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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내전으로 향할까에 대한 사고실험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4. 17. 11:57
연말에 행해졌던 강연의 활자화를 받았다. 2시간 가까운 이야기 가운데, 미국과 관련한 20분 정도의 부분이 잘라냈다. 청중은 그 뿌리가 남쪽과 북쪽에 있는 재일학생들.
우리가 미디어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단편적인 사실뿐이지요. 스트레이트 형식 뉴스가 있고, 거기에 대해 짧은 해설이 있습니다만. 대체로 1개월이라든가 2개월 정도의 지평상에서밖에는 쓰이지 않습니다. 5년이라든가 10년, 혹은 100년 되는 시간 지평 위에서 기사를 쓰는 사람은 없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제 신문을 전혀 읽지 않으실 것입니다만, 그것은 신문사의 자업자득입니다. 일본의 신문은 '퀄리티 페이퍼'가 아니라 '대중지'이기 때문이지요. 대중지는 사건과 현상의 본질을 전하겠다는 사명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대중지는 독자가 좋아할 만한 것을 씁니다. 그러면 부수가 나옵니다. 그런 장사입니다.
퀄리티 페이퍼를 들자면 영국의 '가디언', 프랑스의 '르 몽드', 마국의 '뉴욕 타임스'등이 그렇습니다. 저는 프랑스에 있는 동안에는 대체로 '리베라시옹'이라는 좌익 신문을 읽습니다. 일간지인데, 읽을 만합니다.
일본의 신문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게 사건을 긴 시간 지평 가운데 놓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중동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공격했다, 그런사건이 있었던 경우에, 그저 헤즈볼라가 공격받았단느 스트레이트 뉴스만 전하는 게 아니라, 왜 이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는 이야기를 '애초에'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부터 쓰기 시작합니다. 오스만 제국이 중동에서 물러난 뒤,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중동에서 무엇을 했는가. 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들장했는가.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거기서부터 지금 일어났던 사건의 의미를 밝힙니다. 그것을 매번 쓰는데, 지면 1쪽을 써서 매번 '애초에'부터 시작합니다.
퀄리티 페이퍼와 대중지를 차별화하는 경계선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사건을 50년 100년이라는 시간 지평 위에 보도하는가, 아니면 그저 '이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끝' 하고 끝내는가의 차이입니다. 분명히 스트레이트 뉴스여도 진실을 전달하기는 합니다. 틀림 없이 팩트 보도이기는 하지만, 독자로서는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을 보도합니다. 일본 미디어는 여기에 염치를 느낀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보도하고 있는 기자 자신도 아마 자신이 보도하고 있는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이해하고 싶다'는 강한 마음을 품고 있을 거란 예상도 들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행간에서부터 독자를 향해 '좀 알아 주시오' 하는 간청하는 무언가가 전해질 테니까요.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퀄리티 페이퍼를 읽기를 권해드리는 겁니다. '뉴욕 타임스' 전자판은 매달 2,500엔 정도 됩니다. 일본 신문보다 훨씬 쌉니다. 실시간으로 차곡차곡 뉴스가 도착하므로 최첨단 뉴스에 '캐치업'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번역기능도 엄청나니까요, '뉴욕 타임스' 최신 정보가 깔끔한 일본어로 되어서 나옵니다. 미국을 이해하고 싶다면 '뉴욕 타임스'를 읽는 게 좋습니다.
신문, 티브이, 인터넷 그 어느 하나 단편적인 정보밖에 전하지 않는다면, 단편을 잇는 문맥은 자기가 생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 미국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는, 일본의 미디어에서 들어오는 뉴스만을 이어붙인다 해도 아마 여러분은 의미를 알 수 없을 겁니다.
