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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연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4. 9. 11:19
한국의 문화일보라는 신문기자들이 취재를 하러 왔다. '한일 연대'의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양국의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만약 이루어진다면 어디부터 시작해야 될까?' 하는 게 첫 질문이었다.
한일연대 똑 하나만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본 단위는 '한미일' 이렇게 삼국 관계다. 변수가 셋 있으니만큼 산식도 골치아파진다. 골치가 아파지면 지성을 활발히 작용시켜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마땅하건만, 게으른 자는 변수를 지우고, 이야기를 간단히 함으로써 지적 부하를 경감하려 한다. 적어도 일본인은 이 문제에 대해 '나무늘보로 남는 숙명'을 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이 엮이는 순간에 외교와 관련한 사고정지에 빠지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존재는 일본인의 머릿속에 '정수'로 박혀 있으며, 결코 변수로 다뤄지는 일이 없다. '미일 동맹 기축'이란, 미국의 정책이 아무리 바뀌어도 일본은 항상 거기에 추수한다는 의미이다. 미국은 '일본이 이래라저래라 결정하는 종주국'이라는 '정수'적 지위로 옮겨준 적이 없다. 그렇게 설정해 두면 변수가 하나 줄어들고, 지적 부하는 경감한다. 그러한 사고정지에 전후 80년 동안 일본인은 줄곧 익숙해져왔다.
하지만 지금 한미일 관계는 바뀌고 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더이상 세계질서를 제정하고 관리할만한 힘이 없다. 미국의 분단과 그 국력의 쇠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쇠퇴밖에는 갈 길이 없다. 미국 외교 전문지를 보면 그것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전월호 특집은 '포스트 미국 시대의 세계질서'였는데, 이번달은 '서구의 종언'이다.
미국의 최대 라이벌은 중국이지만 미국은 미중전쟁에서 싸울 의사와 능력이 없다. 재래무기로 싸우면 패배한다는 시뮬레이션이 나온 2017년 이후로 그 결론이 변하지 않았다. 핵전쟁의 경우 중국에 이기지만, 중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대가로,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가 소멸한다. 그런 불리한 흥정을 할 생각이 미국에는 없다. 허나,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을 억제하고는 싶다. 따라서, 한일에 그 역할을 떠넘길 작정이다. 미국은 괌, 하와이까지 물러나고 한일에 중국 억제의 임무를 맡긴다. 후방 지원은 하지만, 직접 발을 들이지는 않는다.
대중국 전선에 서게 된 한일은 미국이라는 변수가 사라져, 한일 병합 이래 처음으로 각자 나라의 입장에서 '안전 보장 구상'을 서로 말해야 할 상황을 맞이한다. 이제까지 미국은 한일이 '전쟁하지는 않을 정도로 유화적으로, 동맹하지는 않을 정도로 적대적'인 상태를 유지케 함으로써 최대의 이익을 구가해 왔다. '분단하여 통치하라'는 식민지주의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 종주국이 철수하면, '한일 동맹'의 분위기가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인종, 종교, 정치체제, 지정학적 지위, 가족제도, 감정생활에 있어서 한일만큼 닮은 나라는 달리 없다. 동맹을 맺겠거든 이 이웃나라밖에 없다. 이 사항을 한국민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인은 알고 있지 않다. '한일 동맹'이라는 말을 머릿속에 그리는 습관이 없기 때문이다.
허나, 메이지 시대 일본의 활동가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조일 연대'라는 아이디어를 축으로 사량하고, 행동했다.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한 우치다 료헤이, 『대동합방론』을 쓴 다루이 도키치, '봉황의 나라'를 기획한 곤도 세이쿄등 다 꼽을 수조차 없다. 한일이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가, 우리는 한일 병합 이래 백 년 이상 방기해 온 물음에 지금 직면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주간금요일 2025년 11월 11일)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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