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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적 절도에 대하여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6. 25. 13:05

    학교법인의 이사장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퇴직 이래 15년만에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며 출근하고 있다. 다시금 '간판'을 짊어져야만 한다는 것이 내 고민의 씨앗이다.

     

    15년 전까지, 대학교원을 하고 있었던 무렵에는 '대학 교수씩이나 되는 양반이'라는 허두를 떼며 호통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대학 교수씩이나 되는 양반이, 이리 부적절한 걸 쓰면 되겠는가'라고 했다. 대학교수에게는 나름대로의 지적 절도가 요구되는 모양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난처해진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적부터 항상 '우치다는 별난 말만 한다'는 말을 꾸준히 들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별난 생각이 나기에 어쩔 수 없다. 이렇듯 별난 걸 쓰니 책을 만들어 주는 편집자와 만나고, 별난 연구를 하고 있자니 이를 흥미롭게 봐준 대학에 채용되었다. '별난 것들'로 먹고살아온 인간에게 '별난 말좀 하지 마라'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물론 필자에게 '지적 절도'가 없다는 점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저작이 이상하게 많고, 주제가 이상하게 온갖 갈래로 뻗어있다(철학, 문학, 교육, 영화, 무도, 노가쿠, 외교안전보장 등등).

     

    좀 된 일인데, 연하 학자들한테서 '우치다는 자기 주제를 모른다'고 혼난 적이 있다. 자신의 전문영역을 지키며 쓸데없는 일(주로 정치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 '학자의 절도'라고 이 사람들은 생각인 것 같다. 딱히 '절도'에 대해 어떤 정의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건 그분의 자유이므로, '분수를 알아라' 하는 말을 듣더라도, 필자로서는 '예예' 하고 흘려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걱정이 좀 되는 건 그들이 '지적 방종'에 대해 미움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는 참고 있는데, 어째서 너만 그렇게 제 하고 싶을 대로 하고 다니냐는 초조함에 가까운 것을 필자는 느낀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이라는 좁은 참호에 들어가, 거기에서 나오지 않도록 자제하고 있다. 그렇게 하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전문 영역을 정해서, 한번 거기에 들어가면 그 다음에는 죽을 때까지 거기서 나오지 마라'는 것이다.

     

    90년대가 저물 무렵 '자아 찾기 여행'이라는 것을 중앙교육심의회가 제기했다. 심의회가 말하는 것이니만큼, '국민을 지배하기 쉽게 정형적인 틀에 구겨넣겠다'는 목적이 있다는 점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아 찾기'와 '지배하기 쉬운 인간 형성'을 잇는 이로가 필자로서는 퍼뜩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안다.

     

    '자아 찾기'란 단지 '빨리 적직(適職) 찾기'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적직을 얻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적성을 알고, 번거로운 우회를 하지 않고서, 오로지 전문분야를 공부하여, 자격이나 면허를 따고, 그 다음에는 평생 그 직업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자신이 택한 좁은 참호에 꼭 들어앉아, 거기서 평생 나오지 말라, 그런 얘기다.

     

    자신이 택한 좁은 참호에 종신 유폐되는 것을 아이들은 '자기다운 삶'이라고 배워왔다. 유감스런 이야기다.

     

    따라서, 고등학생들은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자기 꿈을 정해오는 일'이라는 과제를 받으면 어두운 얼굴이 된다고 한다. 당연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을 가둬놓을 감옥을 택하라'와 같은 종류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몇 년 쯤 전에, 외국의 잡지가 일본의 대학을 취재해 특집기사로 실은 적이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세 개의 형용사에 빗댔다. 그것은 '함정에 빠져 있다(trapped)', '못박혀 있다(stuck)', '숨쉴 수 없다(suffocating)'이었다.

     

    그정도로 괴롭다면 감옥에서 나오면 될 것을, 이러한 메시지가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주니치 신문 6월 15일)

     

    (2026-06-24 08:21)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