미국은 지금, 준 내전상태에 있습니다. 정말 머지 않아 시민과 연방정부 직원이 주병과의 사이에서 총격전이 시작될 가능성조차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 공개된 '시빌 워'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캘리포니아와 영국 등 19개 주가 합중국에서 독립하여, 연방군과 반란군 사이에 내전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뉴욕에 있는 저널리스트들이 백악관에서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를 하려고 합니다. 내전중이므로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직행하는 길은 없습니다. 애팔래치아 산맥을 경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여정 도중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묘사한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좀 전에 'How Civil Wars Start'(한국어 제목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바바라 F. 월터)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내전은 시작되는가' 하는 연구입니다. 서평을 부탁받아서 읽은 책인데 굉장히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배운 것인데, '폴리티 인덱스(Polity Index)'라는 민주화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있습니다. +10이 완전한 민중국가, -10이 완전한 독재국가입니다. +10부터 -10까지 0을 넣어 전부 21단계로 각국의 정치체제를 평가합니다.
+10이라는 건 '완전한 민주국가'입니다. 국민의 의견이 곧바로 정책에 반영됨으로, 국민은 딱히 정부를 전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한편, -10의 '완전한 독재 국가'에서도 역시 내전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북한이나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런데, 국민은 완전히 정부에 지배당하고 있어서 무력한 탓에, 정치체제를 바꿀 만한 정치적 실력이 없습니다.
내전이 일어나는 건, +5에서 -5 사이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여기가 '아노크라시 존(anocracy zone)'이라고 불립니다. '반 쪽 데모크라시', 혹은 '부족 민주주의'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국내가 몇 개의 집단으로 분단되어, 사이에 전혀 대화가 성립할 여지가 없습니다.
나라가 아노크라시 존에 들어가는 건 2가지 패턴이 있습니다. 민주국가가 독재제로 이행하는 경우와, 독재국가가 민주화하는 경우입니다. 한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확실히 독재재가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격한 국내 대립이 일어났습니다. 현재 미얀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5이군요. 미국은 사실 그다지 민주화도가 높은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조금 전만 해도 +7이었건만, 2021년 1월 6일 연방의회 습격 사건이 일어났었지요. 그때 2포인트 내려가서 +5가 되었습니다. 그 뒤 트럼프가 등장했습니다. 아마 현재 미국은 미준화도가 2에서 3정도로 떨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저자주: 2026년 2월 10일 시점에서 미국의 폴리티 인덱스는 0). 거의 트럼프의 '왕국'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결국, 현재 미국은 아노크라시 존에 있으므로, 내전이 시작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내전이 시작되는 이유란 게, 딱히 국내에 격한 인종차별이 있어서라든가, 빈부의 격차가 있어서라든가, 정치가 부패했다든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닌 겁니다. 아무리 정권이 부패해도 일부 인간이 국부를 독점해도, 그것만으로는 내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노크라시 존에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제가 무너져 독재제로 가든가, 독재제가 무너져 민주화로 되든가. 어정쩡한 민주주의의 때에 내전이 일어납니다. 미국은 지금 민주제가 무너져 독재제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는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미국은 시빌 워를 과에 1번 경험했습니다. '시빌 워'는 보통 '내전'으로 번역해야 될 말이지만, 일본인은 이것을 '남북전쟁'이라고 옮겼습니다. 1861년이라 할 것 같으면 에도 막부 말기, 분큐 3년 무렵의 일입니다. 그 시대 고위층 가운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미국에서 일어난 전란을 일본어로 옮겼을 때 '내전'이 아니라 '남북전쟁'이라고 옮겼습니다. 이는 상당히 흥미 깊은 '오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내전'이어야만 합니다. '남북전쟁'이라고 옮기면 마치 '남쪽 나라'와 '북쪽 나라'가 있어서 그 두 개의 독립국이 싸웠다는 식으로 해석됩니다. 막부 말기 일본에서 영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미국의 사정을 쇼군에게 보고할 때에, '내전'이 아니라, '남북 간의 전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번역어를 고른 일본인은 상당히 현실을 잘 보고 있었습니다. 링컨이야말로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내전이라고 우겼습니다. 남부 11주 사람들은 이를 '시빌 워'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부 11주는 합중국을 탈맹하여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미연합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앨러배마 주 몽고메리에 수도도 있었고, 제퍼슨 데이비스라는 대통령도 있었으며, 물론 헌법도 있었고, 국기와 국가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본인들은 독립국 행세를 했습니다.
