22
이번 도쿄도 선거에서는 유독 공직선거법의 허점을 노리는 탈법적 행위가 돋보였다. 어떤 정당이 24명의 후보를 옹립하면서 선거 벽보로 절반 이상 공간 차지하기에 이른 작태는, 포스터 내걸 권리를 돈 받고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게시판에 선거와 상관없는 사진이나, 별도 웹사이트로 유도하는 검정 도형을 떡하니 실은 포스터도 있었다. 이제까지 정견 방송이나 선거 공보에는 어딜 보나 시민적 상식을 결여한 인물이 줄곧 등장하곤 했다. 이걸 그저 ‘민주주의에 드는 비용’ 정도로 여기며 우리는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비상식적 군상만큼은 전대미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딱히 선거를 이용해 돈을 벌거나 관심을 받으려던 건(매명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공직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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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합중국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7. 29. 20:20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사이에 있었던 토론이 마무리되었다. 양측 모두 상대를 비방해 대는 차마 눈뜨고 못 볼 광경이 펼쳐진 가운데,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당당하게 내리꽂는 트럼프라는 상대 앞에서 입바른 팩트에 기초해 반론하지 못하였던 바이든의 쇠약한 모습을 본 미국 유권자들은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민주당은 후보를 교체해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지금 당장 대권주자를 선정한다손 쳐도 11월에 있을 대선 일정에 대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세계는 2기 트럼프 행정부를 맞게 될지 모른다. 그는 ‘미국 제일주의’를 내걸고서, 전임자의 정책을 대거 갈아엎으면서, 국제 질서 유지에는 부차적인 관심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미국 제일주의’(아메리카 퍼스트)는 트럼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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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시바 모리헤이와 구마노의 힘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7. 24. 20:29
구마노 고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어언 20년,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나베 시에서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기서 ‘아이키도 開祖 우에시바 모리헤이 옹 그리고 구마노의 힘’이라는 연제로 강연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마침, 우에시바 선생이 다나베 출신 인물이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구마노의 바다와 산이 에워 키운바, 구마노의 영기를 비강에 가득 채우며 성장하신 것이다. 미나가타 구마구스가 이끈 신사합사 반대운동에도 분주히 힘쓴 덕에, 오늘날 구마노의 자연과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게 되었다. 따라서 선생이 완성하신 아이키도에 구마노의 지역성이 깊이 관련되어 면면이 이어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럴진대, 아이키도 주쓰의 리(理)와 구마노가 발하는 영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는 게 그리 용이한 업(業)만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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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자기 주제를 파악한다는 것인용 2024. 7. 23. 21:24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잘, 더 효율적으로, 더 완벽하게 일을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 중 90% 이상이 자신은 다른 보통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미국 대학 교수들의 94%는 동료보다 자신이 연구를 더 잘 수행한다고 믿는다. 미국 대학 농구 선수들 중 60% 이상이 자기가 메이저 팀에서 뛸 것으로 믿지만 실제로는 5%만 그렇다. 일본 직장인들은 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을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평균 20% 이상 더 높게 생각한다. 즉,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내게 웬 책을 그렇게 읽느냐고 물을 때마다 내가 준 대답은 “내가 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