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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은행 잔고
    인용 2026. 7. 25. 19:40

    (a) 에른스트, <셀레베스의 코끼리>(1921)
    (b) 들로네, <붉은 탑>(1911)

     

    앞의 그림에서 (a)는 다다이즘이라고 불리는 흐름에 속했던 화가 에른스트(M.Ernst)가 그린 코끼리 그림이다. 다다이즘은 형상과 미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명시적으로 도전하여 그것을 파괴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단지 파괴에 그치지는 않았다. 이들은 이 그림이 보여주듯이, 유기체까지도 일종의 기계 또는 기계들이 결합되어 만든 집합적 기계로 여겼다. 즉, 모든 것은 기계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모든 기계도 사람이나 코끼리 같은 생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로써 생물과 무생물, 생물과 기계 사이의 경계선을 허문다. 이는 분자생물학자인 자크 모노가 "생물이란 화학적으로 작동하는 기계다."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그들은 사물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길을 개척했다.

     

    그림 (b)는 오르피즘이라고도 불리지만, 크게 보아 입체파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는 들로네(R.Delaunay)의 유명한 그림이다. 그림 속의 탑은 에펠탑이다. 하지만 그는 여러 각도에서 본 에펠탑을 하나의 눈이 동시에 보도록 함으로써 단일하지 않은 공간, 복합적인 공간을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이는 15세기 이래 서양 미술을 지배해온 투시법적인 공간, 즉 하나의 시점에서 본 동질적인 공간 속에 합리적인 형태로 대상을 그리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해체한 것이다. 세잔이나 고흐가 이런 혁명의 단서를 마련했지만, 그것을 본격화한 것은 피카소였다.

     

     

    그런데 통속적인 질문을 하나 하자. 이 두 그림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을까? 두 사람 모두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고, 두 그림 모두 알 만한 사람은 아는 그림이니, 어느 하나를 선뜻 위에 놓을 수가 없다. 그림의 크기로 비교한다면? 그림 그리는 데 사용한 물감이나 재료의 양은 어떨까?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하다. 그런 만큼 이 두 그림의 가치를 더하거나 뺀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이를 적절히 '계산'할 방법은 없을까?

     

    하지만 여러분이 그렇게 순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계산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다만 계산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할 뿐이다. 즉, 소더비 경매장에서 매기는 그림 값만 옆에 써놓았어도 이미 계산은 끝난 지 오래일 것이며, 어느 게 더 가치 있는 그림인가도 이미 판단이 끝났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하면 두 그림의 가치를 더할 수도 있다. 이 그림을 둘 다 갖고 있는 사람은 그 더한 값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또 뺄 수도 있다. 그것은 그림을 맞바꾸어 교환할 때 남는 가치, 또는 손해 보는 가치를 표시한다.

     

    음악의 경우에는 어떤가? 가령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와 소녀시대의 <Gee>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는 노래일까? 이에 대해서도 젊은 세대들은 쉽게 대답할 것이다. <Gee>라고. 그 이유는 그 노래가 <창밖의 여자>보다 값이 비싸서?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소녀시대의 노래를 더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계산은 아니다. 음악 교사인 내 친구라면 틀렸다고 채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러분과 반대로 대답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는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자의적인 가치평가일 뿐이다. 사람에 따라 제멋대로 달라지는 계산은 계산이 아니다. 계산은 대략적이라고 해도 제멋대로 달라지는 계산은 계산이 아니다. 계산은 대략적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일치할 수 있는 일종의 정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마 음반 사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라면 정확하게 일치하는 답을 알 것이다. 그 노래가 실린 음반 판매량을 비교하면 된다. 그러면 앞서처럼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할 수 있다.

     

    이런 계산방법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물건을 하나 살 때나 어떤 것을 유심히 들여다볼 때면 항상 하게 되는 계산이다. 사실 이런 방법이 아니면 대체 오디오와 TV를 놓고, 책과 음반을 놓고 비교하고 계산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나마 같은 종류의 물건이라면 대강이나마 품질을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물건의 질을 비교한다는 건 불가능하거나 최소한 자의적이다.

     

     

    이런 곤란을 넘어서게 해주는 '현자의 돌'이 화폐이다. 어떤 물건도 숫자ー보통 '가격'이라고 불린다ー로 바뀌면, 역시 숫자로 표시된 다른 모든 것과 비교되고 계산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물건들 간의 등가(等價)ー보통 '교환'이라고 불린다ー도 가능해지고, 물건들의 가치를 더하거나 빼고, 곱하거나 나누는 게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물건들의 서열이 매겨질 수 있고, 그에 따라 물건들의 질서가 만들어진다. 상품 세계의 질서란 바로 이처럼 숫자와 계산에 의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화폐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다.

