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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주식
    인용 2026. 6. 28. 17:34

    영화 "쏘우"(Saw)에서 게임에 지면 죽는다. 살려면 초인적인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스팅"(The Sting), 복잡한 게임이다. 한번 걸려들면 헤어나기 어려운 게임이지만, 다 지나고 나면 그게 무슨 게임이었는지는 알 수 있는 게임이다. "블러드 심플"(Blood Simple), 자기가 안다고 생각한 게임이었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게임이다. 다 지나고도 무슨 게임이었는지는 관객만 안다. 자본주의의 금융 게임은 이 세 가지 게임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게임이다. 그것이 결국에는 내 돈과 삶을 전부 빼앗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미리부터 알 수는 없다. 게임이 다 지나가고도 알기 힘들다. 끝까지 가면 무조건 진다. 그러니 그런 게임에는 눈을 돌릴 일이다.

     


    저는 1980년대에 도쿄에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제겐 도쿄가 세계에서 가장 싫은 도시였습니다. 도쿄라는 도시가 싫어서 거기에 살고 있는 친구 녀석들도 정말 싫어했습니다. 저도 물론 거기에 있긴 했지만요.


    1985년은 거품경제가 한창일 때였는데요, 다들 기억하고 계신지요? 그해에 고등학교 반창회가 있었습니다. 동급생들은 당시 35세였습니다. 반창회에 20명 정도 모여서 호화스러운 레스토랑에서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두 돈이 많았거든요. 한참을 주식 이야기라든지 부동산 이야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밖에 화제가 없는 겁니다. 35세의 남녀가 주식 이야기라든지 부동산 매매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 거지요.


    "우치다는 주식 안 해?"라는 말을 듣고 "나는 그런 거 안 해. 돈은 땀 흘려 벌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해서 모든 사람의 실소를 샀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우치다는 정말로 바보구나. 거기에 돈이 떨어져 있는 게 안 보이는 거야? 그냥 쪼그려 앉아 주우면 되는데, 왜 너는 줍지 않는 거야?"


    그것이 싫다고 말해도 물론 친구들은 알 리가 없지요. "이 녀석은 말이 안 통한다" 하고 모두 저를 무시하고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의 억울함이 뼈에 사무쳐 있습니다. 지금도 원망하는 마음이 남아 있을 정도니까요(웃음). 절대 그런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거품경제 시대가 그립다"라고 말하는 바보가 있는데, 그렇게 인간들이 보기 흉했던 시대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 어째서 자신이 거둔 노력의 성과를 타인과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가?

     

    아니, 그건 내 몫이잖아?

     

    어허, 그게 아니라니까....

     

    오늘날에는 거의 읽히지 않는 "스위스의 로빈슨 가족"이라는 아동문학작품이 있다. 이 소설은 스위스인 일가가 표류 끝에 도착한 무인도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 첫머리에 무인도에 닿은 뒤 해안에서 모두 어패류를 모아 부이야베스(bouillabaisse)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수프는 다 끓였지만 떠먹을 그릇이나 스푼도 없고, 양도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작은 굴 껍데기를 돌려가며 수프를 떠먹는다. 그러자 어린애 한 명이 커다란 조개껍데기를 꺼내어 수프를 푹푹 떠먹기 시작했다. 참 요령 좋은 아이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을 본 아버지가 아이에게 묻는다. "넌 커다란 조개껍데기로 먹어야 수프를 더 효율적으로 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았구나?" 아이는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네, 맞아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왜 너는 가족 수대로 조개껍데기를 주워오지 않고 자기 것만 주워온 게냐? 너한테는 수프를 먹을 자격이 없다."

     

    나는 아홉 살 즈음에 이 에피소드를 읽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하, 그렇구나..., 집단을 이루어 사는 데 '그런 룰'에 따르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구나 하고.... 메모를 해둬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젊은이들 대다수는 이런 에피소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 나오는 아버지가 머리가 좀 이상한 게 아니냐고 물을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경쟁적으로 분배할 경우에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행동하는 게 왜 질책을 받을 만한 일인가?

     

    이 룰을 받아들이면, 이를테면 주식 거래 같은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맞다. 그렇다.

     

    "스위스의 로빈슨 가족"에 나오는 아버지의 룰에 따르면 주식은 거래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의 룰이란 '여러 명의 인간이 무인도에서도 살 수 있는'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점을 기억해두자.

