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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시보’의 질문에 대한 답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3. 27. 14:50
일본 다카이치 수상의 발언에 대해 중국 ‘환구시보’가 내게 논평을 요청했다. 필자가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올린 적이 있다. ‘중국의 대응은 논리적이다. 중국의 대응에 일본이 감정적으로 반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보고 환구시보 측에서 요청을 해왔다.
‘환구시보’는 중국공산당의 기관지이다. 이 곳에다 ‘다카이치 수상은 발언을 철회하라. 다카이치 수상의 사죄와 사퇴를 촉구한다’고 일본인으로서 기고하는 일에는 이득과 손실이 둘 다 있다.
이득은 중국에 있는 상당 수의 독자에게 양국의 관계 정상화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희구하는 필자의 의견을 직접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실은 중국공산당 입장에서 일본을 비판하는데 무기로 전용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일본 국내의 넷우익들에게 ‘중국 스파이’라고 매도당하는 것이다(이건 확실하다).
어느 행동이든 이점과 손해가 둘 다 있는 법이나 이번 기고 의뢰는 ‘손실보다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필자의 기사가 양국의 긴장 완화에 보탬이 된다면 그 이익의 수혜자는 일본과 중국의 국민들이다. 필자가 아래와 같은 글을 남김으로써 필자가 이용당한다든지 매도당하는 경우, 그걸로 손실을 입는 건 필자 단 한명이다. 이득을 향유하는 것이 집단이고, 위험성을 짊어지는 게 개인일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해야 하는 자리에서, 구태여 계량적 지성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다짐을 한 결과, 상당히 긴 글을 기고하게 되었다. 기자에게 필자의 진의를 전하기 위해 보충 설명적인 정보를 써넣다 보니 길어진 것이다. 그래서, ‘기사로 내보낼 때 “우치다의 진의가 전해졌다”고 기자님이 판단하셨다면, 아무리 줄여도 상관없습니다’라고 말씀해 두었다.
질문 1:
우치다 님의 SNS를 보면 다카이치 사나에 수상에 대한 반대 자세를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댓글란에도 많은 일본 국민 역시 다카이치 수상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우치다 님 스스로 다카이치 수상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카이치 수상의 언동에 대해 필자는 이제까지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녀의 정치적 발언은 정형적이고 범용한 것이며, 특단의 흥미를 끌 만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상이 된 이상 그 언동이 즉각 일본의 국익에 영향을 주는 이상, 눈을 떼서는 안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을 맞아 이상할 정도의 ‘교태’를 보인 데 대해 저는 강한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번 존립 위기 사태와 관련된 다카이치 수상의 국회 답변은 ‘나와는 생각이 다르다’라든가 ‘불쾌함을 느낀다’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는 일본의 안전 보장의 근간에 관련된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될 발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국 헌법 제9조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의 발동인 무력과, 이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을 행사하기를 영구히 포기한다. /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아니한다.” 고 정해 놓았습니다. 평화주의를 내건, 이상적인 헌법 조항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서 냉전 시대에 미국의 강한 요청에 따라 일본은 구소련을 가상 적국으로 한 ‘반공의 반석’의 일각을 형성하기 위해 재군비화했습니다. 이 재군비화는 일본 정부가 주체적으로 바랐던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속국’으로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방침이 바뀐 건 제2차 아베 정권 때입니다. 2015년에 이른바 ‘안보법제’가 국민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채택되었습니다(저 자신도 국회 앞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법제에 따라 헌법 9조가 내걸었던 평화주의는 공동화되고,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가능하게 된 새로운 규칙이 채택되었습니다.
아베 신조 수상은 일본이 ‘전쟁 가능 국가’가 되기를 너무나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에 적지 않은 수의 일본인이 공감을 표했다는 데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경제력으로도, 문화적 발신력으로도, 국제 사회에서의 존재감을 잃어 가는 ‘초조함’이 ‘군사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선택지를 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보법제에 의하면 자위대 출동이 가능해지는 조건은 “우리나라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한 경우, 또는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하여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존립이 위협받아 국민의 생명, 자유 또는 행복 추구의 권리가 밑바닥부터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나라”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두 말 않고 미국을 이릅니다.
