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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교육론 / 문고판 서문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6. 16. 14:52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다쓰루입니다.
『길거리의 교육론』이 문고화되었습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찾아뵐 수 있게 되어 저자로서 무척 기쁩니다. 문고화를 허락해 주신 미시마사의 미시마 구니히로 사장과, 문고화를 위해 분주히 힘써주신 가도카와의 오가와 가즈히사 씨에게 감사 말씀 드립니다.
『길거리의 교육론』은 2007년도 고베여학원대학의 대학원 세미나에서 이루어진 제 발언 부분을 받아쓰기해 가필한 책입니다. 이 무렵, 미시마사의 기획으로 말미암아, 대학원 세미나의 녹취록을 소재로 삼아 몇권 쯤 책을 만들었습니다.『길거리의 미국론』, 『길거리의 중국론』, 『길거리의 문체론』 등 미시마사의 '길거리 시리즈'는 대개 그런 제작방식을 취했습니다.
'세미나에서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책으로 만드는' 방식이 되어놓으면, 서재에 틀어박혀 으득그득 쓴 책하고는, 그 질감에서 어지간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눈 앞에 상대가 존재하므로, 아무래도 그 반응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야기가 좀 까다로워지면 청강생들이 따분해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하기에, 황급히 화제를 바꿉니다. 청강생들이 집중해서 들어주면 '오, 먹혔구나' 하고, 금세 상기되어 기상(奇想)을 속속 얘기하게 됩니다. 그러한 쌍방향성이 '라이브 책'에는 느껴집니다.
뮤지션은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소리 만들기에 열중하는 방식'과 '라이브 공연장에서 쾅쾅 고조되는 방식' 둘 다 하고 있지요. 책을 쓰는 일도 아마 그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바깥 세계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자신의 내면에 깊이 추를 매달아 늘어뜨려가는 작업과, 발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실감나는 반응이 오는 장소에 몸을 드러내어, 상호작용을 즐기는 작업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저는 둘 다 좋아합니다. 따라서, 제가 쓴 책 가운데 이러한 '라이브 책'이 매우 많은 까닭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현장에서의 상호작용을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이 책에서도 그러한 라이브 감각을 맛보아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이 책은 2008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이후 절판되지 않고서, 이렇듯 18년 뒤에 이르기까지 문고화된 것을 저자로서 몹시 기쁘게 여깁니다. 그러고보면, 2005년에 간행된 교육론 『하류지향』(고단샤) 역시 최근에 문고화되었습니다. 20년에 걸쳐 똑같은 내용의 교육론이 계속 끊임없이 읽히는 셈입니다. 저자로서 무척이나 자랑스레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 잠깐 기다려 봐'라고 말하고도 싶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 전에 나왔던 교육론이 왜 지금도 여전히 "리더블"한가 보니, 이 책들에서 다루는 문제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에 그렇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현대 교육의 본질적 논점을 다소간 거론합니다. 이번에 교정쇄를 다시금 읽고서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제가 거론한 문제 가운데 '아, 이 문제는 진작에 해결되었다오. 우치다 씨, 거 참 시끄럽게도 경종을 울렸소만, 그렇게 야단법석을 피웠어야 할 얘기가 애초에 아닌 듯하오 (웃음)' 라고 할 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었습니다. 어느 하나 해결된 게 없습니다.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화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나중에 커다란 문제로 화했던 코로나 사태의 영향, 등교 거부, 정보화 교육, AI 도입의 영향, 대학 통폐합 등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대학원 세미나 자리에서 '교육론'을 다룬다면, 이 책의 부피가 1.5배 쯤 불어나겠지요.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2026년 4월부터 학교법인 고베여학원의 이사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고베여학원대학에는 교원으로 21년 간 봉직했습니다. 퇴직한 뒤에도 대학 아이키도부의 지도를 이어왔으며, 때때로 수업에 불려가기도 하고, 평의원과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으므로, 36년이라는 긴 세월에 거쳐 끊임없이 연이 닿는 학교입니다. 그 학교의 이사장으로서 학교 경영의 책임을 지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병을 앓고 난 몸을 정양하고 있는 후기고령자에게는 가혹한 직무입니다만, 뽑힌 이상 이를 '천명'으로 여기고서, 여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조금 거리를 두고 교육론을 '쓰는' 입장이었으나, 앞으로는 다시금 이를 '실천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과연 여기에 쓰인 내용이 교육현장에서 정말로 유효한지, 교육현장을 분석한 내용으로서 적절한지, 그것이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여기야말로 로도스 섬이다. 여기서 달려보아라' 하는 옛 그리스의 이야기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앞으로의 제 교육 실천을 주시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6월 10일)
(2026-06-11 06:14)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이 책의 한국어 번역책 (제목 <교사를 춤추게 하라>) 을 다음과 같은 인터넷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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