     

    '무인도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룰이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허용되는 특별한 예'일 뿐이다. 그리고 현대의 젊은이들은 그런 '특별한 예'밖에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지와 아모르 파티(Amor Fati)다. 한번 살아버린 지금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타임머신 그런 거 없다. 허망한 삶을 살지 않으려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뭐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껍질 인간인지 아닌지 무자비하게 따져야 한다. 벨라스케스의 명작 "시녀들"(Las Meninas)을 들여다볼 때처럼,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하염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의식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인간을 붙들어야 한다. 인간이 없는 우주는 인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의 삶은 굉장한 순간들이다. 의미(意味)란 뜻맛이다. 의(意)는 우리 마음(心) 속에 던져져 울리는 소리(音)다. 외부 사물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물결소리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에서 떨림을 느낀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味) 역시 떨림이다. 결국 의미(意味)란 뜻맛이고, 뜻맛이란 우리 마음속의 떨림이다. 와인 한잔을 마시더라도 마음의 떨림이 없다면 무의미한 일이다. 아침마다 살아있음에 무한한 떨림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런 인생 꾸역꾸역 살 가치가 없다.


    이것은 도쿄라는 지루한 거리에서 나고 자라 평범하게 망가지고 만 여자(젤다 피츠제럴드처럼?)

    사랑 자본주의를 둘러싼 모험과 일상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가 "모든 일은 매춘이다."라고 말한 적 있죠. 동감합니다.

    옳은 말이에요. 그걸 알고 하는 사람, 모르고 하는 사람,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사람 기타 등등이 있지만

    다시 말하겠습니다. "모든 일은 매춘이다."

    그리고 모든 일은 사랑이기도 합니다. , 사랑이요.

    사랑은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안락하고 따뜻한 것이 아니에요. 그건 분명합니다.

    사랑은 힘겹고 매섭고 두려운 잔혹한 괴물입니다자본주의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헤엄을 못 치는 아이가 수영장 앞에서 겁을 집어먹듯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면 꼴사납겠죠.

    두려워하지 않고 훌쩍 다이빙하면 말이죠, 참 신기하게도 헤엄이 쳐집니다.

    《물장구 치는 금붕어》의 가오루처럼 자세는 엉망진창일지라도.

    오늘날 도쿄에 사는 모두는 평범하게 행복을 느끼며 사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이 두렵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타고난 도쿄걸이거든요.

     

     

     그리고 이 이야기의 소재를 제공해준 여동생 게이코(본인은 모르겠지만). 게이코는 현역으로 활발하게

    일하는 회사원으로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엔 관심이 없고, 저 역시 동생의 생활상이나 취향 등에 전혀 흥미가

    없지만 우리는 사이가 좋습니다. 게이코는 노느라 얼마나 지쳤든 간에 매니큐어만큼은 빠짐없이 챙깁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손톱은 언제 봐도 참 아름답더라고요.

     

    1989 9

    오카자키 교코


    소세키가 살았던 무렵의 자본주의는 현재와 같은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와는 달랐습니다만, 경영과 소유의 분리가 진행되고 조직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수반되는 다양한 모순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또 소세키는 런던으로 유학하여 이미 세계 자본주의의 중추였던 도시를 보았기 때문에 돈을 둘러싸고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되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상호 편익을 위해 서로 공헌하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정하게 교환하는 관계가 변질되고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져 당신의 행복은 나의 불행, 당신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제로섬게임이 공공연하게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스미스의 세계에서 보면 경제 시스템은 일탈되고 변형되었고 그렇게 계속해서 확대되어 우리 시대에는 돈이 돈을 부르는 '돈 경제'가 되어 '카지노 자본주의'의 양상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카지노 자본주의'에는 바로 '악마적인' 부분이 있어 타자를 세계 밖으로 쫓아내 소외시킬 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도 소외시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전반적인 '불신의 구조'에서 성립되었습니다.

     

    그리고 불신이 이익을 낳고 이익이 불신을 조장하는, 이를테면 '악마적인' 악순환이 금융 중심의 글로벌 자본주의 안에서 형성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라는 것은 인간의 필연적 욕구에 따라 상당히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으므로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바꾸는 것이 어렵다고 해도 멍하니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전에 소세키는 노도 같은 기세로 나아가는 근대 문명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나쁘니까 그만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눈물을 머금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미끄러져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자각적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비판적으로 극복한다고 말하면 될까요.


    김민석은 진짜 유명한 그림자정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