준주나 공화국이 합중국에 가맹하는 때에, 그들의 의회에서 의결하여, 주민투표에 부쳐 동의를 얻습니다. 가맹 신청을 연방의회에 보내고, 받아들여지면 합중국의 일개 주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절차를 반대로 하면, 합중국에서 탈맹할 수 있다고 남부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의회에서 의결과 주민투표로 동의를 얻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합중국 헌법에는 가맹에 관한 규정은 있어도 탈맹에 관한 규정은 없는 것입니다. 입구만 있지 출구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합중국에서 나올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이 없습니다. 평범하게 생각해서 주의회의 규정과 주민투표로 '합중국에서 나오겠다'고 결정하면 연방 의회는 그것을 저지할 권리가 없을 터였습니다. 왜냐하면 '같이 있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니만큼 말릴 수가 없습니다. 남부 11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노예제를 존속시키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탈맹했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남부의 탈맹을 받아들이지 않고서 이를 '반란'으로 간주하여 진압하게 되었습니다.
남부 11주가 만들었던 나라는 독립국인가, 미합중국의 일부인가,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연합국을 승인한 나라는 국제사회에 없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동정적이었지만 사태를 관망하기만 했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전쟁이 생각보다 오래 갔거나 전황이 남부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경우, 미연합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한 나라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미연합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건 '전쟁'이 아니라 '내전'이라고 링컨이 말한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남군이 져서, 남부 11주는 다시금 미합중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남북전쟁 이후 1869년에 '텍사스 주 대 화이트'라는 재판이 있었습니다. 텍사스 주의 탈맹은 합법인가 비합법인가를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중에 텍사스 주가 전비조달을 위해 미 국채를 화이트 씨라는 민간인에게 매각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뒤에, '미연합국 텍사스 주라는 정치단위는 존재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 주정부가 발행한 채권은 무효다'라는 재판을 '미합중국 텍사스 주'가 벌였습니다. '미연합국 텍사스 주'라는 건 뇌내망상같은 것이라서, 그런 유령 같은 것이 물론 미국채를 팔 권리는 없습니다. 따라서 채권을 돌려달라고 말한 것입니다. 당연히, 화이트 씨는 이 거래가 합법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요.
하지만 그 재판에서 대법원은 '탈맹은 위헌이므로 미연합국 텍사스 주 명의로 행한 거래는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합중국은 공통의 기원에서 태어난 유기적인 정치단위임으로, 한번 가맹하게 되면 다시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미연합국 텍사스 주'같은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이후, 주의 단독 이탈은 위헌이라는 원칙이 확립되었습니다. 다만, 판결문에는 혁명에 의하거나, 모든 주가 동의하는' 경우는 예외로 쳤습니다.
텍사스 주나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지금도 독립운동이 융성합니다. 주의 독립은 위헌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영문인지 독립운동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이 대법원 판결이 법리적으로는 이치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동부 13개 주는 '공통의 기원'에서 태어난 동질성 높은 정치단위이지만, 텍사스라든가 캘리포니아주 등 나중에 합중국에 가맹한 주는 그 시작이 다릅니다. 캘리포니아 공화국, 텍사스 공화국, 하와이 공화국은 모두 원래는 독립국이었고 자신들의 신청해서 미합중국의 주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원래 독립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건 보통 생각해 보면 말릴 수 없겠지요.
