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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있어서의 '최악의 사태'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4. 15. 09:30
중일관계에서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시점은 2015년 12월 하순인데, 책이 나올 때가 되면 시국은 또다시 바뀌어 있으리라.
다카이치 사나에 수상의 '대만 유사 사태 발언'에서 시작된 중일관계의 악화는, 중국 총영사의 폭언, 중국인 관광객 유학생에의 도일 자제, 일본 수산물의 수입 금지, 낮은 단계에서의 경제제재, 공해상에서의 군사적 시위, 항공자위대기에 대한 레이저 조사 등... 의 단계를 거쳐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수상이 발언을 철회하고, 실언을 사죄할 때까지 중국의 대일 압력은 이대로 가압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의 압력에 대해 '패를 던진다'라는 비유가 잘 쓰이는데 실제로는 패를 던진다는 디지털적인 전환이 아니라, '볼륨을 높이는' 것에 가까운 아날로그적인 가압이다. 즉 제재에는 무한한 선택지가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 희토류는 수출 허가가 내려질 때까지 지금까지보다 시간이 더욱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것이 '아날로즈적인 가압'이다. 지연이 1주가 되고, 1개월이 되고, 반년이 되고, 1년이 될 무렵, 일본의 자동차 산업이나 전자 산업 모두 괴멸적인 피해를 받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아날로그적인 가압'에 대해 풍부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중국에서는 치안유지 예산이 궁방예산을 넘은 지 오래다. 즉, 중국 정부는 외적이 침공해 올 리스크보다도, 국내에서의 반정부 운동이 일어날 리스크를 높이 계산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국민 감시 기술이 발달한다. 중국의 국민감시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세계 각지의 독재정권에 '패키지'로 수출되고 있다.
그 가운데 '사회적 신용 시스템'이라는 감시기술이 있다. 국민 전원에게 '사회적 신용 점수'라는 것이 매겨져 있다. 정부의 정책에 찬동하고, 인터넷에 시진핑을 절찬하는 국민은 높은 신용 점수를 얻는다. 반대로, 공산당을 비판한다든가, 문화대혁명, 천안문 가선, 신장 위구르 민족운동을 언급한 국민은 낮은 점수가 부여된다.
낮은 점수라고는 해도 갑자기 체포 투옥 고문 같은 경성 처벌은 받지 않는다. 그저, 외국 여행 신청이 통하지 않는다든가, 호텔이나 열차 예약이 잡히지 않는다든가, 인터넷이 상당히 연결되지 않는 등 기술적인 스트레스가 부가될 따름이다. 연성 고문이다. 하지만, 이 고문으로부터 주체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시진핑을 절찬하고, 인터넷에서 마오쩌둥 전집을 사며, 중국 공산당에 입당신청을 하는 등... 그런 '면종복배'한 행동을 하면 점수가 올라갈 수 있다.
여기에 악마적인 의도가 있다. 달리 중국공산당은 14억 국민이 마음으로부터 독재자에게 복종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니다. '독재자에게 복종하는 척을 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마음으로부터의 충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팽대한 세뇌 비용이 든다. '정책이 위에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고 말하여지듯이, 중국인은 권력자에게 따르기는 하지만, 권력자를 믿지는 않는다. 따라서, '반권력적인 언행을 보이면 처벌받으나, 권력자에게 알랑거리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간단한 구도의 이익유도를 한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건 '중국은 아날로그적인 고문술에 대해서는 역사적 노하우 축적이 있다'는 것이다 ('측천무후 이래'로부터라고 해도 좋다). 일본인은 '비단으로 목이 졸려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앞으로 천천히 맛보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중국의 방식을 '논리적'이라고 SNS에 썼다. 중국의 대일 강경 자세는 달리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포국 내에서의 중국이 갖는 지위를 확보하려는 국가목적에 따라 담담히 다카이치 수상의 발언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일본 정부'나 '일본인 전원'에는 비판의 화살이 향해 있지 않다. '반일감정'에 드라이브된 정치행동이었다면 중국 국내에서 재류 일본인이나 일본 기업에의 물리적인 공격이 시작되었을 법도 한데, 이는 아직 억제되고 있다. 이것은 당장 '표적은 수상 한 명'이기 때문이다. 수상이 실언을 철회하고, 사죄하며, 사직한다면, 그걸로 중국은 물러난다. 그러한 '끝맺음까지의 과정'이 미리 개시되어 있다. 이것을 '논리적'이라고 필자는 쓴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카이치 수상의 방식에는 논리가 없다. 수상의 발언에 대해 정부 여당 내에서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기에, 급히 정부는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이제까지의 그것과 변함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으나, 수상은 의사록에서 발언의 삭제를 거부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다카이치 발언은 '이제까지의 일본의 입장'에서 크게 선회한 것이다. 수상은 '중국이 대만에 무력침공한다면, 일본은 자위대를 파병하여 중국과 싸울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카이치 자신이 이제까지 '이너 서클' 에서 이러한 행세를 통해 위세를 떨치고 만좌의 갈채를 받아왔다는 성공체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 탓에 그만 '이 한 마디로 좌중에게 모두 호평받을 것이 당연한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경솔한 발언이었다. 일국의 총리대신이 국회 답변에서 할 만한 말이 아니었다. '이너 서클'과 공식 석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인간은 총리대신의 그릇이 못된다.
