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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인류학자가 고쳐 쓴 경제의 역사
    인용 2026. 5. 17. 19:37

    (…) 오랫동안 대원수로 여겨졌던 상인 계층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사실상 편을 바꾸기로 동의하고, 그 동안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관행을 포기하고, 대신에 국가에 맞서는 어떤 결사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것은 이슬람이 처음부터 상업에 긍정적인 관점을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함마드 본인부터 상인으로 성인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슬람 사상가 중에 이익의 건전한 추구를 원래부터 부도덕하거나 신앙과 반대되는 것으로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고리대금에 대한 금지에 상업의 성장을, 더 나아가 복잡한 신용 도구의 발달을 저해할 요소는 전혀 없다. 반대로, 칼리프 영토 안에서 초기 몇 세기 동안에 상업과 신용 도구가 동시에 발전을 이루었다.

     

    (494)

     

    (…) 고대의 부채와 노예제도의 재앙에서 벗어나자마자, 지방의 시장은 도덕적으로 위험한 장소가 아니라 그와 정반대의 장소가 되었다. 인간의 자유와 공동체적 유대가 최고의 형태로 나타나는 곳이 되었으며, 그리하여 국가가 개입할 여지를 아예 내주지 않을 수 있었다.

     

    가격 조작의 기미를 보이는 것이면 무엇이든 강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인구에 회자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메디나라는 도시에 품귀 현상이 일어났을 때 무함마드 본인부터 상인들로 하여금 가격을 내리게 하는 조치를 취하길 거부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성을 더럽히는 일이라는 근거에서였다. 왜냐하면 자유 시장에서 “가격은 신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법학자들은 무함마드의 결정에 대해, 시장 매커니즘을 간섭하는 정부의 모든 조치는 신성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뜻을 전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시장들도 신에 의해 스스로를 통제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의 섭리가 작용하면서 우리 모두가 다양한 능력과 욕망과 기질을 갖게 되었다고 투시는 주장한다. 시장은 단지 상호 부조의 일반적인 원칙, 말하자면 능력(공급)과 필요(수요)의 연결이 현실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내가 앞부분에서 제시한 그 용어들을 빌려 이 부분을 다시 옮긴다면, 시장은 ‘기본 공산주의’ 위에 세워질 뿐만 아니라 시장 자체가 그런 공산주의의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사회든 종국적으론 ‘기본 공산주의’에 기초해야 한다.

     

    그렇다고 투시가 급진적인 평등주의자였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는 “만일 사람들이 똑같이 평등하다면, 모두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농민과 목수 간에 차이가 있듯,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도 차이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시장이 경쟁보다는 주로 협력을 추구하는 곳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순간, 도덕적 함의가 매우 달라질 것이다. 이슬람 경제 사상가들도 시장 경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또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경쟁을 시장의 본질로 보지 않는다. 메추라기 알에 관한 나스루딘의 이야기는 농담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슬람 윤리학자들은 상인들에게 부자들과는 깐깐하게 협상을 벌여 이익을 많이 남기고 형편이 덜한 사람들과 협상을 벌일 때는 좀 후하게 대하라고 요구했다.

     

    가잘리가 분업을 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화폐의 기원에 관한 그의 설명은 훨씬 더 인상적이다. 그 설명은 물물 교환의 신화와 아주 비슷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 중동의 모든 저자들처럼, 그는 상상 속의 원시 부족민이 아니라 상상 속의 시장에서 만나고 있는 이방인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간혹 살다 보면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이 간절히 필요한데 정작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은 필요하지 않은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사프론이라는 식물은 있는데 짐을 옮기는 데 필요한 낙타는 없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낙타는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데 갖고 있지 않은 사프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교환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교환이 이뤄지기 위해선 두 가지 대상의 가치를 측정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낙타를 가진 사람은 사프론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낙타를 선뜻 줄 수는 없다. 사프론과 낙타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다. 집을 갖길 원하지만 옷 몇 벌밖에 없는 사람이나 노예를 소유하길 원하지만 양말 몇 켤레밖에 없는 사람이나 밀가루를 원하지만 나귀밖에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재화들 사이에 직접적인 비례가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프론이 얼마만큼 있어야 나귀 한 마리의 가치가 나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물물교환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 그들의 공동체는 아직도 상당 부분이 모스크와 시장이라는 두 개의 기둥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슬람의 전파가 시장을 세계적인 현상으로 만들었다. 당시 이슬람권의 시장들은 정부와 별도로 독립적으로, 자체의 법에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이슬람의 시장이 정부에 의해 창조되지도 않았고 경찰이나 감옥의 지원도 받지 않는 순수한 자유 시장이었다는 사실은, 그러니까 오직 서명자의 정직만을 바탕으로 한 서면 약속과 악수로 거래를 종결 짓는 그런 시장이었다는 사실은 그 시장이 훗날 그 사상과 주장들 중 많은 것을 채택한 사람들이 상상한 세상과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순전히 순간의 이기심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들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며 서로 경쟁을 벌이는 시장은 절대로 이슬람권의 시장과 같을 수 없다는 뜻이다.