따라서, 다음 '남북전쟁'도 저번과 마찬가지로, 몇몇 주가 합중국에서 독립을 선언하는 방식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합니다. 가장 독립 달성에 가까운 주는 캘리포니아입니다. 캘리포니아는 트럼프 등장 이전의 여론조사에서도 '합법적으로 캘리포니아가 독립할 수 있다면, 독립하고 싶다'고 답변한 주민이 32%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미국을 망가뜨려놓은 뒤에 한 번 더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만약 평화적 혹은 합법적으로 미합중국에서 독립할 수 있다면 당신은 찬성합니까 반대입니까'하고 물었더니, 44%에 해당하는 사람이 찬성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어지간한 숫자이지요. 분명히 '평화적 혹은 합법적'이라는 조건은 충족시키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합중국 국민이 되지 않겠다는 사람이 캘리포니아 주 전체에서 44% 있는 겁니다. 이 숫자는 시간이 지나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 캘리포니아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이 계속되는 경우, 캘리포니아 주민이 '이제 참을 수 없다. 독립하겠다' 고 말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개빈 뉴섬이라는 사람이 현재 캘리포니아 주지사인데,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 반 트럼프파의 선봉장이고, 202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가운데 한 명입니다. 2028년까지 여유가 있을 때 트럼프는 민주당 소속 지사가 있는 주를 놓고서 '치안이 악화되고 있다'는 이유로 주방위군을 멋대로 파병합니다. 원래 주방위군은 주지사의 지휘 하에 있습니다. 대통령이 주방위군을 지시를 내리는 경우는 주내에 폭동 등이 일어나서 시민의 인권이 위기적인 상태에 있거나, 주정부가 더는 법 집행 능력이 없는 경우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멋대로 '이 주는 더 이상 연방법을 집행할 수 없을 정도로 치안이 나쁘다'고 판단하여, 자기 멋대로 주방위군을 파병합니다.
평시에 주방위군을 대통령이 움직이는 건 헌법위반입니다. 뉴섬 지사는 전미 지사 협회에서 트럼프에 대해 결연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성명을 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멋대로 주방위군에게 지시를 내지 말라는 데에 전미 지사 협회가 결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지사 협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전미 지사 협회에서 탈퇴하겠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작은 뉴스였지만, 주가 연방정부기관에서 탈퇴한다고 말하는 것이니만큼, 상당히 중요한 '조수간만의 변화'가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가령 캘리포니아가 독립하면 인구 3,900만 명이고 GDP는 4위가 됩니다. 미국, 중국, 독일을 잇는 '대국'이 됩니다. 캘리포니아에는 실리콘밸리가 있으므로 첨단 기술의 발원지입니다. 농토도 풍족하고 농업도 대규모이며, 자연자원도 있습니다. 헐리우드도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아시아계 시민이 많은 곳이므로, 현재 트럼프의 이민 정책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트럼프의 이민 정책에 대해 상당히 공포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갑자기 ICE에게 체포당해 본국으로 강제송환될짇고 모릅니다. 영주권이 무효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리스크에 처해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캘리포니아가 미합중국이 아니기를 하는 희망에 기대는 건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내전이 일어난다면 반 트럼프 시위가 과격화되어 진압하러 온 ICE나 주방위군 사이에 총격전이 일어나, 연방 직원이 주방위군, 시민 측에서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그 경우 한순간에 미국이 내전 상태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의 행정단위가 독립할 것이라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미국은 다릅니다. 단적으로 United States이며, States라는 건 진짜로 '나라'입니다. 독립 시점에 동부 13주 역시 각자 주헌법을 가지고 있었고, 고유한 정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전이 일어난 경우,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엄청난 기세의 살육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의 경우는 어떤 나라라도 일단 전시 국제법을 지킵니다. 비전투원을 공격하지 않는다든가, 병원, 학교, 교회를 공격하지 않는다든가, 포로는 제네바 조약을 기반으로 조치한다든가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전에 전시 국제법이 적용될까요? 저는 적용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반란군'과 '진압군'의 싸움이니까요. 연방군에 거스르는 시민은 '전투원'이 아니라 '범죄자'로 간주됩니다. 따라서, 전시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 엄청난 학살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북전쟁이 그랬습니다. 남북전쟁은 미국 사상 최악의 전쟁입니다. 사망자 수는 65만 명에서 82만명 쯤 되는 애매한 숫자인데, 이는 미국 사상 최다 사망자 수입니다.
