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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직한 무도가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3. 31. 11:23

    어떤 매체에 기고를 의뢰받아도 좋을 대로 쓴다. 강연을 의뢰받아도 좋을 대로 이야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화를 낼 사람도 있겠지만 (있다는 건 아니다), 마음에도 없는 걸 말할 수는 없다.

     

    딱히 내가 온 생애동안 ‘정직한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젊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했고 사람을 속이며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직하게 살자’고 뜻을 굳혔다. 30세 쯤 무렵이었다. 연구자로서 살기로 뜻을 다졌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거짓말하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 아니, 전언철회한다. 거짓말하는 연구자도 드물게 있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척 한다든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든지, 자기 자신의 사견을 ‘다들 아는 바와 같이’ 하고 가장한다든지 하면, 어느샌가 연구자로서 살아갈 동기를 잃게 된다.


    내 생각에 연구자란 ‘모르는 것’을 알기를 원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만나서 마음이 떨리며, 사견을 전하기 위해 길 가는 사람의 옷깃을 붙들고 ’부탁이니까 알아주길 바라‘라고 하는 인간이다. 나 혼자서 그리 생각하는 것일 뿐, 일반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사실이다. 어쨌든 될 수 있는 한 정직한 인간이 되려고 힘써왔다.


    정직한 인간은 ’이에 맞지 않는 것‘을 만나면 ’알람‘이 명동한다. ‘이에 맞지 않는 것’이라 함은, 만났던 것 그 자체가 뭔가 부족하고 부조리한 경우가 있으며, 나 자신의 지적 프레임이 작아서 그 대상의 커다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만약 후자라면, 필자의 지적 프레임틀 일단 해체하고서,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라는 것은 그런 작업을 계속 반복하며 살아가는 생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이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한 감수성을 될 수 있는 한 높여서 설정하려고 한다. 누구보다도 먼저 ‘이에 맞지 않는 것’에 감응하는 것이 연구자의 책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탄광의 카나리아’는 갱도에 가스가 발생하면 가장 처음 죽는다. 그렇다 함은, 연구자는 세상의 독이 충만해지기 시작하는 때에 ‘가장 먼저 죽어 보이는’ 것이 본무라는 게 된다.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일본 사회의 공기가 더럽혀져 있다.

     

    하지만 필자는 연구자인 동시에 무도가이다. 무도가의 경우는 ‘어지간하면 죽지 않는다’가 장점이다. 야규 무네노리는 ‘병법가 전서’에서 ‘좌를 보는 마음 기를 보는 마음’의 중요함에 대해 설하고 있다.


    “모든 장면에서 모든 것의 병법은 기를 보는 마음이다. 기를 보지 않으면 있으면 안되는 곳에 오래 머물고, 엉뚱한 짓을 하고, 사람의 기를 보지 않고 행동을 하고  말다툼을 하여 몸을 상케 하는 일, 이 모든 것은 기를 보는가 보지 않는가에 달려 있다.”

     

    없어도 되는 자리에 오래 있는 탓에 틀린 말을 한다든지,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입에 담아 논쟁을 일으켜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을 무네노리는 간하고 있다. 무도가는 공기가 더럽혀진 곳에는 가까이 하지 않는다. 애초에 ‘볼일이 없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는 게 무사의 마음가짐이다.

     

    필자처럼 이런 칼럼을 통해 말 안해도 될 것을 말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한 소업으로 인해 ‘카나리아가 되어 죽는’ 그런 일은 무도가로서 길을 벗어난 행위이다. 그럼 정직하게 살 것인가, 몸을 다칠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것인가. 잘 모르겠다. 어쩔 수가 없으므로 당면상 ‘정직한 무도가’라는 상당히 앉은 자리 불편한 그런 삶의 방식을 계속할 작정이다.

    (주간금요일, 12월 10일)

     

    (2025-12-24 07:44)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오길비: 정말이지 입 바른 사람이 먼저 죽는 그런 시대가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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