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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창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4. 3. 17:09
요즘은 어디에 가든 AI가 화제가 된다. 대학 학생들은 학생이 AI로 졸업논문이나 리포트를 쓰는 경우에 이를 어떻게 채점해야 하느냐 하는 난문에 직면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냐고 몰어와도 필자에게 신통한 생각은 없다. 교사측에서 유일하게 믿을 만한 구석은 ‘이 학생이 이런 걸 썼을 리가 없다’는 주관적 인상만인데, 이걸 근거로 낙제시킬 수는 없다. 복사 붙여넣기 한 졸업논문은 출처가 밝혀지면 ‘도용’을 지적받으나, AI가 쓴 논문은 누가 쓴 것의 ‘도용’이 아니다. 원본이다. 아마 금년도에 제출되는 졸업논문 80%는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AI가 일부 또는 전부를 쓴 것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리포트나 논문을 숙제로 내는 것 자체가 교육활동으로서 불가능하게 된다. 학생들을 교실에 가둬놓고, 종이와 연필만 주고 답안을 쓰게 하는 수밖에 없다.
소설도 이제 AI가 쓴 것과 인간이 쓴 것 사이의 구별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여러 문학상의 심사를 맡는 다카하시 겐이치로 씨에게서도 들었다. “그게 말야. AI가 쓴 게 재밌단 말야.” 하고 다카하시 씨는 난처해했다.
독자는 읽기에 재미있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작가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필자가 지금 쓰고 있는 문장은 AI가 간단히 쓸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과연 있을 것인가의 여부다.
언젠가 만화나 애니메이션, 사진 업계에서도 AI가 대신 작품을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이미 시작되었다). 허나, 영화는 어떨까? 이건 AI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단일한 ‘오서[author]’가 없기 때문이다. 프로듀서, 감독, 시나리오 작가, 배우, 음악가, 미술가, 의상 디자이너 등등이 각자 고유한 생각을 작품에 가탁한다. (원문은 假託. 스태프 각자가 괜히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섞어서 영화 요소로 넣는다는 말씀인 듯 - 옮긴이) 그 탓에 영화에는 복수적 요소가 엮인 수수께끼의 것으로 완성된다. 이야기의 질서 세우기, 진행, 종지부로 이끄는 힘에 저항하여, 질서를 뒤엎고, 이산시키는 ‘반-이야기’의 힘이 작동하여 그것이 관객의 해석에 저항한다. 목구멍을 찌르는 작은 뼈와 같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세부적인 사항*을 롤랑 바르트는 ‘영화적인 것’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AI가 “재생”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어떨까?
(2026-01-17 08:20)
(* 이를테면 홈 드라마를 많이 찍은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컷에는 뜬금없이 집안에 빨간색 주전자가 소도구로 여기저기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 옮긴이)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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