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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것의 절박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7. 8. 11:05
학교법인의 경영자가 되고 보니, 이제까지 만난 적이 없던 유형의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몇 명쯤 만나 이야기를 듣고서, 필자와는 완전히 성질이 다른 인종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들은 '리얼리스트'인 것이다. 그들이 현실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거기에 존재하는 것'뿐인 것이다.
그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필자는 다르다. 필자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 에 대해서도 그 절박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죽은 이들이다. 죽은 이들의 눈길을 필자는 등뒤에 느끼는 경우가 있다. 죽은 이들은 필자의 이러한 몸짓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몸짓은 '세상이 용서할지 몰라도, 죽은 이들이 용납치 않는' 종류의 것이다. 그러한 경우, 필자는 죽은 이들의 의중을 우선한다.
'분위기'도 그렇다. 분위기도 형태가 없지만, 절박해오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조몬 해진기 때 구릉이었던 곳 위에 있다. 겐지키 식 신사인 오카다 신사라는 사당이 캠퍼스 한복판에 있다. 1100년 전부터 '성지'였던 땅에다가 훨씬 나중에 미션스쿨을 지은 것이다.
여기를 학교 부지로 고른 선인은 아마도 종교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성지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서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술렁임이 잦아들고, 마음의 안개가 걷힌다. 이러한 느낌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거니와,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수치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옛날에 금융계 컨설턴트가 재정 타개책을 위해 본교에 왔던 적이 있었다. 1년 동안 조사한 결과, '이 학교 건물은 낡아빠져 가치가 없으므로, 교외에 이전하고서 고층건물을 짓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냈다. 우리 학교가 자리잡은 '성지'의 아우라도, 몇 년 뒤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는 바 있는, 건축가 보리스가 설계한 학교 건물의 아름다움도, 이 컨설턴트들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또한 당연할지 모르겠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감지할 수 없는 것이다. 영적 파동, 음향의 진동, 학교 건물의 뛰어남, 나무들이 발하는 신록의 아름다움 그 어느 것도, 수치적으로 나타낼 수 없는 것들이기에 가치가 전무하다고 값을 매긴다.
그런 치들하고는 두 번 다시 연을 맺지 않겠노라고 다짐했건만, 또다시 어울리기 시작하게 되는 듯해 조금 속상하다. (7월 8일)
(2026-07-05 09:27)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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