     

    (500~506)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해결책은 상당히 달랐다. 유럽과 인도에서는 계급 조직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회가 성직자, 전사, 상인, 농민(혹은 기독교 사회의 경우에 성직자, 전사, 농민)의 계급적 질서로 돌아갔다. 각 계급 사이의 부채는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부채가 평등의 가능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채들이 노골적인 폭력을 부른 경우도 종종 있었다. 반대로, 중국에선 부채의 원칙이 종종 우주를 지배하는 원칙이 되었다. 업보, ‘젖 부채’, 인간들과 천상의 힘들 사이의 부채 계약 등이 그런 예들이다.

     

    권력 당국의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것들은 과잉으로, 또 잠재적으로 전체 사회 질서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자본의 과도한 집중으로 이어졌다. 정부의 책임은 시장들이 부드럽고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개입하여 민중 폭동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슬람 세계에선 신학자들이 매 순간 신이 전체 우주를 다시 창조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며, 따라서 시장의 변동도 단순히 신의 의지의 표명으로 여겨졌다.

     

    놀라운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유교가 상인을 비난하고 이슬람이 상인을 칭송하는 입장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반되는 입장이 똑같은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중국과 이슬람권에서 똑같이 시장이 번창하는 가운데 사회가 융성했지만,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인 거대 상업 은행과 산업 기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슬람의 경우에 특히 더 놀랍다. 분명히, 이슬람은 자본가라는 표현 외에 어떤 용어도 어울리지 않을 인물들을 배출했다. 당시 대규모 상인들은 “자본 소유자”라는 뜻으로 ‘사히브 알말’(sahib al-mal)이라 불렸다. 법률 이론가들도 자본의 조성과 확장에 대해 자유롭게 거론했다. 이슬람 세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일부 상인들은 수백만 디나르를 소유한 상태에서도 이익이 남을 투자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도 현대 자본주의 같은 것이 이슬람권에서 생겨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요소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이슬람 상인들은 자신들의 자유 시장 이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시장은 정부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지 않았다. 계약도 개인들 사이에 체결되었다. 그것도 “악수”로 계약을 확정 짓는 식이었다. 그 덕분에 명예와 신용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둘째, 이슬람은 위험에 대한 보상이 수익이라는 원칙을, 그러니까 훗날 고전 경제 이론에 소중하게 간직되었을 뿐 현실 속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던 원칙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교역 활동 자체가 상당히 모험적인 것으로 통했다. 실제로 무역업자들은 폭풍과 난파, 야만적인 유목민, , 대초원과 사막, 예측 불가능한 외국의 관습, 독단적인 정부들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금융 메커니즘은 불경스런 것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이슬람이 고리대금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고정된 이자율을 요구한다면, 그 수익은 보장된 것이다. 상업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로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이런 시각 때문에 훗날 유럽에서 발달하게 되는 금융과 보험 형태의 대부분이 이슬람권에서 발달하지 못하게 되었다.

     

    (540~541)

     

     

    (…) 영국의 가게 주인 대부분은 여전히 사업의 큰 부분을 신용으로 처리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고객들이 언제나 가게 주인들의 선의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스미스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보다는 그는 유토피아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현금을 사용하는 사회를 상상하길 원했다. 부분적인 이유는 그가 모든 사람이 현금을 사용하면 혼란을 피할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당시 중산층의 의견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선 사람들이 모두 돈을 정확히 계산하고, “please”와 “thank you”라고 말하며 가게를 떠날 것이다. 그는 이 유토피아적인 이미지를 더욱 확대한다. 모든 사업이 자기 이익만 좇더라도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허영심과 만족을 모르는 욕망”을 지닌 부자들의 “타고난 이기주의와 탐욕”조차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안겨줄 것이라고 한다.

     

    바꿔 말하면, 스미스는 화폐의 기원을 설명할 때와 똑같이 단순히 그 시대의 소비자 신용의 역할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경제 문제에서 선의와 악의를 모두 무시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자유 시장(국가에 의해 창조되지도 않고 국가에 의해 유지되지도 않는 시장)의 바탕을 이루고 있던 상호 부조의 정신뿐만 아니라 그가 모델로 여긴,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시장들을 가능케 한 요소인 폭력과 악의까지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에는 니체가 나서서 삶은 교환이라는 스미스의 전제들을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스미스가 거론하지 않기로 한 것들(고문, 살인, 신체 훼손)까지 다루었다. 그 시절의 사회적 맥락을 어느 정도 들여다보게 된 지금, 니체의 글 중에서 고대의 사냥꾼과 양치기들이 부채를 계산하면서 상대방의 눈과 손가락을 요구했다고 한 대목에선, 실제로 후벼낸 눈알과 자른 손가락에 대한 청구서를 자신의 영주 카시미르 후작에게 제출한 그 사형 집행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니체가 진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들은 그 자신처럼 성공한 중산층 목사의 아들이 모든 인간의 삶은 이기적인 교환을 전제로 한다고 간단히 단정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이었다.

     

    (592~593)

     

     

    (이상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부채, 5, 000년의 역사 : 인류학자가 고쳐 쓴 경제의 역사』,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