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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레이디 미카코 씨와 이야기한 것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6. 16. 12:28

    영국에 살고 있는 브레이디 미카코 씨와 그녀가 새로 낸 책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문예춘추사)을 놓고서 온라인으로 대담했다. 브레이디 씨는 필자와 잡지 AERA의 권두 칼럼을 번갈아 연재하는 필진이기도 하다. 매번 그녀의 영국 보고담을 기다리곤 한다.

     

    브레이디 씨의 영국 사회 분석은 참으로 명쾌하다. 그 이유는 그녀가 '현장'에 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노동자 구역의 보육원에서 보모 일을 오랫동안 해 왔다. 따라서, 영국의 노동자 계급, "언더 클래스"의 실정을 너무나 실감나게 알고 있다. 빈곤, 폭력, 차별이 사람을 어떻게 다치게 하고 상하게 하는지를 소상히 알고 있다.

     

    일찍이 오다 마코토는 '충감도(蟲瞰圖)'와 '조감도' 이렇게 두 가지를 가지는 게 현실 이해에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필자도 이 의견에 찬성한다. 지금 눈 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정확히 보려면, 상대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우리만치 대상에 근접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포함한 역사적 풍경을 부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상에서 멀어지는 일이 필요하다. '초점거리를 자유로이 왔다갔다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오다 마코토가 '충감도', '조감도'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바는 이런 내용이리라 본다. 하지만, 시국을 논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특히 '현장'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 적다. 브레이디 씨는 그 예외적인 부류 가운데 한 명이다.

     

    대담에서 제기된 우리의 화제는 영국과 미국의 기묘한 정치 문화(가속주의, 테크노 봉건제*, AI를 통한 신체경험의 희박화 등등)였다. 브레이디 씨가 영미권에서 관찰했던 것과 똑같은 현상이 일본에도 여럿 일어나고 있음을 필자는 느꼈기에, 그 이야기를 했다. (6월 5일) 

    (* 테크노퓨달리즘 - 옮긴이)

     

    (2026-06-11 06:12)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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