     

    이렇듯 숫자와 계산은 비교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비교할 수 있게 하고, 전혀 다른 종류의 것들을 숫자들의 질서, 수학적인 질서(!)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자연의 수학화'와 비교해서, '사물의 수학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는 사물이 상품화되는 것이고, 화폐가 상품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던 실제 역사적 과정이다. 시장의 역사, 자본주의의 역사가 그것이다. 이는 '자연의 수학화'와 나란히 진행되었던, 서구의 근대 세계가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어찌되었든 이로써 사물들은 수학적 계산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상품이나 화폐의 질서를 연구하는 경제학이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계산공간'이란?

     

    이제 계산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첫째, 비교 대상을 숫자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같은 척도나 단위가 있어야 한다. 셋째, 그 숫자와 척도를 전제로 계산방법이, 예컨대 덧셈과 곱셈 등이 정의되어야 한다. 이로써 그 안에 들어가는 어떤 것도 숫자로 바꾸어 계산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를 '계산공간'이라고 부르자.

     

    앞서 보았던 상품 간의 교환은 어떨까? 거기서는 너무도 이질적인 그림과 음반, 오디오와 TV, 집과 자동차 등이 모두 계산에 따라 교환된다. 그러나 누구도 클레의 그림과 한 대의 오디오가 1이라는 이유로 교환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각은 어떤 단위(원, 달러, 엔 등)를 기준으로 숫자가 바뀌고, 그 숫자 간에 비교와 계산이 행해진 뒤에야 비로소 적절한 교환이 이루어진다. 상품들은 척도와 숫자를 제공하는 화폐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적절한 교환의 공간 속으로, 계산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물을 수학화하고 사물들의 계산공간을 만드는 것은 화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계산공간 안에서는 화폐로 변환될 수 없는 사물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 예를 들어 공기나 물, 햇빛은 우리의 삶에 매우 긴요하지만, 아무도 화폐로 바꾸어주지 않기에 이 계산공간 속에서는 무가치하다. 집에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일도 화폐와 교환될 수 없는 한 이 냉정한 공간 안에서는 무가치하다. 그것이 식당이나 세탁소에서 행해질 때, 그래서 화폐로 바뀔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계산의 결과에 대해서도 다시 말할 수 있다. 첫째, 계산은 어떤 척도화된 숫자를 대상으로 돌이킴으로써 그 대상들을 동질화한다. 클레의 그림과 조용필의 노래는 서로 이질적이지만, 이런 숫자를 통해 비교, 교환될 수 있는 동질성을 갖게 된다. 편리한 계산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질적인 성질이나 직관적인 의미를 벗어버려야 한다. 그것은 계산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장료인 셈이다. 각각이 갖는 고유한 차이는 수로 표시되는 양적인 차이로 바꾸는 한에서만 살아남는다. 이런 의미에서 계산공간은 동질성의 공간이다.

     

    둘째, 계산공간 속에서 모든 것은 수의 질서, 수의 체계에 따라 배열된다. 큰 수에 대응하는 상품이 작은 수에 대응하는 상품보다 가치 있고 좋은 것이다. 어떤 것이 중요한 이유는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즉, 그것을 구하기 위해 많은 화폐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가치는 그가 타고 온 자동차나 그가 걸친 옷이 결정한다. 사물의 세계에서 가치란 이제 화폐로 표시되는 숫자와 다름없다. 계산공간 안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은 이 숫자ー화폐ー이다.

     

     

    터미네이터와 일기예보 속 계산공간

     

    화폐는 사물들을 일반적이고 동질적인 계산공간으로 끌어들인다. 그것이 '사물의 수학화' 사업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는 것은 물론이다. '자연을 수학화'하려는 근대 과학의 사업기획에도 이런 식의 일반적인 계산공간이 아주 긴요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화폐는 보이지만, 화폐가 만드는 계산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속에서 사물에 달라붙은 숫자만 보일 뿐이다. 자연을 수학화하는 계산공간 역시 보이지 않는다. "To see is to believe." 보는 것이 믿는 것. 그러다 보니 안 보이는 건 잘 믿지 못하는 게 세상 인심이다. 그게 계산공간이 무언지 알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기계들은 사람이 못 보는 것을 종종 보여준다. 그래서 그 기계를 잘 들여다보면, 우리 눈앞에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계하고 사람이 뭐 그리 다르냐는 에른스트와 다다이스트의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터미네이터의 눈도 이런 계산공간을 내장하고 있고, <스타워즈>의 우주선도 이런 계산공간을 내장하고 있다. 레이더 장치도 마찬가지다. 지구본이나 지구에도 있다. "동경 136도 19분, 북위 35도 27분, 고도 3,200m 상공에 적기 5대 출현, 현재 5시 방향으로 초속 300m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여기서 적기 대신에 기압골이나 구름의 분포를 가지고 분석하면, 내일의 날씨를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다. 태풍이나 폭풍의 이동처럼 잘 보이지 않는 것의 움직임도 계산할 수 있다. 이 모두가 계산공간 덕분이다.

     

     

    이진경, 『수학의 몽상』, 휴머니스트, 64~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