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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가쿠와 약한 가부장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4. 18. 13:07

    간제류 노가쿠를 30년 가까이 수련하고 있다. 이아이와 장도를 처음 수련했을 무렵, 중세에 발상된 무예의 술리를 이해하기 위해 중세인의 신체 운용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게 계기가 됐다. 선, 다도, 노가쿠 세 가지를 고르기로 했다. 무엇이든 상관없었으나, 주변에 노가쿠를 수련하는 학부 세미나생이 몇 명 있어서, 그녀들에게서 티켓을 받아 때때로 노가쿠당에 다니게 되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만춘』의 영향도 컸다. 당시 딸과 둘이서, 바다가 보이는 도시의 고지대에 살면서, 대학에서 가르치고, 때때로 아무도 읽지 않는 연구논문을 쓰고, 옛날 영화를 보고, 옛날 음악을 들으며, 일요일에는 노가쿠당을 다니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어느날 보니 『만춘』에 나오는 소미야 슈키치(류 지슈) 같은 중년 남자가 되어있던 것이다. 그리고 뜻을 굳히고서, 간제류 유파의 시모카와 요시나가 선생께 춤과 노래를 배우고 있다.

     

    중세 일본인의 신체 운용 이치를 배우는 목적을 어디까지 달성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이후칸의 문인들로부터 몇 명 가량 필자에 이어 노가쿠이 입문하는 모습을 보며, 노를 수련하면 아이키도를 잘하게 된다는 신빙이 속속 퍼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보다도, 노가쿠가 필자에게 끼친 의외의 공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성역할'의 학습 기회였다는 점이다.

     

    전날 동문의 연습회가 가이후칸에 있어서 필자도 아홉 곡 참가했다. 그리고 알게 된 게 여성이 주인공인 곡이 노가쿠에는 정말로 많다는 점이었다 (지금 깨달아서 어쩌자는 것이기는 하나). 어제 실연에서는 『유야』, 『하나가타미』, 『이즈츠』, 『요시노 텐닌』, 『에구치』, 『가키츠바타』,『노노미야』, 『야만바』,  『마쓰카제』, 『하고로모』, 『아다치가하라』등등, 전 17곡 가운데 11곡이 '여성 주인공'으로 설정된 노가쿠였다.

     

    등장 인물은 사랑을 하는 여자, 원한을 품고 죽은 여자, 집착을 버리고 성불한 여자, 산에 사는 만, 살인귀, 선녀... 거의 '여자 카탈로그'다.  딱히 선생님이 작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곡의 난이도나 인기도, 전체 균형을 생각해서 만들어진 모음에 틀림없다.

     

    필자는 『노노미야』에서 로쿠조노 미야슨도코로의 유령의 몸짓을 하고, 『이즈츠』에서는 기노 아리츠네의 딸의 심정이 되어 아리와라 나리히라를 사모하며, 『야만바』와 『아다치가하라』에서 마녀의 비애와 격노를 읊었다. 읊다 보면 적잖이 감정이입이 된다. 유령이 된 여자들도, 산을 돌아다니는 산요괴도, 아다치가하라의 마녀도 각자 슬픈 사정으로 그런 신세가 된 것이리라. 어쩐지 좀 안타까웠다.

     

    그리고 번뜩 생각이 들었다. 노가쿠는 무가에서 행하는 제식용 예술이다. 야규 무네노리의 『병법가 전서』는 신인류의 극의를 다룬 책인데, 노의 비유를 구사하고 있으므로 노가쿠에 대한 소양이 없는 인간은 뜻을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즉, 뛰어난 무사라는 되려고 한다면, 전근대의 사무라이들은 '여자의 심정'이 되는 수련을 제도적으로 강제당했다는 뜻이다. 이거 원.

     

    생각해 보면 노가쿠에는 '남자의 심정'을 절절이 읊은 작품이 몇 없다. 다소 있기는 하나, 그 대부분이 '슈라노'인 즉, 전쟁에서 죽은 (그렇기에 고통스러웠던) 이야기들 뿐이다. 그밖에 필자가 수련한 것 중에서 '남자의 심정'을 읊은 것은 『고이노오모니』와 『소토바코마치』(남자가 나오는 건 한순간뿐이지만) 밖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모두 욕망에 굶주려 있는지라, 확 와닿지는 않는 남자들이다.

     

    일본의 가부장제는 '약한 가부장'을 이상으로 하는 제도라는 점을 전부터 논했다.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지만, 가장 오래된 전통 예술의 하나가 이렇듯 '여자의 심정에 공감하는 것'을 남자들에게 명백히 요구한다는 점은 필자의 '약한 가부장' 지론을 다소 보강해줄지도 모른다.

     

     

    (2026-02-12 09:00)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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