존립 위기 사태라고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대해 역대 정부는 몇 가지 예시를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호르무즈 해협이 기뢰로 봉쇄되어 일본으로 향하는 유조선이 다니지 못하게 되는 경우
(2) 북한이 한국이나 미국을 공격한 경우
(3) 분쟁 지역에서 자국민[일본인] 보호 활동을 하고 있는 미군이 공격받는 경우
(4) 미국 본토를 표적으로 하는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경우.
이제까지 정부는 존립위기 사태의 구체 사례로서 대만 유사 사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는 미국의 이른바 ‘전략적 애매함’ 정책에 따른 것입니다. 미국은 예를들어 중국이 대만에 군사공격할 경우에 대만을 지키기 위해 군을 출동시킬 것인가, 하지 않을까를 ‘분명히 하지 않는’ 형식으로 중국을 견제해 왔습니다.
미국과 대만 사이에는 국교가 없습니다. 대사관을 설치하지 않았거니와, 동맹 관계도 아닙니다. ‘대만관계법’ (Taiwan Relations Act)라는 게 있습니다. 이는 미중 국교 정상화에 따른 대만과의 국교 단절에 따라 그 이후의 대만과의 관계를 정한 국내법입니다. 이 법 제2조에 “대만에 대한 무력 공력이나 협박은 미국에 있어서 심각한 우려 사항이다”라는 문언이 있습니다. 이것이 ‘전략적 애매함’의 법적 근거로 설정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다카이치 수상은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애매함’을 무시하고서, 어떠한 경우에 자위대와 인민해방군이 전투상태에 돌입하는가에 대한 조건을 명시해 버렸습니다. 당연히, 미국은 이 발언을 상당히 불쾌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발언에 대해 발한 촌평은 ‘동맹국의 다수는 미국의 친구가 아니다’ 하는 차가운 대접이었습니다. 짧게 말해서 ‘일본은 동맹국이지만 친구가 아니다. 따라서 다카이치 발언 때문에 일본이 중국과 관계가 악화되더라도 미국은 일본 측에 서지 않으며, 양국을 조정할 생각도 없다’는 의미였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중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카이치 수상에 대한 ‘질책’이라고 풀이해도 좋을 촌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1972년 중일 공동 성명에 의거해 일본 정부는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 소속 영토의 불가분한 일부’이라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언명했습니다. 그냥 읽어 보면, 만에 하나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여 중국이 이를 ‘반란’으로 간주해 ‘진압’하기로 한 경우에도 일본 정부는 이를 ‘국가간 전쟁’이 아닌 ‘내전’으로 간주하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카이치 수상의 대만유사사태 해석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만과 중국 사이에 무언가 심대한 문제가 일어난 경우에도 그것은 법리적으로는 ‘내정 문제’이며, 다른 나라가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대만에서는 2340만 명의 시민이 자력으로 획득한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유와 권리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며, 이를 위해서라도 ‘반란’이나 ‘진압’같은 심각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만,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 경우에도, 그밖의 모든 나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국제 기관을 통한 조정 시도와 인도적 지원까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위대의 무력 개입은 사태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며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양국의 전면 전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악수’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미국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861년에 남부 11개 주가 미합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 링컨 대통령은 이를 ‘반란’으로 간주하여, ‘진압’하였습니다. 남부 11개 주는 ‘미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참칭하여 헌법과 국기, 국가를 가졌지만 모든 다른 나라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으며 남부의 멸망을 좌시했습니다.