제 1차 세계 대전때 미국의 전사자는 11만 명, 제 2차 세계대전에서는 29만 명, 한국전쟁에서 3만 7,000 명, 베트남 전쟁에서 5만 8,000명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전사자 숫자만 늘어놔도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인구의 분모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분모는 2억 5,000만 명이었습니다. 남북 전쟁 때의 분모는 2,500만 명입니다. 베트남 전쟁 무렵보다 10분의 1 적습니다. 결국, 1960년대에 남북전쟁을 한다면, 사망자 수는 650만 명에서 820만 명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베트남 전쟁 사망자 수의 100배입니다. 이렇게 듣고 보면, 남북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살육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남북전쟁에서는 남군의 소모율이 높았습니다. 보통 전쟁에서는 소모율이 30%이 되면 백기를 듭니다. 30%를 넘으면 이제 조직적인 전투가 불가능해지고 그저 사상자 수만 들어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모율이 30%가 되면 백기를 들고 투항하고 포로가 됩니다. 이것이 '전쟁의 정석'이지만 남북전쟁 때, 게티스버그 전투에서의 남군의 소모율은 50%입니다. 이는 포탄이 날아드는 곳에 곧장 뛰어든다든가, 총탄이 비같이 쏟아지는 데를 진군한다든가, 그러한 전투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까지 남북의 병사는 서로 미워했습니다.
이 지점이, 내전의 무서운 면입니다. 동포를 서로 죽이는 경우가, 독립국끼리 전쟁을 할 때보다 사람이 더욱 잔혹해집니다. 오늘 여기에 오신 분들은 한반도의 전쟁을 알고 계시니까, 어떤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인간은 외국인에 대해서보다도, 적대시하는 동포에 대해서 보다 폭력적이 됩니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은 남군 영토에 들어가서 약탈하고, 비전투원을 죽이고, 강간 등을 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자세히 쓰여 있습니다. 따라서 전쟁이 끝난 뒤에 남부에서는 엄청난 백래시가 있습니다. 쿠 클럭스 클랜이 생긴 것도, '짐 크로우 법'이라고 불린 인종차별적인 법률이 생긴 것도 남북 전쟁 이후입니다. 인종차별은 남북전쟁에서 지고 난 뒤 남부에서 격화된 겁니다. 그것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백인지상주의자'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옛날 남군의 흐름을 따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까지 남부에 대한 회한이 남아있습니다.
이번에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사실상 추대한 것은 '워크(woke)'라고 불리는 '운동가' 사람들에 대한 미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계기가 된 건 '캔슬 컬처'중의 하나가 리 장군의 동상을 쓰러트리고, 녹여버린 사건입니다. 리 장군은 남군의 최고사령관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한 사람입니다. 남부에서 리 장군은 군사의 신입니다. 그 사람의 동상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들이 노예제를 지지했던 군인의 동상을 공공 장소에 놓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끌어내려 녹였습니다. 이 사건을 알았을 때, '그런 건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하는 게 극단적입니다. '일절 용서하지 않는다(zero tolerance)'이니까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건 모두 부정합니다.
이런 좌파적인 무관용에 대해 트럼프는 우파적인 무관용으로 응수합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은 모두 금지합니다. 처음 서명한 대통령령이 '반 DEI법'이었으니까요. '다양성(diversity)', '공평성(equity)', '사회적 포섭(inclusion)' 등 여태까지의 '정치적 올바름'의 기본 이념을 전부 부정했습니다.
남북전쟁으로부터 150년이 흘렀건만, 또다시 비슷한 이유로 내전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미국이 이루고 있는 연방은 그렇게까지 강고한 게 아닙니다. 미국은 건국 시점부터 계속 내부 분열을 품고 있었던 겁니다.
독립선언이 이뤄진 게 1776년이었는데, 합중국 헌법이 만들어진 건 1788년이니 제정되기까지 11년 걸렸습니다. 연방정부에 큰 권한을 부여하고 주정부의 권한을 줄이자는 국가구상을 가진 사람들을 '페더럴리스트(연방주의자)'라고 이릅니다. 그에 대해, 연방정부는 그저 주의 합의체여야만 한다, 실제 통치의 권한은 주정부에 남겨두자는 '주권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연방파와 주권파 사이에 격한 논쟁이 있었는데, 어지간히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미합중국 헌법은 어느정도 이 두 세력이 타협한 산물인 겁니다.
그 전형이 연방의회의 권한을 규정한 1장 8절 12항입니다. 여기에는 연방 의회가 육군을 소집하고 유지하는데, 그러기 위한 지출은 연도를 넘어서는 안된다고 되어있습니다. 즉, 육군 상비군을 갖지 않는다고 쓰여 있습니다.
