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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물) 판타스틱 이창천인용 2026. 7. 21. 12:04
외교관 출신 작가 이경렬은 내부고발자다. '칼의 언어' 밑에 애정과 갈망이 흐른다. 36년간 목도한 외교 현장의 구질구질한 현실과 그 속에서 우아한(?) 삶의 외양을 즐겨온 외교안보 관료들의 행태를 고발한다. 그리고 외친다. 한미 동맹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들며 종종 국가와 국민을 배반했던 과거, 아니 현재와 작별하자! 새벽 3시 일어나 하루 한끼 식사(저녁)와 하루 한 개의 칼럼을 눌러쓰는 루틴을 고수한다. 외무부를 외교부라 부를 수 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이경렬의 전쟁'이다. 책무의식(sense of mission)이 시퍼렇다. 많은 글이 기-승-전-자주외교로 귀결된다.
이창천 작가의 글은 통렬하다. 통렬하다는 것은 과격하다는 것과 다르다. 정확함이 없으면 통렬할 수 없다. (...) 그는 한국에서 탄생한 대체불가의 외교 평론가다. 외교 현장 경험을 토대로 현미경처럼 사안을 살피고, 풍부한 교양 공부를 바탕으로 망원경처럼 세상을 내다본다.
현실이란 주어지기도 하지만 만들어가기도 한다. 우리가 바라는 현실을 만들려면 주어진 상황과 부딪치고 견뎌내고 초극해야 한다.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는 "하늘이 몇 번 무너지든 살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당한 자존이요 솟구치는 생의 의지다. 진짜 대한민국의 길이요 명품외교의 길이다.
우리는 니체가 말하는 "생명의 의지(der Wille zur Macht)"를 기억해야 한다. "권력 의지"는 오역이다. 내 자신이 위대한 존재임을 깨닫고 힘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남이 함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존재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주가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라면 나는 우주만물의 창조주다.
우리는 초고등 생명체다. 매순간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처럼 이과수 폭포처럼 터지는 삶의 펄떡이는 기운을 고스란히 발휘하는 위대한 사람들이다.
(...) 미국이 달라고 하면 한국은 머니머신에서 현찰을 꺼내 미국에 넙죽넙죽 갖다 바쳐야 하는 것이다.
이제 그런 상황은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간단하다. 미군을 내보내면 된다. 그렇다고 한미동맹을 파기할 것까지는 없다. 군대 주둔 없는 동맹조약도 얼마든 있다. 미국이 파기하겠다고 협박하면 생각해 보자고 말하면 된다. 겁먹을 것 하나도 없다. (...) 이런 모든 것들이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손사래를 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불가능하지 않다. 절대로 가능하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것인지는 8장에서 얘기한 쥐 세 마리를 상기하면 된다. [날리지, 카리지, 랭귀지] 숭미의 진[gene]과 밈[meme]을 걷어내면 된다. 그러려면 정상의 진과 밈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지식과 용기와 언어라는 삼박자가 작동해야 한다.
한국인은 위대한 국민이다. 쓰레기 같은 인물들을 대통령으로 뽑는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어도 그런 자들을 두 번이나 탄핵시키는데 성공한 세계에서 유일한 선진 민주국민이다. 브라질도 두 번 탄핵에 성공했지만 선진국은 아니다. (...) 탄핵 여부가 선후진의 유일한 척도는 아니겠지만 선진의 핵심인 국민의 민주의식 수준과 결단력의 중요한 바로미터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외교개혁은 성격이 다르다. 외무부가 권력을 잡아 나라를 말아먹으려 한 적은 없다. 외교관들이 검사나 언론과 야합해 정권을 탈취하려고 야욕을 부린 적도 없다. 하지만 외무부는 두 가지 아주 고약한 작태를 벌이고 있었다. 하나는 작위였고 다른 하나는 부작위였다. 하나는 그들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라를 미국에 조금씩 팔아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오로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운신했을 뿐 정작 해야 할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오로지 미국과의 "유사외교" 내지 굴욕외교에 치중하고 개인적인 인사문제에만 정신이 팔리다보니까 중국, 러시아, 동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와의 제대로 된 외교는 간 데 없고, 그러다보니까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막대한 이익이 기회비용으로 날아가 버렸다는 얘기다. 외무부 직원들은 자신이 한국인이요 공무원이라는 의식도 희박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명의식도 거의 없다. 자신은 학처럼 우아하게 날아다니는 존재라는 의식이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빠른 시일 안에 철저한 정신개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외교는 경우에 따라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예술이다. 그럴 수 있으려면 외교관들이 실력이 있어야 한다. 평소에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외무부 직원들의 실력가지고는 턱도 없다. 그동안 선배들이 형편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후배들이 그걸 보고 컸던 탓이다. 싹 고쳐야 한다. 한국외교의 개혁은 외무부만의 개혁은 아니다. 외교가 외무부만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지도자들과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의식개혁이 병행되어야만 제대로 된 외교개혁이 가능하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외무부 개혁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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