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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심에 대하여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3. 30. 17:40
‘잔심’이라는 것의 뜻을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초심자 무렵에는 어째서 상대와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 자신의 가타[체술]를 다듬어 둘 필요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설마 그저 위협적으로 보이려고 그러려는 것은 아니겠거니 했는데, 어느 선배가 ‘와자를 끝냈을 때에도 사방팔방에 적이 있으므로 바로 다음 움직임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안정된 몸의 구조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라고 배웠다. 과연. 그렇게 수련을 계속했는데, 문인을 지도할 때, 잘 보면 와자 하나 하나에 ‘잔심’을 신경 쓰는 자와, ‘잔심’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속속 와자를 거는 자는, 와자의 ‘싹’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그 무렵, 럭비 전 일본 대표 윙이었던 히라오 쓰요시 씨와 대담할 기회가 있어서, 그때 히라오 씨로부터 ‘볼을 받고 달릴 때, 디펜스를 피하고 터치라인을 넘으려고 하면, 터치라인이 ‘오면 안 된다’고 살짝 돌려보내는 겁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에는 물리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최고의 운동선수는 체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은 강한 힘을 가진다. 신사의 내진과 외진을 나누는 경계선을 넘을 때, 공간의 질감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경선은 인위적인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곳을 부주의하게 넘으려고 하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다. 다양한 구기종목은 우선 선을 긋고서 ‘페어(아름다운 공간)’와 ‘파울(추한 공간)’을 나누어 놓는데서 시작한다. 그렇게 해야만 시작이 된다. ‘선에는 강한 힘이 있다’는 게 태고부터의 경험지인 것이다.
무도에서 말하는 ‘잔심’은 자신과 상대를 엮는 정중선에 베는 ‘하스지’를 맞추는 것이라는 점이 현심점에서의 필자의 해석이다. 정중선에는 장을 다스리는 힘이 있다. 장에 고유한 기의 흐름, 힘의 흐름을 이 선에 의해 다듬는다. 그것이 무도적인 의미에서 ‘장을 주재한다’는 것이라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잠정적인 해석이지만, 잠시동안은 이로써 수련을 계속할 작정이다.
(「월간 무도」 12월호 2025년 12월 12일)
(2025-12-24 07:42)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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