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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물) 도모에 학원, 좋은 학교!인용 2024. 9. 18. 10:38
결혼하고 9년 만에 아이가 태어나고 6개월쯤 되었을 때, 아직 아무 생각 없는 아이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동요 CD를 사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이제 두 돌이 가까워진 내 아들은 겨우 엄마, 아빠 그리고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치치포포'나 '머머' 같은 이야기를 겨우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광화문 교보문고의 유아동요 CD 칸을 한참 뒤졌는데, 영어동요가 아닌 CD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겨우 있는 것들도, 뒤의 노래 한두 곡은 영어노래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 시간 넘게 고르고 골라서, 겨우 우리말 동요 CD 몇 장을 살 수 있었다.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은, 아주 솔직하게 '미친 거 아냐......' 였다.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로 바이링구얼을 할 수 있는 특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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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인용 2024. 9. 13. 17:36
실존주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롤로 메이(Rollo May)는 조언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자동 회로를 차단해보라고. 거기에서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고. 간단한 원리지만, 실행은 결코 쉽지 않다. 몸을 단련하듯 꾸준히 연습해서 조금씩 체득해야 하는 요령이다. 불교에서는 오랫동안 그 방법을 탐구해왔다.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거기에 매몰되지 말고, 감정 자체를 주시해보자. 내가 지금 이렇게 느끼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의 감정과 거리두기가 가능해진다. 어떤 사건이나 상대방의 언행이 나의 반응(행동)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키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 상황에서 생겨나는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 김찬호 『모멸감: 굴욕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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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신체론』 들어가는 말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9. 10. 19:43
들어가며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다쓰루입니다. ‘길거리의 신체론’이라는 제목, 뭔가 기시감이 드시겠지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시면, 처음 접하신 걸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부디 조심하셔야 해요. 이 책은 2011년에 마키노출판에서 나온 나루세 마사하루 선생님과 내 대담집인 『신체로 생각하다』(身体で考える)를 복각한 거니까요. 멋모르고 ‘오~ 두 분의 새로운 대담 책이 나왔구나’ 착각하여 덜컥 구입하는 바람에, ‘아, 이거 제목만 바뀌었지 내용은 그대로 아니냐?’라며 하늘을 우러러 이를 가는 일이 없게끔, 여기서 큰 목소리로 주의 말씀 드리는 바입니다. 그래도, 완전히 똑같은 책은 아닙니다. 복각이니 겸사겸사 ‘보너스 트랙’을 얹어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나루세 선생님과 함께 도쿄 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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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샤피로에게 배운 유대인의 지혜 - 에릭 호퍼인용 2024. 9. 6. 18:57
“그의 얼굴에는 모든 유대 인의 얼굴에 예외 없이 괴롭게 각인되어 있는 영원하고 씁쓸한 비애가 서려 있었다.” 나는 다시 소개소로 돌아왔다. 일자리는 흔치 않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소개소에 붙어 지냈기에 먹고살기에 충분한 일을 계속 구할 수 있었다. 어떤 고용주들은 성실한 일꾼이라며 일이 있을 때 연락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나는 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소개소로 전화를 할 때 내 이름을 지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안정된 일자리를 원했다. 어느 날 나는 산타페에 있는 파이프 야적장으로 급히 불려 갔다. 그 야적장은 자영 석유업자들에게 중고 파이프를 파는 곳이었다. 주인은 샤피로라고 하는 활기찬 성격의 키 작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무렵에도 나는 인종적 배경에 대해 관심이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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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물) 세계화 시대의 황혼 속 젊은이의 해외여행 고찰인용 2024. 9. 2. 08:09
Self-improvement is masturbation. Now, self-destruction... - 타일러 더든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에게는 두 종류의 굶주린 자가 있대. 리틀 헝거(Little Hunger)와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 리틀 헝거는 물질적으로 굶주린 사람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굶주린 사람이래." - 이창동 요즘의 많은 젊은 연주자들에게는 완벽한 연주가 중요한 목적의 하나가 된 듯하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악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을 척척 해결해내는 솜씨들을 보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연주라고 해서 연주의 기준이 낮았다는 뜻은 아니다. 후보작 열 편을 들어봐도 하나같이 지극히 높은 수준의 연주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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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민 사회를 재건하기 위하여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8. 30. 12:03
『월간일본』 8월호에 심층 인터뷰가 게재되었다. ‘야만으로의 퇴행이 시작되고 있다’라는 제목을 달고 나갔다. 내가 여기서 진정 말하고자 했던 바는 ‘근대 시민 사회를 꼭 재건해야만 한다’였다. ー 현재, 세상은 역사적인 대전환을 맞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우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근대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근대 시민 사회의 기본 이념은 ‘공공’입니다. 그런 ‘공공’이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홉스, 로크, 루소 등이 제창한 근대 시민 사회론에 따르면, 자고로 인간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일삼았습니다. 이 약육강식의 ‘자연 상태’에서는, 가장 강한 개체가 모든 권력과 재화를 독점합니다. 그러나 이런 체제는, 정작 ‘최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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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사람은 원래 아날로그다 ∿ 요로 선생님인용 2024. 8. 23. 00:28
사람은 온갖 것을 ‘같게’ 만들려고 합니다. 세계화의 본질이 바로 같게 만드는 것이에요. 영국과 미국은 그 선두에 함께 섰던 나라입니다. 특히 영국은 아주 일찍부터 같게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여,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두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까지 불렸죠. 미국은 정보로 세계화를 이루었습니다. 그 수단이 된 것이 위성 TV였고요. (…) 세계를 ‘같게’ 만드는 것이 세계화라면, 궁극의 ‘같음’은 무엇인지 아시나요. 몇 년 전 NHK가 자기네 방송국의 프로그램 아카이브를 디지털화했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디지털 데이터는 0과 1의 패턴이니 완전히 같은 걸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 카피는 복사할 때마다 차이가 생기지만 디지털에는 그런 게 없어요. 요컨대 궁극의 ‘같음’이죠. 세상의 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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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에 기초한 사회의 함정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8. 22. 20:34
얼마 전, 모 문학상 심사와 관련된 편집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 문학상은 투고된 작품을 편집자들이 우선 ‘사전 검토’한 후에, 후보작을 추려서 심사위원회에 회부하게 되는 식이다. 응모작이 수백 통 되니만큼 당연하다. 이렇게 예비 심사를 하는 와중에, 어떤 젊은 편집자가 글쎄 어떤 작품을 놓고서 ‘떨어뜨려야겠어요’라며 낮은 평점을 매겼고, 그 이유를 물어보니 ‘주인공에게 공감이 안 돼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라고 한숨을 내쉬며, ‘주인공에게 자신이 공감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학 작품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놓았으니까요….’라고 필자에게 사연을 전해준 그분에게, 필자 또한 이거 참 큰일입니다 하고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기준에선 『악령』이나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