만약 미국이 대만 유사 사태에 군사 개입을 하려 한다면 (다카이치 수상은 이를 ‘높은 가능성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 보입니다만) 그것은 ‘남부 11개 주의 독립은 합법적이며, 링컨의 진압은 부적절했다’는 식으로 자국 역사를 바꿔 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미국민이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미국의 ‘전략적 애매함’은 사실 ‘미국도 대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첫 질문부터 답변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하신 질문은 ‘제가 다카이치 수상에 반대하는 이유’입니다만, 위에서 쓴 바와 같이, 저는 다카이치 수상의 국회 답변에 대해 그것이 일본 정부 종래의 방침에 반한다는 것, 국제 사회의 어느 나라도 이 발언을 지지하지 않는 것,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켜 외교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일본 국민에 다대한 손해를 안겨준다는 것, 그리고 중국 정부와 중국 국민 가운데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에 대한 불신감을 심어준다는 것을 근거로, 발언을 즉시 철회하고 이제까지 일본 정부가 지켜 왔던 외교적 절도를 파괴한 것에 대해 중국과 중국 국민에게 사죄하고, 그 책임을 지고 총리대신직을 사임할 것을 요구합니다.
질문 2:
현재 일본 SNS 상에서는 ‘다카이치 발언에 대해 중국측은 “과잉 반응”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국의 반응이 과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중국의 반응을 과잉반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발언 직후에 쉐지안 주 오사카 총영사의 “갑자기 들이민 더러운 목을 한순간의 주저 없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트위터 글이 감정적이었는지, 아니면 계산된 것이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글이 ‘다카이치 발언은 의심의 여지없이 외교 문제이다’ 하는 점을 나라 안팎에 알린 점은 확실합니다. 만약 이것이 ‘다카이치 수상에게 신중한 태도를 촉구한다’는 정도의 온건한 것이었다면 일본 정부나 일본 국민도 사태의 중대함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수상의 국회 답변 직후에 수상으로부터 예기치 않은 답변을 이끌어낸 오카다 의원 자신도 ‘이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 바로 화제를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화제를 바꾸면 아마 외교 문제로 비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랬겠지요. 국회 중계 화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만, 다카이치 발언이 있었던 때, 뒤에 앉아 있던 모테기 외무상과 하야시 총무상은 얼굴을 들고 있지조차 않습니다. 아마 ‘아, 다카이치 총리는 또 항상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정도로 흘려 넘겨버렸기에 그런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쉐지안 총영사의 SNS 글은 일시적인 감정에 좌우되었다기보다는, ‘이는 중대한 사안이다’ 하는 점을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행해진 것이었다고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 정부로부터 항의를 받고서 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정치적 목적을 이미 달성했다는 의미인 것이겠지요.
우선 강한 어조로 문제를 제시하고, 다음에는 경제적 압박을 가하며, 마지막은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그런 식으로… 나라 사이의 대립은 증강되는 게 순서인데, 중국 정부는 그 순서대로 패를 하나씩 까고 있습니다.
중국이 일본에 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건 ‘마지막 카드’입니다. 거기까지 가면 일본 국민 역시 공포와 불안으로 중국에 대한 적의가 생겨나, 국교정상화가 한층 어렵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빠른 단계에서 다카이치 수상이 잘못을 인정하면 그만큼 일본이 입을 피해는 적어집니다. 일본의 피해가 아직 버틸 여력이 있을 때까지 문제를 해결하도록 중국은 외교를 리드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다카이치 수상 개인의 발언만으로 문제를 한정시켜서, 일본 정부나 일본인 전체를 ‘공범 관계’로 묶지 않는 억제적인 배려를 표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중국측의 신호가 일본 국민에게 전해졌는지 하는 여부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주요 언론, 신문이나 TV를 통해 문제를 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신호가 충분히 전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혹은 알고 있음에도 무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질문 3:
역대 일본 수상을 되돌아보면 중국에 어떤 입장을 가지든 대만 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신중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명백히 중국의 내정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카이치 수상은 이 금기의 선을 넘어 대만 해협 문제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과 관련하여, 관찰하시는 가운데 어떤 관점을 갖고 계십니까? 이것이 일부 일본 정치가들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이런 경향이 일본 국내에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외교적 표현으로는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편집자)
다카이치 수상이 금기의 선을 넘은 의미 중 하나는 개인의 자질 문제이고, 하나는 정치적 책동이라고 저는 풀이합니다.
