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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식량정책에 관해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3. 28. 09:54

    일본의 식량정책에 관해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의뢰받았다.

     

    필자는 프랑스 철학과 문학 연주 그리고 무도를 전문으로 하는 인간으로, 농업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도쇠에서 살았으니, 흙을 만질 기회가 없었던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간에게 농업이나 식량에 대한 기고의뢰가 이어진다. 그건 아마 필자가 농업의 전문가가 결코 말하지 않을 것만을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농업에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럴 것이다).

     

    필자는 농업을 다시 한번 일본의 기간산업으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 걸 주장하는 사람이 확실히 달리 없을 것이다. 그저,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게, 여기서 말하는 기간산업이란 경제통계적인 의미에서의 기간적이 아니다. 그 위에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것이다.

     

    지금 농업이 일본의 GDP 전체에 점하는 비율은 1%이다. 농업 종사자는 111만 명. 전년 대비 5만 명 감소. 평균 연령 69.2세로 고령화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젊은 사람들의 조직적인 참입이 없다면, 머지 않아 일본에서 농업이라는 산업 분야 그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것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일본의 식량 자급률은 38%(도쿄대 스즈키 교수에 의하면 실제로는 10퍼센트도 안 된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의 수치를 살펴보면 캐나다 204%, 프랑스 121%, 미국 104%, 독일 83%, 영국 58%, 중국 70%, 한국 44%.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서도 압도적으로 낮다. 국토가 비옥하고, 강우량이 많고, 식물상과 동물상이 다양한, 지극히 농업에 적합한 풍토라는 덕택을 입은 일본이 예외적으로 식량 자급률이 낮은 건 어떤 이유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일본의 농업 정책이 정치가 아닌 경제에 휘둘려 결정되기 떄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경제란 비즈니스를 말한다. 속된 말로 그게 돈이 되냐?’ 라는 도량형으로 세상 만사의 가치를 고량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이른다.

     

    필자는 특별히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게 돈이 되냐?’는 물음은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가치의 도량형으로 유효하다. 필자가 지금 쓰고 있는 이런 문장조차 돈을 내서라도 읽고 싶은 글돈을 내면서까지는 읽고 싶지 않은 글사이에 상당한 질적인 차이가 있다. 도량형을 덧댐으로써 우리는 안 읽어도 상관 없는 글내지는 읽으면 유해한 글을 시야에서 배제하여, 정신적 부담을 경감하고 있다.

     

    시장에서 붙여진 가격과, 그 상품이 가진 고유의 가치 사이에는 일정한 상관이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경제학의 기초를 말할 것까지도 없지만, 이 가치에는 사용가치교환가치가 있다. 보트가 물에 뜬다는 속성에서 비롯된 사용 가치자체는 전 세계 어디든 어떤 시대에도 변함이 없으나, ‘여름이 끝나고 난 뒤의 쇼난* 해안타이타닉 호 침몰 직전과는 교환가치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시장이 문제삼는 것은 교환가치뿐인 것이다.

    (* 수도권에 가까우면서 해수욕을 즐기기 좋은 명소. – 옮긴이)

     

    식량의 사용가치는 누구든지 안다. 우리는 그것을 먹음으로써 살고 있다. 없으면 죽는다.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끊긴다면 쟁탈전이 시작되고 서로 죽고 죽이며 그 사이에 전원이 아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량의 교환가치는 시장에 의해 수급관계과 정해진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고,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올라간다. 그 점에서 식량은 다른 상품 (자동차, 양복, 휴대전화 등) 과 똑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분명히 교환가치만을 보면 식량과 다른 상품은 마치 똑같은 것처럼 시장 원리에 따른다. 하지만 설령 자동차, 양복, 휴대전화가 공급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어도 우리는 그걸로 죽지는 않는다. 그저 불편해질 뿐이다. 쿠바는 1960년부터 계속 미국에 의해 금수조치가 내려졌는데, 지금도 1950년대 미국 차가 수리를 거치며 쓰여지고 있다. 자동차 수입 같은 건 끊어진대도 불편하다는 불평 선에서 끝난다. 하지만 식량 수입이 멈추면, 우리는 아사한다.

     

    식량의 가치는 교환가치로밖에 고량할 수 없는 인간 (즉 식량 문제를 전부 시장 가격만으로 논하는 사람)은 교환이라는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식량 정책은 완전히 경제를 주축으로 결정되고 있다. 이런저런 상품과 저비스의 존부는 그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치우친 시점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의료, 교육,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정책 결정자는 돈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가, 나쁜가하는 비즈니스 용어로밖에는 말하지 않는다.

