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
박 선생이 하신 질문 시리즈 「언어의 생성에 관하여」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2. 26. 15:45
안녕하세요. 우치다 선생님이 '원리주의'에 대해 써주신 답변을 흥미롭게 정독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께서 쓰셨던 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가 있으시지요. "따라서 '원리주의 반대'란 말을 영미(英美)형 기능주의자는 결코 하지 않는다. '원리주의 반대'를 외치는 구호 그 자체가 다름 아닌 또 하나의 원리주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리주의자'는, 우리가 여기기로는 또한 '날것(なまもの)*'이기 때문이다." (p.97)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참으로 지당하기도 하거니와, 사리에 맞는 언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ー (* 이해나 공감을 하기 어려운 타자와 그럼에도 공생하고자 가용한 자원을 구사할진대 이를 자발적으로 행하자는 뜻.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시인은 날것의..
-
위생Sanitation형 보호태세 (SOPP)취재 2024. 2. 24. 00:10
미래의 제국은 마음/정신의 제국이다. (The empires of the future are the empires of the mind.) - 윈스턴 처칠(1943)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전에 읽어라. 혼자 지어내지 않은 것을 생각해볼 기회가 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현명한 행동이지만, 짜증스러운 결론을 내릴 위험이 가장 큰 나이인 열일곱 살이면 특히 그렇다. - 프랜 리보위츠 스와이프(swipe)/탭하기 전에 검색/프롬프트하고, 검색/프롬프트하기 전에 (화면을 끈 채) 얼굴을 맞대고 말할 것이며, 얼굴을 맞대고 말하기 전에 손으로 쓰고, 손으로 쓰기 전에 걸어 다니고, 걸어 다니기 전에 15분 이상 생각하며, 15분 이상 생각하기 전에 종이 책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텔레비전은 시계이자 달..
-
知恩, 你知道吗? (지은 씨, 그거 알아요?)인용 2024. 2. 23. 18:23
지은, 그거 알아요. 촬영하면서 느낀 두 번의 감동적인 순간을 지은한테 말해주고 싶었어요. 촬영 때 감독님이 저한테 디렉팅 하실 때 아이유가 쓴 '그녀와 눈동자가 닮은 그녀의 엄마'라는 가사를 들은 순간 마음속에서 어떤 울림이 있었어요. 그동안 스스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었어요. 아이가 태어나고 엄마가 되면서부터 엄마들은 항상 내 아이의 눈이 나와 정말 닮았는지 골몰해도 내가 나의 엄마와 닮은 데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순간 우리 엄마의 얼굴과 내 얼굴을 맞붙여 거울 앞에서 찬찬히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거나 함께 사진을 찍어 오래오래 자세히 보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히 들었어요. 오늘 마침 섣달그믐이라 좀 있으면 엄마를 만나게 될 거예요. ..
-
머리보다 몸에 먼저 스며드는 언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et cætera 2024. 2. 22. 17:30
이 책을 읽자니 문득 행간 행간마다 돌아가신 스즈키 구니오 씨의 육성이 들려오는 바람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스즈키 씨와 대화를 나눴고 책도 두 권 냈다. 필자가 관장 노릇을 하는 가이후칸 도장에 오셔서 아이키도 수련도 같이했었다. 스즈키 씨는 강도관 유도 삼단이다. 무도에 대한 존중심과 함께 그 넘쳐나는 호기심이 인상적이었다. 스즈키 씨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삿포로시계탑 강당까지 갔다 왔다. 서로 술잔을 기울인 적 또한 하도 많다. 스즈키 씨의 사상을 논한 사람은 많아도, 스즈키 씨의 문장에 대해 말한 사람은 많지 않다. 스즈키 씨는 독특한 '문체'를 갖고 있다. '스타일'이라고 해도 좋고, '보이스'라고 해도 좋다. 이는 신체 실감이 뒷받침되고 있음이 확실한 말 이외에는 달리 말하지 않겠다는 자제..
-
사랑에 관한 작은 브리콜라주인용 2024. 2. 22. 01:50
젊은이들은 이상하게 너무 날카로운 것 같다. '지나치게 잘 드는 칼'은 칼집 없이는 들고 다닐 수 없다. 그래서 저마다 '칼집'을 궁리하게 된다. '딱딱한 학술성'이 가장 정통적인 '칼집'으로 이 안에 칼이 들어 있으면 보통 사람은 그게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지 못한다. 자기 분야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좀 더 공격적인 사람은 다른 '칼집'을 찾아낸다. 힘을 빼거나 웃는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웃음)'을 추가하면 아무리 이야기가 단정적이라 해도 일단 '칼집'에 들어간다. 베인 쪽도(비판당한 쪽도) 베인 것을 모르고 함께 웃기도 한다. 가장 좋은 칼집은 '사랑'이다. '학술성'이나 '웃음'으로 더 예리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랑'은 그렇지 않다. 지성의 예리함이란 쉽게 ..
-
되 글을 가지고 말 글로 써먹자인용 2024. 2. 19. 23:42
(...) 지식인은 사회와 거리를 두고, 특정한 물질적 혜택을 포기하면서 국민을 위한 양심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지식인들은 진실을 추구하다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더 높은 정의의 이름으로 통념을 거부하고 권위에 도전한 『나는 고발한다』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 개념에 영향받았다. 인텔리겐치아는 작가들과 사색가들을 속세에 사는 성직자로 정의하면서 그들이 보편적인 진리와 무관심의 공간 속에서 고고하게 살면서 지상에 사는 활동가들에게 도덕적인 판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국가에 참여한다고 말한다. 어느 사회든 신성함에 대한 이례적 감각, 우주의 속성과 사회를 지배하는 규칙들에 관한 비범한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사회든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
-
박동섭 선생이 하신 질문에 답하는 시리즈: '종교의 본령'이란 무엇인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2. 19. 16:56
세 번째 질문입니다. 작년 간행된 에서 샤쿠 뎃슈 선생이 서문에서 쓰신 구절 하나가 계속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샤쿠 선생은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우치다 선생과 종교 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아주 조금은 종교의 본령에 가까워져 가는 듯하다." 우치다 선생께서 생각하시는 '종교의 본령'이란 무엇인지 여쭙고자 합니다. 이거 난처하게 되었군요. '종교의 본령'이라는 말은 샤쿠 선생이 하신 말씀이지요? 샤쿠 선생이 어떤 사고방식을 거쳐 '이런 말'을 꺼내게 되셨는지, 샤쿠 선생을 대신해 우치다가 과연 대답드려도 온당할까요? 여하튼 질문을 받았으니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종교적 지성이란 '초월' '타자' '외부'와 같이, 말하자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적인 프레임워크로는 포섭할 수 없는 ..
-
박 선생이 하신 질문 ‘원리주의에 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2. 16. 15:41
그러면 이제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마르크스주의 혹은 페미니즘 맹신과, 우치다 선생님의 레비나스 신봉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게, 저는 왠지 알 것 같습니다만, 우치다 선생님은 레비나스에의 ‘귀의’, 그리고 그 비판자에 대한 ‘필주(筆誅; 남의 죄악이나 과실 따위를 글로 써서 꾸짖는 것. - 옮긴이)’라는 어휘를 쓰신 바 있습니다. 한국 독자에게는 이와 같은 행보가 자칫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이번 기회에 석명해 주신다면 참 좋을 듯합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답드리겠습니다. 박 선생께서 이미 ‘왠지 알 것 같다’고 쓰셨는데, 그 말씀대로입니다. 제 대답은 항상 같습니다. 제가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나 어떤 페미니스트에게 이의를 진언하는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