개인적 자질 문제란 ‘경솔함’을 의미합니다. 대만 유사 사태와 관련하여 다카이치 수상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중국에 의한 대만 침공’이라는 구체적인 사태를 예시하였고, 그것이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발언했습니다. 아마도 지지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이너서클에서는 여태껏 이와 같은 말을 반복하여 지지층에게 각광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렇듯 ‘항상 하는 얘기’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국회 답변에서도 경솔하게 이너서클에서와 똑 같은 말버릇이 나온 것 같습니다. 경솔하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꼽은 정치적 책동이란 개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카이치 수상은 정권기반이 취약한지라 극우 배외주의자들이 그녀에게 있어 최후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므로 이들을 향한 립서비스로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립서비스라 할지라도 실제로 파급력을 갖게 되어 다카이치 지지자 가운데 ‘금기를 잘 깨부순다’ ‘중국에 대해 세게 나왔다’ 하는 점을 높이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양국 관계가 악화되어 이익을 얻는 사람은 일본 국내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권 기반이 약한 다카이치 수상은 이웃 나라에 대한 배외주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무능을 비판하는 국민의 여론을 바꾸려고 시도했습니다. 당장 지금 주가, 국채, 통화 등이 삼중 평가절하 상태인지라, 리더로서의 다카이치 수상에 대한 견식이나 역량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정으로부터 국민의 눈을 돌리고, 자신의 정치적 연명을 위해 인종주의라든가 배외주의를 이용하는 건 무능한 위정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질문 4:
그와 동시에 SNS상에서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중국 측이 다카이치 수상에 대한 비판을 “반일감정”을 부추긴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 견해를 어떻게 보십니까?
어떤 의미로 질문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국 정부가 다카이치 수상을 향한 비판을 이용해 중국 국내에서의 반일 감정을 부추긴다”는 뜻으로 우선 이해하여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국민 감정은 중요한 정치자원이므로 어떠한 정치가도 국민 감정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만, 감정은 ‘취급 주의’해야 할 정치 자원입니다. 한정된 정치목적을 위해 이용하려고 해도 많은 경우 폭주하여 제어 불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올해 들어 중국에서는 지난번 전쟁에서 일어난 일본군의 잔학 행위를 묘사한 영화가 집중적으로 상영되었습니다. 중국 국내에서의 ‘반일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관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는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만 봐도 820만 명. 전년동기 대비 40% 늘었습니다. 이 데이터를 보는 한 적지 않은 수의 중국인이 일본에서의 환대를 솔직하게 받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중국공산당에게 교사당해 중국국민 사이에 강한 반일 감정이 지금 조성되어 있다고는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지금 시점까지의 중국 정부의 비판은 다카이치 수상 개인에게만 향해 있으며, 일본정부 및 일본 국민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된 이상, 이를 ‘반일적’인 캠페인으로 풀이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질문 5:
다카이치 수상은 대만문제에 개입하며 대만 해협 사정을 이른바 일본의 ‘존망 위기’로 힘껏 결부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그녀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이 매우 높고, 특히 청년층에서는 기록적인 수치를 찍고 있습니다. 중국 국민의 시점에서 보면 이는 대다수 일본 국민의 생각과 선택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일본 민간에서 엿보이는 이러한 중국에 대한 ‘전쟁 정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참된 여론입니까, 아니면 선동된 집단적 정서입니까?
