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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의 효용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6. 25. 09:21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 씨와 연극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연극이 인간의 지적・감정적인 성숙에 필수적인 것이라는 점에 대해 둘의 의견이 일치했다.

     

    필자는 오랫동안 간제류 노가쿠를 수련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스우타이' "유교야나기"와 '시마이' "노노미야"로 무대에 섰다. "유교야나기"에서는 '구치키의 버드나무'의 정(精), "노노미야"에서는 로쿠조노 미야슨도코로의 유령을 선보였다. 버드나무의 정(精)은 늙은 몸이라는 데서 연기자 본인과의 공통점이 있지만, 로쿠조노 미야슨도코로는 질투에 몸이 단 여성의 유령이다. 공통점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공감할 수 없어도 연기할 수는 있다. 근대적인 연극에서는 '감정이입'이라는 메소드가 있는데, 노가쿠는 '본질적 모양'*부터 접근한다. 수목의 정(精)이나 호접, 천녀, 아다치가하라의 귀녀 등에 '감정이입'하는 건, 단적으로 무리이다. '감정이입 메소드'는 '드라마는 살아있는 인간 사이에서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를 채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이나 '존재하지 않는 것'과의 상호작용 가운데 살며 죽고 있다.

    (* 일본어 型かた. 후술할 아이키도에 '가타' 수련이 있다. 그 외에도 많은 뜻이 있는 듯하지만, 역자의 역량부족으로 뜻이 잘 전달되지 못하는 점 유감스럽다. - 옮긴이)

     

    넓은 의미에서의 연극은 '지금과는 다른 시대의, 이곳과는 다른 장소의, 나와는 다른 누군가'의 몸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방편이라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곧잘 쓰이는 말로 하면 '엠파시(empathy)'이다. '다른 이의 신발을 신어 보는 것'이라고 브레이디 미카코 씨는 독특한 정의를 내렸는데, 실제로 느끼기에도 그 말이 합당하다.

     

    연극이 학교교육에 필수라고 주장할 수 있음은 그것이 '엠파시' 훈련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무도 수련 역시 일종의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도복이라는 의상을 몸에 걸치고, 도장이라는 무대에 서서, 정해진 대사 ('겐유이치뇨', '안주다자' 등)을 욈으로써 '연극 비스무리한 것'이 아니라, 단적으로 연극이다. 연극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그것을 통해 수행자가 자기 심신의 심층에 침잠하여, 그 잠재가능성을 개화시킬 수 있는 게 맞다면, 연극은 현실과 마찬가지일만치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잠재가능성 개화" 운운은 현실에서 진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 옮긴이)

     

    (시나노 마이니치 신문 6월 12일)

     

    (2026-06-20 07:39)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