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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인간의 길인용 2026. 7. 24. 19:25
대학 2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선배 형들과 서울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난곡에서 야학(夜學)을 했다.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하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학교 수업을 마친 밤 시간에 주 3~4회씩 공부를 가르쳤다. 그때는 순수하게 열성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방학 때는 '농활'(농촌봉사 활동)로 전국의 시골도 누볐다. 그 때 함께 참여했던 한 선배가 있다. 그 형은 시간을 칼 같이 지키고 1분 1초도 쪼개 쓰는 빈틈 없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선배가 나를 불렀다. "내일부터 작은 수첩을 하나 준비해라. 매시간 네가 무얼 하는지 수첩에 메모해라.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기록해야 한다. 일주일 후에 그 수첩을 내게 보여다오." 당시만 해도 하급생들에게는 선배들이 어려웠고, 선배가 시키는 일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에, 나는 그 형에게 왜 그래야 하는지 묻지도 못하고 그저 "예."하고 대답했다. 그만큼 선배의 말에는 권위가 있었다.
일주일 후, 나는 선배가 시킨 대로 하루 24시간 중에서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학교에 갔으며, 몇 시에 수업을 마치고 몇 시에 야학 장소에 도착하고, 몇 시에 잠드는지를 나름대로 기록해서 선배에게 보여주었다. 일주일 치의 수첩을 검토한 선배가 내게 물었다. "집에서 나와서 학교로 가는 이동시간엔 뭐했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막하여 가만히 있었다. "버스 안에 있었지? 임마, 이 때는 책을 봤어야지." 하는 것이었다. 선배의 추궁은 거침없이 계속되었다. "학교에서 수업과 수업 사이에 있는 빈 시간엔 뭐했어?" "친구들과 얘기했습니다." 잠시 쉬는 그 짧은 시간동안 무얼 할 수 있겠느냐는 항의가 다소 묻어 있는 볼멘 어조로 대답하자, 즉각 선배의 호통이 날아왔다. "벼엉신, 막연하게 얘기할 게 아니라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을 했어야지!"
선배는 내가 보낸 하루의 매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쓸데없이 낭비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그 시간에 어떤 일을 했어야만 하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내 장담한다. 너 자신이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네 시간도 이렇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넌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후배에게 이런 악담이라니...그러나 내게 쓴 소리를 한다는 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선배의 악담을 뼈아픈 충고로 받아들였다. 선배의 철저한 시간 관리가 존경스러운 한편 '나도 선배처럼 할 수 있다'는 오기가 슬그머니 발동했다.
현용수 『올바른 학습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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