필자가 SNS에서 한 발언을 읽고서. '환보시구'로부터 인터뷰 신청이 왔다. '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의 기관지이다. '인민일보'의 자매지로, 발행부수는 200~300만 부. Global Times라는 영어판도 내고 있다.
필자에게 청탁이 온 것은 '환구시보'의 기자 설명에 따르면 '중국의 대응이 논리적이다'이라고 써 있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수상을 비판하는 언론인은 물론 일본 국내에 많이 있지만, 중국의 논리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중국의 논리'를 알지 못하면 외교 교섭은 해봤자 소용이 없다.
필자는 이러한 경우에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한다. 어느 나라를 상대로 하든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라면 상사로부터 '일본으로부터 빼먹을 때까지 빼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일까지 보고서를 써와라'하고 명령받고 밤을 새워 리포트를 완성한 국무부의 말단 공무원이 되어서 생각한다. 중국의 경우, 역시 외교부의 말단 공무원인 것처럼, '중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리스크가 최소가 될 중일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이 작업을 해보면 알겠지만, 매우 즐겁다. 똑같은 자료여도 입장을 바꿔면 보는 방식도 바꾸니다. 완전히 달라진다. 이때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쳤던 세부적인 의미까지 갑자기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미일 안보 조약을 미국에서 거둬들이는 것'을 일본정부는 '될수 있는 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일 테다.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0이 아니다. 미국은 이미 '세계 질서를 떠받드는 아틀라스' 역할은 하지 않겠다고 얼마 전 트럼프가 선언했다. 다카이치 수상의 대만 유사 발언에 대해 인터뷰를 했을 때도 '동맹국은 친구가 아니다. 그 작자들은 남의 등골을 빼먹을 뿐이다'라고 거칠게 말했다. 그리고, 시진핑은 스마트한 통치자이며, 우리는 좋은 친구사이라며 중국 지도자를 절찬하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이렇듯 중일의 대립 사이에서 트럼프는 일본의 편에 설 생각이 없다.
중국과 미국이라는 'G2' 체제로 세계를 두 개의 세력권으로 분할하여, 미국은 '서반구'를 차지하고, 중국은 '동반구'를 가진다. 이 아이디어는 트럼프의 창견이 아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494년에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어 세네갈 만의 자오선을 따라 새계를 양분할해 각자의 세력권으로 하자고 정한 적이 있다. 트럼프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암다ㅗ '21세게의 토르데시야스 조약'과 같은 것일 테다.
이 구상에서는 일본도 한국도 필리핀도,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동맹국은 중국의 세력권에 들어간다. 그 대가로 트럼프가 중국에 요구하는 것은 미국이 자국의 '텃밭'인 중남미에서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 는 것이다.
지금 트럼프는 베네수엘라를 속국화할 작정이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303억 배럴로, 세계 최대이다. 베네수엘라를 억누르면 이제 중동에 볼일은 없다. 에너지 조달 비용을 단번에 경감할 수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을 다니는 유조선을 위한 안전확보도 필요가 없어진다. 동반구의 재외 미군 기지를 철수하면, 143만 명의 상비군을 대폭 '효율화'할 수 있다.
