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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 레터)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인용 2026. 7. 26. 21:10
오늘 논할 틈이 없었지만, 말씀하신 대로 문화자본에서 계층화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문화자본'이란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 쉽게 말하자면 '교양'을 의미합니다. 미술이나 음악에 대해 비평하는 안목이 있다거나, 적절한 매너와 복장의 센스가 있다거나 와인에 대해 상식이 풍부해 선택을 잘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는 계층사회라서 소속 계층이 다르면 사는 세계가 다릅니다. 교류 범위도 대화 주제도, 입는 옷도, 드나드는 레스토랑도 모두 다르지요. 문화자본은 소속 계층을 표시하는 '명함 대신'입니다. 그래서 문화자본을 취급하는 데는 매우 신중합니다. 빈곤층 사람이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를 입거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일은 '규칙 위반'이라고 할까, 거의 '경력 사칭'같은 것이므로 계층사회에서는 금기시됩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쟤는 촌스러워" 정도의 말은 하지만 그것은 소속 계층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부자든 권력자든 촌스러운 사람은 촌스러운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이든 시정배든 세련된 사람은 세련된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는 문화자본과 관련해서는 민주적인 사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근래에 와서 급격하게 문화자본이 사회계층의 기호로 기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다수의 교양이 점점 내려가는 한편으로 높은 계층에서는 아직 교양과 취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풍이 남아 있습니다.
사토 마나부(佐藤学) 교수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만, 도쿄 대학의 세미나에서도 요즈음 학생들끼리의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음악 얘기나 미술, 문학 얘기 등이 나오면 이런 화제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과 유창하게 말하는 학생 사이에는 분명하고 뚜렷한 단층이 생기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에 예술가와 정치가가 출입했다거나, 유학을 해서 외국어를 잘한다거나, 외국에 친구가 있어서 빈번하게 왔다갔다 한다거나, 어려서부터 예능을 배웠다거나 이른바 옛날부터 해오던 상류사회의 '교양과목'을 배우면서 자랐던 아이들이 한편에 있고, 어릴 때부터 학원만 다니며 공부만 해서 책도 읽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고, 미술도 모르는 학생이 다른 한편에 있습니다. 이 격차가 이제 메워지지 않고 있지요.
하지만 문화자본의 격차가 두드러졌던 이유는 사토 교수가 관찰한 곳이 도쿄 대학이라는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도쿄 대학교라면 다른 조건은 같은데 문화자본에서만 분명한 차가 있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일반 사회로 가져가면 아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화자본은 통계적으로 정상분포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층의 사람은 문화자본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는 일본인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릅니다. 일본인은 다 '자기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교양이 있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면 자기에게는 교양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고 교양을 익히지 않으면 출세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실제로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자기에게 문화자본이 없다는 것을 안 도쿄 대학생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만회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에게는 문화자본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계층에게는 처음부터 노력할 동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계층간의 문화자본의 격차는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류지향』,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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