다카이치 수상의 ‘존립 위기’ 발언 이후에도 높은 지지율을 뽐내고 있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높은 지지율의 근거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제 주위에는 다카이치 발언을 지지한다는 인간이 한 명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필터 버블’ 속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셔야 될 게, 일본 젊은이는 자국 역사에 대해 지식이 부족합니다. 특히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수정주의자가 역사 교육에 간섭하게 된 효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아시아 진출과 관련해 이를 부정적으로 기술하는 교과서에 대해 ‘자학사관’이라고 집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이렇듯 불상사를 염려하여 일선 중고등학교에서는 일본의 근현대사 수업 시간을 충분히 들이지 않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현재 다카이치 수상을 지지와 관련, ‘중국과 한판 붙을 각오’ 등을 부르짖는 확신범적인 우익뿐만 아니고, 근현대사를 모르는, 혹은 인터넷 정보만 가지고서 일본의 역사를 이해한 듯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손쉽게 ‘전쟁 정서’에 넘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일리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선동당한 여론’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흑색선전에 선동되어 형성된 ‘망상적 여론’이 현실을 바꿔버리는 일은 역사상 드문 일이 아닙니다. 일본에서도 지금 그러한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질문 6:
우치다 님의 SNS에서도 보면, 중국의 외교 정책에 관심이 있으며 또한 관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다카이치 수상의 ‘진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감추는’ 전략은 중국에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또한 중국에는 많은 반격 수단이 있으며 단계적으로 일본을 ‘괴롭게’ 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일본 국민은 외부의 상황을 참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다카이치 수상의 관련 발언이 얼마나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는지 정말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일본의 일반 국민은 우치다 님이 분석하는 ‘중국의 논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중국에는 일본을 향해 쓸 수 있는 카드가 몇 장 있습니다만 일본은 중국에 대행해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습니다. 이대로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압력이 가압된다면 일본 경제는 깊은 상처를 입을 것이 자명합니다. 이 상황인식을 냉정한 정치가나 고위공무원, 기자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가들도 상황의 엄중함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원래는 비즈니스 엘리트들이 솔선하여 다카이치 수상의 발언의 철회와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촉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처음 입에 꺼낸 자는 곧장 ‘다카이치 지지자’들의 공격목표가 됩니다. ‘중국 스파이’라는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에 따른 불매 운동, 공격적인 전자우편 및 전화가 쇄도하여 사업에 지장을 초래할 것을 그들은 염려하고 있습니다. 다카이치 수상이 발언을 철회해 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말하는 ‘퍼스트 펭귄’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 일본의 재계인들은 지금도 빠져있습니다.
문제는 언론에 있습니다. 주류 언론에서는 ‘중국에게 굴하지 말라’는 호전적인 언설이 지배적입니다. 이런 상황은 언론이 여론을 유도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언론이 여론에 영합하고 있는 상태라고 봅니다. 자기가 만들어 낸 여론에 자기가 영합하는 어리석은 순환계에 일본의 언론은 빨려들어가 있습니다.
일본의 여론은 대체로 어떤 사안이든 ‘15%의 망상적인 사람들’과 ‘15%의 냉정한 사람들’ 그리고 ‘대세에 순응하는 70%의 남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어 있다고 개인적으로 봅니다. 특히 여기서 70%의 사람들은 여기가 다수파다 싶으면 거기에 편승합니다. 지금 이러한 70%의 사람들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습니다.
향후 중국의 압력이 가일층 증대되어 이 70%의 사람들이 ‘냉정히 현실을 바라보게’ 될지, 아니면 ‘도리어 망상적으로 될지’, 저로서는 예측이 불가합니다.
질문 7:
다카이치 수상의 그릇된 발언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외교 위기와 관련해 그녀 자신이 어떻게 수습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발언을 철회하고, 중국에 사죄하며, 총리대신을 사직하는 게 도리에 맞다고 봅니다.