지금 백악관에서 AI 군비확장 아이디어를 추진하고 있는 것ㅇ느 아마도 일론 머스크와 같은 '테크자이언트'들일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의 전쟁은 인간이 할 필요가 없다, 드론과 로봇과 무인 전투기와 무인 함선이 통상병기에서의 중강도 전쟁을 맡고, 전략적인 레벨에서는 적국의 네트워크를 해킹하여 지휘체계를 혼란시키면, 피를 흘리지 않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길르 트럼프의 옆에서 귓속말해주는 것이 틀림 없다. 병사는 이제 필요 없다. 머신과 오퍼레이터가 있느면 전쟁은 가능하다. 테크 자이언트들이 제시하고 있는 것은 그렇나 새로운 전쟁관이다. 필자가 국방부(지금은 '전쟁부'로 개칭되었지만)의 말단 공무원이 된다면, 이 새로운 전쟁관을 즉시 채택할 것이다. 상비군을 줄이면 인건비를 대폭으로 삭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상비군 삭감은 합중국 헌법을 존중하는 의미이기도 하기 떄문이다.
아시는 분이 많이 않을 줄로 아나, 합중국 헌법은 육군에 대해서는 '상비군을 갖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언론은 이 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알고 있으면서도 숨기는 것인지, 애초에 알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허나, 현실과 헌법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은, 일본국 헌법 9조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합중국 헌법 제 1장 제 8조 12항에 따르면, '육군을 모집하고 유지하는 것'은 연방의회의 권한이지만, 이런 단서가 붙어 있다. '다만, 이 목적을 위한 자금의 충당은, 2년의 기간을 넘지 않는다.' 욱군 유지를 위한 국비의 지출은 단년도 한정이다. '상비군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조항의 제정 과정에 대해서는 해밀턴, 매디슨, 제이의 '연방주의자 논고'에 상세히 쓰여져 있다. 연방주의자들은 강력한 연방정부는 상비군을 가져야 마땅하다는 입장이었으나, 헌법 제정 과정에서 상비군은 '자유의 적'이라는 주권파의 논쟁에 이기지 못하고, 이 타협적인 헌법 조문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해밀턴은 이렇게 쓰고 있다. "헌법안의 조문에서 말하는 상비군을 설치할 수 있다는 추론은 (불가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의문이 많으며, 불확실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연방주의자 논고' 제 8편)
따라서, AI군비 확장에 따르는 육군 상비군의 감축은 트럼프나 헤그세스의 독단 폭주가 아니라, 합중국 헌법의 '바른 해석'에의 회귀인 것이다. 웬걸.
따라서, 앞으로 미국이 미일 안보 조약의 폐기를 통고해 올 가능성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미일 안보 조약은 체결국 한 쪽이 통고하면 일 년 후에 자동적으로 폐기된다. 허나, 일본의 정치가, 공무원, 정치학자 할 것 없이 '미일 안보 조약 폐기 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최악의 사태'인 것이다.
'최악의 사태'는 대만 유사 사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 대만 유사 사태가 일어나도 미국이 '구원'은 커녕 '동아시아의 문제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며 등지고 떠나는, 그러고 나서의 스스로 국방정책을 갖지 않은 일본이 충격을 받은 채 남겨지는 사태를 이르는 것이다.
어째서 '최악'이라고 말하는가, 그 경우, 사람들이 매달릴 곳은 자위대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방에 대해 다소간이라도 실천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은 자위대밖에 없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고 매달려도, 자위대로서도 '우선 헌법 9조를 폐기하고, 국가 예산의 절반 정도를 국방비로 충당하고, 징병제를 실시하고, 치안유지법을 제정하고, 특고를 부활시켜 주십시오. 우선은.' 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다. 참조할 만한 국방전략으로서 일본인은 대일본제국의 그것밖에 알지 못하므로,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일본은 주위의 모든 나라에 불신과 혐오의 눈길을 보내고, 두더쥐같은 무장 국가, 즉 '돈이 있는 북한'이 된다. 그리고, 그때, '이거, 어쩌면 우리들이 이상으로 삼던 국가 아니겠어' 하고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는 국민이 다수를 점하는..., 그런 것이 필자가 상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인 것이다. ('한 권의 책, 2025년 12월 31일)
(2026-02-02 09:07)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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