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교육에 관하여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6. 16. 09:56

    현재 학교 교육에 가해지는 강한 사회적 압력을 느낀다. 그런 탓에, 현장의 교원들은 질식과 무력에 잠식되고 있다. 이는 각지의 학교나 교원단체의 강연의뢰라든가, 이러한 원고 의뢰가 들어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필자가 이제까지 교육에 관해 말해왔던 건 그 내용이 비슷하다. 학교 교육은 집단이 존속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활동이다.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는 집단의 존속과 관련한 이러한 활동들을 '사회적 공통 자본'이라고 불렀다. 넓게는 자연자원(대기, 토양, 삼림, 하천, 해양 등), 사회적 인프라(상하수도, 교통망, 통신망 등)에 더해, 사법 및 의료, 학교교육 등의 제도자본도 이에 해당한다. 우자와는 사회적 공통 자본의 운영을 놓고서 빡빡한 조건을 내세웠다. 그것은 '정치'와 '시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는 점이다.

     

    사회적 공통 자본은 정치적・경제적 여건과 결부되어서는 안 된다.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사법판단이 바뀐다든가, 주가가 폭락했다고 수도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든가, 지진해일이 있다고 해서 교육내용이 바뀌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지하철은 제시간에 도착하고, 전화를 하면 구급차가 달려오며, 학교에서는 어제와 똑같이 수업이 행해지는 게 집단의 존속을 위해 필요하다, 는 말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옛 에도의 우에노에서 벌어진 '쇼기다이' 전쟁 때에도 경제학 원서 강독을 이어갔다. "돌이켜 세간을 보건대 예전 도쿠가와의 학교는 물론 망해버렸고, 새 유신 정부는 학교 꼴도 갖추지 못했다. 일본 열도에서 적어도 책을 읽는 마당은 게이오 의숙밖에 없다"고 후쿠자와는 자랑한다(『후쿠 옹 자전』). '세상에 어떠한 소란이나 난리가 있대도' 교육의 명맥을 끊어서는 안된다는 점. 그것이 학교 교육의 요체라는 점을 후쿠자와는 관철했다.

     

    사회적 공통 자본의 급소라 할 만한 지점은 '전문가에 의해, 전문적 지견을 바탕으로, 안정적・항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옆에서 총탄이 빗발쳐도 예사롭게 책을 읽는 후쿠자와의 태도가 맞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느냐 하면, 정치와 시장은 '복잡계'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 나비가 팔락이면 캘리포니아에 폭풍이 일어난다'는 비유가 전하는 바와 같이,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는, 자그만 입력 변화로 인해 극적인 출력 변화가 초래된다. '원래 그런 것'이다. 그래서 정가와 기업계에서는 "플레이어"들이 그다지도 흥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공통 자본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타성'이 강하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다루는 대상이 이데올로기도 아니거니와 자본도 아니고, 맨몸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맨몸을 가진 인간에게는 생리적・물리적인 제약이 있다. 손발과 장기에도 그 수가 정해져 있다. 적절한 영양 공급과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망가진다. 그 시작은 어리고, 어느새 쇠하며, 언젠간 죽는다. 이렇듯 무르고, 약한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염두에 두고서, 급격한 변화로부터 인간을 돌볼 수 있도록 사회적 공통 자본은 제도설계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 상식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오늘날 일본에서 교육제도를 기안하고, 운영하고 있다. 정치와 시장에 교육을 맡기는 게 옳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런저런 정치적 제약을 걸어놓고, 교원들의 손발을 묶어두며, 사고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틀어막고, 이 지경에 학교 제도를 '시장에 불하'하여, '뒷일은 나몰라라' 식으로 일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다. 선의의 발로인 것이다. 따라서, 구제할 방도가 없다.

     

    필자의 주장은 일관되이 바뀌지 않는다. 학교 교육은 전문가인 교원에게 맡기고, 그 전문적 지견을 바탕으로, 정치와 시장의 간섭을 물리치며, 한없이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이런 소리를 하면 일본 국민 대부분이 놀라 까무러친다.

     

    정치적 간섭은 좋지 않다는 점까지는 동의를 해주는 사람은 많지만, '어느 학교가 살아남아야 하는가 혹은 어느 학교가 도태되어야 하는가는 시장이 결정한다'는 명제에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허나, 정말로 그럴까. 그 사람들은 아마 학교교육을 일종의 '상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장의 니즈가 있는 상품은 팔린다. 니즈가 없는 상품은 시장에서 퇴장한다. 단순한 논리다. 하지만, 교육을 상품이라고 여기면 애초에 공교육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음을 어째서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일까.

     

    학교교육으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이나 기능이 일종의 '상품'이라고 치면,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따라,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인간만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무상으로 학교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고액의 상품을 거저 나눠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시장경제 원칙에 위반한다.

     

    사실, 19세기에 미국에서 정부가 공교육을 도입하려고 했을 때에, 부유한 납세자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학교 교육의 수익자는 내가 모르는 아이들이다. 어째서 우리의 세금으로 타인이 덕을 보게 하려 쏟아부어야만 하는가? 그들은 언젠가 내 아이들의 경쟁상대가 될지도 모른다. 어째서 내가 사재를 털어 내 아이들의 경쟁상대를 길러야만 하는가?'

     

    교육이 상품이라고 말한다면, 그들의 주장은 지당하다. 하지만, 만약 그때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학교교육은 자기 부담'이라는 정책을 채용했다면, 미국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국민의 과반수가, 글자를 읽지 못하고, 사칙연산도 할 수 없으며, 전 세계나 자국에 대한 물정도 모르는 나라가 되는 경우, 그러한 약소국은 언젠가 어느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혹은 그렇게 되었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만.

     

    학교는 '교육 상품'을 사고팔고 있지 않다. 집단이 존속하기 위하여, 장래 집단을 떠받들어 줄 '없어서는 안 될* 인재'를 기르고 있을 따름이다. 쉽게 말해서, '어른'**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 원문은 須用 으로, 우치다 선생이 지어낸 말 . "필수" 할때 '수'자이다. - 옮긴이)

    (** 일본어 大人은 어른이라는 뜻인데, 우치다 선생의 지론에 따르면 어른은 '큰 사람' 즉, 노자가 말한 그런 의미에서의 큰 사람을 일컫는다는 이중의 뜻을 담고 있다. - 옮긴이)

     

    통치자가 철권을 휘두르며 단일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학교에 강요하고, 의논이나 토론도 싹 다 제한하는 집단에서는, 비슷한 얼굴 모양을 한 '예스맨'을 양산하는 건 가능해도, 지성은 고갈한다. 그런 집단에서는, 기술적인 혁신이나 학술적인 돌파도 일어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쇠퇴한다. 또한, 교육이 시장논리에 충실한 집단에서는, 시장의 승리자들이 아무도 집단의 존속같은 건 배려하지 않는다(그들은 이 집단이 '영 아니게 된다 싶으면', 개인 자산을 싸들고 '다른 집단'으로 이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리운영은 자율적 주체인 교육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는 것이 정론이다. 정론을 논하는 사람이 소수파이고, 다수파가 이성을 잃고 있는 경우는 흔하다. 그리고, 오늘날 일본은 참으로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제정신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5월 27일)

     

    (2026-06-11 06:06)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