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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로 선생과의 대담책을 위한 서문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3. 29. 20:52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다쓰루입니다.

     

    요로 선생과의 대담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요로 선생과의 대담책은 『물구나무 일본론』(신초샤, 2007) 이래 두 권째입니다. 두 책 사이에 18년이라는 공백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도 요로 선생과는 정기적으로 만나 뵙고, 이런저런 화제를 가지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선생과 농업을 주제로 한 대담은 『농업을 주식회사화하겠다는 무리 앞으로의 농업론』(이에노히카리 협회, 2018)이라는 앤솔러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요로 선생께는 일 년에 한 번 연회를 하는 습관이 있는데, 20년도 훨씬 전부터 시작된 행사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처음 불러 주셔서 갔을 때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고서 이게 대체 무슨 모임이지 하고 호기심이 솟았습니다. 그때 왔던 사람들은 제 (신뢰성은 그다지 없는) 기억에 따르면 신초샤 담당 편집자들과 요로 선생님의 무시야동료들, 그리고 이케다 기요히코, 모테기 겐이치로, 우에시마 케이지, 나코시 야스후미, 고노 요시노리로 떠오르는 분들이었습니다. 옆에 앉으신 요로 선생께 이 분들, 선생님, 어떤 기준으로 고르신 겁니까?” 하고 상당히 당돌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요로 선생은 파안대소하시며, “다들 야만인이라서 그런 걸거예요라고 대꾸하셨습니다. 옳다구나.

     

    요로 선생이 야만인이라고 부른 건, 아마도 될 수 있는 한 자기가 갖고 있는 자원으로 목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의미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유형의 인간이 아닌가 합니다. 다 만들어진 기성의 논리와 학설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손에 가진 자원만으로 사는 인간을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브리콜뢰르라고 불렀습니다. Bricoleur란 프랑스어로 일요 목공또는 재능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때그때 있는 소재와 몇 안 되는 도구로 뭔가 해내는 사람입니다. 집에 있는 널빤지와 목공 도구만으로 가구를 고친다든가, 차고에 잇는 도구와 부품만으로 자동차 수리를 하는 해내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그겁니다.

     

    브리콜뢰르는 그의 도구적 자원을 어떻게 모으는가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는 무척 흥미로운 내용을 썼습니다. 계획적으로 모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가 손에 든 자원은 그 잠재적 가능성에 따라서만 규정된다. 즉, 브리콜뢰르들 자신들의 말을 빌리면, 그런 소재들은 ‘조만간 무엇에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ça peut toujours server)’라는 원칙에 따라 수집되고 보존되는 것이다.” (『야생의 사고』)

     

     

    브리콜뢰르가 자신에게 소용될 자기가 가진 도구를 만들 때는 직감을 활용합니다. 걷고 있자면 무언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거 조만간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면 등에 지고 있는 더플백에다 던져넣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소지품을 형성해 나갑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놓고 야생의 사고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요로 선생이 야만인이라고 부른 건 이러한 야생의 사고를 하는 사람을 이르는 게 아닐까 합니다. 거기다 제가 슬쩍 매년 한 번씩 요로 선생님에게 대접받는 모임야만인의 모임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매년 갈 때마다 새로운 멤버가 끼게 되어 미나미 신보, 가토 노리히로, 시마다 마사히코, 야마자키 마리등 다양한 분들을 지인으로 삼아 뻐길 수 있었습니다.*

    (* 영어로 Name dropping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문 辱知のを賜는 아마 인터넷 검색만으로만 비추어 보면, 일본에서 우치다 선생님만 쓰시는 말씀인 듯하다. 이런 어휘가 몇 개 있다. 제가 발견한 한 3. Traumatiser도 뜻을 찾느라고 혼났다. – 옮긴이)

     

    요로 선생의 야만인선택 기준에 들었다 함은 무슨 권위를 등에 업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전원이 고유명으로 발언하는 것이지 무슨 학파라든가 당파, 종파에도 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 요로 선생이 사람을 볼 때 가장 중시하는 건 권위를 등에 업지 않은 것’ ‘당파에 속하지 않은 것’ ‘자신의 말로 말하는 사람’ ‘원리와 교의를 말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었던가 합니다. 만약 제가 그 기준을 통화해서 야만인의 모임에 뽑힌 거라면 대단히 영광입니다.

     

    책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이 대담을 할 적에 더플백에서 꺼내놓은 것은 소설, 영화, 음악 등등등등* 참으로 잡다한 소재였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언젠가 어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억의 저장고에 모아놓았던 것입니다. 이를 요로 선생과 말씀을 나눌 때 그러고 보니 이런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하고 의견을 개진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원문 などなどなどなど 옮긴이)

     

    위와 같은 That reminde me of a story*(그러고 보니 이런 얘기가 떠올랐다), 정말 중요한 지성의 작용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저자의 의도를 존중해 그대로 살립니다. … 옛날에는 영어에도 어휘에 성구별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Remind가 여성형으로 굴절된 활용태가 진짜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옮긴이)

     

    이때 떠올린 건 개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a story)’입니다. 하나로 딱 정리된 이야기를 떠올려냅니다. 어떤 주제를 말하는 한중간에,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무언가에 닿은 순간, 다른 계역이나 개별 층위로 점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제가 대화에서 끌어낼 수 있는 최대의 유열인데, 점프에 호응해주는 상대와 대화할 때 말고는 얻을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가끔 있습니다. ‘잡담은 그만 두고 이쯤에서 본래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하고 슬픈 말을 하는 사람이). 요로 선생 당신께서 이야기가 술술 점프하는 분이므로, 이 대담에서는 두 사람끼리 상대의 대화 속 사사건건 저 어디 다른 곳으로 이야기가 용약해버립니다. ‘화두가 전전하여 진진묘묘*‘야말로 대담의 참맛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즐거이 받아들여주시기를 바라마지않겠습니다.

    (* 아마도 우치다 선생님이 만드신 말, 원문 奇を究め. “진진묘묘라는 말은 졸생이 누군가를 표절해서 만든 말 옮긴이)



    마지막으로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아주 고생을 하셨습니다, 몇 번이나 귀중한 시간을 내어서 현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요로 선생의 하해와 같은 온정에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요로 선생과의 이 대담을 기획해 주신 카도카와의 오가와 가즈히사 씨가 해주신 수고와 배려에도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책이 만들어졌습니다.

     

    2025 12

    우치다 다쓰루

     

     

    저자 소개: 우치다 다쓰루 아이키도 가이후칸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원문

     

    오길비: 상술된 사고방식을 한다는 게 겉으로 봤을때는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한 오의를 가지고 있어서 수련하기 대단히 어렵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묘하게 번역하느라 애먹었습니다. 아직 이런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지겠지만요. (그런 기준을 대지 말라고 바보야!) 뭐랄까 공감각이라든가 그런 거 아닐까요.

     

    한가지 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이 원고를 볼 때마다 자꾸 이 노래가 생각나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