물론 미국에는 상비군이 있습니다.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우주군, 해안경비대 등 여섯 개 군조직, 143만 명의 직업군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헌법에는 지금도 '육군은 상비군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왜인고 하니, 독립 전쟁에서 식민지 사람들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총을 들고 모여서 연대를 만들어 간접투표로 연대장을 뽑았습니다. 상비군은 13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연방파는 상비군이 없으면 외적이 공격해왔을 때에 주가 단독으로 응전할 경우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은 힘 있는 주가 다른 주로 침공하여 지배한다든가,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의 군사적 대립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든가 하는 이런저런 위험성을 꼽으며 반론했지만, 결국 주권파에게 양보하게 되었습니다.
종종, 일본국 헌법 9조 2항과 관련해, 이렇게 현실성 없는 헌법조항을 가진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조문을 현실에 맞추자는 것이지요. 하지만 개헌파의 논리에 따르면 상비군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미합중국 헌법을 갖고 왜 '현실과 괴리된 부끄러운 헌법을 가지면 안된다. 현실에 맞게 개헌하라'는 말이 백악관에서도 안 나오는지 설명이 안 됩니다. 하지만 이를 진지하게 따지는 일본의 개헌파를 본 적이 없습니다.
독립선언에는 '저항권'과 혁명권'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인민은 자신들의 생명, 자유, 행복추구의 권리를 저해하는 정부를 고치고 폐지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는 당연한 얘기입니다. 독립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시민적 행복이나 행복 추구의 권리를 저해하는 정치 권력은 무너뜨려도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말해야만 독립전쟁이 정당성을 가지니까요. 따라서, 독립선언에는 저항권과 혁명권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이 저항권과 혁명권을 헌법에 써넣어야 하는지와 관련해 당연히 논쟁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막 생긴 나라인데 '맘에 안 들면 합중국을 개조 폐지해되 상관없습니다'라고 헌법에 써넣는 꼴이니까요. 하지만 독립선언의 정신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역시 이 부분에서도 독립선언이 내건 이상과 합중국의 현실 사이에 타협이 행해졌습니다. 그 결과 헌법 수정 제 1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는 아시는 바와 같이, 언론 보도의 자유와 시민의 평화적 집회를 열고, '정부에게 고충의 구제를 청원할'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청원하다'는 petition이라는 영어입니다. 그다지 들어본 적 없는 동사일 것입니다. 일본어에서 '청원'이라고 말하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청원서류를 가지고서 의원회관에 쫓아가서, 의원님이나 의원 비서에게 '이거 한 건좀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petition이라는 영어의 원뜻은 그렇게 점잖지 않습니다. 어원은 라틴어의 pete라는 동사입니다. 뜻은 '추구하다, 얻기 위해 노력하다, 박차를 가하다, 적의를 가지고 돌진하다, 갈망하다'입니다. '법률적 권리를 소추한다'는 건 훨씬 나중에 나온 말뜻입니다. petition이라는 동사는 상당히 공격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으므로, '청원하다'라는 너무나 잔잔한 일본어로 때려맞출 일이 아닌 겁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두 대지식인들이었으므로 고전어에 통달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petition이라는 동사를 골랐을 때, 이 라틴어의 원래 뜻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싸워서 쟁취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일본어로 옮긴 합중국 헌법을 보면, '혁명권'이 어디에도 쓰여져 있지 않습니다. 혹은 '청원권'만 쓰여져 있는데, 실은 여기에 저항권과 혁명권의 어감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헌법 수정 제 2조는, 아시는 바와 같이 무기를 가지고 다닐 권리입니다. 이는 법리상 있는 게 당연하고, 없으면 안되는 조문입니다. 왜냐하면 시민에게는 저항권과 혁명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저항하고 형명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청원권'을 명기한 제 1조에 이어, 제 2조에 모든 시민은 총을 가지고 다닐 권리가 있다고 해놓은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총기규제가 잘되지 않습니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어째서 그런 전근대적인 헌법조항이 지금도 있는지 의문일 텐데,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청원권과 무장권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무장권이 사라지면 '적의를 가지고 돌진'할 수 없습니다.