     

    필자는 오랫동안 대학에서 가르쳐 왔기에 그 점을 가슴 깊이 알고 있다. 정부가 대학에 늘상 말하는 게 교환가치가 높은 학생을 키워라하는 것이다. 오로지 그것만이 목적이다. 그것을 그들은 실전성이라고 부른다. , 아무리 임금이 낮아도 불평하지 않고, 야근이나 휴일 출근도 마다하지 않고, 영어를 하고 IT에 강하며, 임명장 한 장만으로 내일부터 해외 부임을 명 받아도 유유낙낙 받아들이는 값싸고 써먹기 좋은 노동자를 대량 양산해 내보내라고 사실상 명령하고 있다. ‘똑같은 능력을 갖춘 구직자가 구인 수의 몇 배나 들이닥치게 되면, 능력이 높은 노동자를 싼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다 (‘너 말고 일할 사람 많이 있다는 고용주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은 19세기 영국이나 지금 일본이나 다를 게 없다).

     

    우리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지성적, 감성적으로 성숙하기를 요망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책임질 성숙한 시민을 기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여깁니다. 따라서, 성숙을 하려는 젊은이들은 반드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인생의 목표라는 단순한 꿈을 갖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학생들을 관찰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의료, 교욱, 사법 등 그것이 없으면 집단이 굴러가지 않는 것에의 지향은 학생의 성숙도와 상관합니다. 성숙한 학생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배려하는 정도로 (혹은 그 이상으로) ‘이 사회에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똑같이 사량합니다. 그런 학생들은 돈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보다도 세상에 보탬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를 따집니다. 자신이 택할 직업의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를 더 봅니다. 하루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계속 두드리는 단타 투자자가 일 년에 수 억원을 번다 해도, 카메라 앞에 앉아 줄창 얘기하는 유튜버가 수 백만 팔로워를 거느린다 하더라도, 그들이 설령 사라질지언정 아무도 불편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들은 자동차, 양복, 휴대전화와 다를 바 없습니다. 교환가치는 높지만, 사용가치는 제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의료자, 교육자, 법조, 종교자는 사라지면 단적으로 힘듭니다. ‘집단이 존립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아웃소스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마련할 수밖에 없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 메이지 정부는 일본어로 고등 교육이 가능한 기관을 설립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식민지가 될 위험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일본의 위정자는 고등교육을 영어로 해라’ ‘질 높은 교육을 방으려면 해외로 가라고 명령합니다(사실, 자민당의 세습의원들은 거의 전부 최종 학력이 미국 대학이거나 대학원입니다). 교육을 아웃소스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게 교육 예산의 비용 대비 효과가 좋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일본의 식량정책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치가 뭔지를 잘 모릅니다. 집단이 존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급자족이 원칙이라는 기본적인 사항을 알지 못합니다. 농업은 자급자족이 원칙입니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다는 발상은 비즈니스맨의 것입니다. 이 단견 때문에 코로나 유행 당시 미국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마스크나 방호복같은 의료품의 재고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여차하면 시장에서 조달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이치를 코로나로부터 우리가 배우지 않았습니까?

     

    농업을 다시금 일본의 기간산업으로. 이는 시장이 결코 들이밀지 않는 요구입니다. 따라서, 정치가 그 요청을 해야만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력으로 조달하는 것. 식량의 본질은 그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에 있습니다. 이런 간단한 것을 이날 이때까지 줄기차게 말해야 한다니 그 처지가 진심으로 한심한 것입니다.

     

     

    (2025-12-07 09:55)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오길비: 선생님의 교육론, 눈물을 금할 길 없습니다만, 되돌아보면, 대학 공동체에는, 세간의 가치관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일정 수 있다고도 할수 있습니다. 미션스쿨(교목이 많다는 뜻)을 나와서 더욱 그렇게 느낀 것 같네요. 연구와는 거리가 먼 실용 전공이었거든요. 취업을 미끼로 가스라이팅하는 교수도 있더이다. 제가 미치지 않고 개운하게 졸업한 건 다 교목님들 덕입니다.

     

    그리고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고 큰소리 치는 고용주는 사실… (심리적이든 뭐든)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거에 가깝다는 사실을 수많은 사직 경험으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