청원과 관련하여 '평화적으로 집회를 연다'는 조문이 있습니다. '평화적으로'라고 번역되는 원래 영어는 peaceably입니다. peacefully가 아닙니다. 어감이 상당히 다릅니다. peacebly는 개인이나 집단이 활동을 할 때 '될 수 있는 한 싸움을 피하고 조용하게'라는 의미입니다. 될 수 있는 한 평화적으로 하고 싶은데,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 그러한 어감이 이 부사 하나에도 들어차 있습니다. 합중국 헌법 제정 과정에서 연방파와 주권파 사이에도 엇갈렸단 이야기를 좀전에 했습니다. 그런 동사 하나, 부사 하나 선택을 보아도, 이게 얼마나 숙의를 거친 결과인가 상상이 안 될 정도입니다.
미국인이 '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사실 일본인으로서는 잘 모르기 마련입니다. 일단 그렇게 생각해둡시다. 군대의 기본이 '총을 쥐고 들고 일어난 시민(militia)'이라는 사고방식은, 소집영장으로 징병되는게 군대라고 생각하는 인간에게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독립전쟁 전후의 이야기를 그린 미국 영화를 보는데, 전쟁 중에 집에 가는 사람이 있는지라 놀랐습니다. '잠깐 갔다올게' 라면서요. '지금 수확기라서 밭에 일손이 필요해서'라고 합니다. 한창 전쟁 중에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도 비겁하다든가 배신자라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자신의 자유의사로 전쟁에 온 것이니까요. 따라서 자기 맘대로 전선을 이탈한다고 해도 그것을 아무도 핀잔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군'에 대한 사고방식을 어느정도 알아놓고 있지 않으면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내전의 문맥이 잘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내전이 일어나는 경우, 세계의 지정학적 환경은 한꺼번에 유동화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왜냐하면 미국에서 까딱 내전이 일어나면 해외에 있는 기지를 유지할 수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아마 전부 철수할 겁니다.
가령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내전이 일어난 경우, 재외 미군 기지의 병사들은 미국 내의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요? 연방정부는 물론 재외 기지의 군인들에게 연방군에 들어와 반란군을 진압하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재외미군이 대통령의 지시에 유유낙낙 따르며 동포를 죽이는 군사작전에 종사하겠습니까? 군과 백악관 사이에 반드시 교감이 확실히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전이 벌어졌을 때에, 군이 어떻게 대처할지 그리 간단히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캘리포니아가 독립을 선언한 경우, 일본 정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독립을 승인할까요? 아마 일본 정부는 '하지 않을' 겁니다. 분위기를 살펴서 다른 대국이 승인하면 거기에 묻어가는 데 그치겠지요.
하지만 상당히 중요한 사고실험입니다. 만약 캘리포니아가 독립을 선언한 경우, 일본 정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캘리포니아 뿐만이 아니고, 모든 주에 일본인이 근무나 유학을 하고 있습니다. 내전이 벌어지면 그들을 어떻게 구출할 수 있을까요? 한국인 역시 캘리포니아에 많이 있지요. 내전이 일어난 때에, 재미 한인 동포를 어떻게 구출할 수 있을까요? 이는 일본과 한국 모두에게 사활적으로 중요한 외교적 사안이지만 아마 일본 정부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내전이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그럼에도 미국이 내전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통계적 사실이 있는 이상, 이에 대해서는 대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은 사고실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일본 미디어는 이런 사항들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습니다. 그런 걸 보도하면 주가가 폭락할 게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수출해서 수익을 보는 기업이나 미국에서 수입재료를 가지고서 제조업을 하는 기업의 주식은 즉각 휴지조각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 경제는 대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정세가 불안정하다'는 뉴스를 될 수 있는 한 보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고방식에도 일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쌀독' 걱정이 우선하여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도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그런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해진다는 얘기입니다. 또 미디어 비판을 하게 되는데, 만약 일본인이 '미국에서의 내전' 뉴스를 듣고서 아무 힘도 못 쓰게 된다면, 그것은 미디어의 책임입니다.
(2026-02-11 09:22)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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