질문 8: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본은 이전에 군사 확장과 이웃나라 내정에의 간섭 등을 통해 그릇된 길을 걸었습니다. 현대 일본의 일부 정치가들에게서 보여지는, 자위대의 ‘전수방위’ 원칙을 깨고 능동적으로 역외 내정에 개입하려는 경향은 일본 국내에서 응당 행해져야 했던 역사적 교훈의 되새김에 대한 일종의 ‘집단적 망각’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잊음’의 배후에 있는 사회 심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희 아버지 세대 (일본에서 이르는 ‘전중파’) 는 자신들이 조선반도와 중국대륙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 가해 경험에 대해 침묵을 지켰습니다. 전중파 세대 전반에 걸쳐 ‘암묵의 이해’가 있었는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마 그들이 ‘전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트라우마적 경험의 기억을 전한다든지 죄책감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 가해의 죄는 우리 세대가 전부 떠안고 아이들에게는 무구한 상태로 전후 민주주의의 일본을 살게 하고 싶다’는 바람이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버지와 장인 모두 중국에서 패전을 맞았습니다. 자신들이 중국에서 어떠한 깊은 죄를 저질렀는지, 그리고 패전 때 어떻게 용서받았는지 두 사람 모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은 아버지와 장인 모두 1972년 중일 공동 성명이 있은 뒤 바로 일중 우호 협회에 가입해 양국 우호를 위해 헌신을 다하며 여생을 보냈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의 신원 인수인이 되어 집을 빌릴 때 보증인이 되어주고 취직을 도와주었으며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어째서 연고나 혈연이 없는 중국인을 위해 이렇게까지 뒤를 봐주는지 어머니가 궁금해하시면 아버지는 ‘중국에는 다 갚을 수 없는 빚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하셨습니다.
그 ‘빚’의 내용물에 대해서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전중파의 집단적인 침묵의 의미는 그들의 자식 세대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전후파는 이른바 ‘말로 다할 수 없는 경험’을 사후 추증 받은 것입니다.
‘역사적 교훈의 집단적 망각’이 증상으로 발현된 것은 1990년대 이래 전중파 사람들이 사회의 제일선에서 물러나 저세상으로 가게 된 뒤에 이야기입니다.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일본이 식민지를 “해방”함으로서 아시아 사람들은 감사해하고 있다’는 식의 전쟁경험 없는 세대 사람들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발언을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아는 척하지 마라’ 하고 일갈당했을 것입니다만 그 ‘일갈을 하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기억 사이 틈새를 뚫고 나오듯 역사수정주의자가 솟아올랐습니다. 그러한 ‘사회심리’적인 조건은 유럽에서의 역사수정주의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전중파 사람들이 자신들이 조선반도, 중국 대륙, 인도차이나 반도, 남방에서 무엇을 했는지, 그 가해 사실에 대해 정확한 증언을 남겨주었다면, 나중에 역사수정주의자의 창궐을 어느정도는 억제할 수 있었을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금 일본 내에서 호전적인 언동을 하는 정치가들이나 이데올로그들을 움직이는 건 ‘굴욕감’과 ‘질투’입니다. 왕년에 식민지로 지배했던 나라, 군사적으로 유린했던 나라가 지금은 국력에서 일본을 능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직시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 굴욕감과 질투가 억압되어, 아시아 이웃 나라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과 공격성으로서 증상화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일단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일본이 쇠퇴한 이유를 직설적으로 말하면 1945년의 패전을 가져다준 이유를 본격적으로 검증하지 않았던 점에 있습니다. 국가의 제도 설계 어느 곳에 문제가 있었는지, 어떠한 정책 판단을 그르쳤는지, 그에 대해 세심히 자기점검하고 제도를 보정하며, 정책의 옳고 그름을 음미하는 지적 습관이 없었습니다.
일본인이 지금부터 패전의 원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웃 나라와 우호적으로 공생하고, 국제 사회에서 명예 있는 지위를 점하는 ‘도의적인 국가’가 될지의 여부에 따라 일본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과연 그런 나라의 기틀을 잡을 수 있을까 결코 낙관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 일본이 바라볼 미래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보족적인 정보를 끼워넣도록 하겠습니다.
Foreign Affair Report 최신호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CSIS 고문)는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지위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일본은 아시아 대륙 외곽에서 중국에 대항하는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라, 글로벌 파트너 지위에 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전제함으로써 미국의 글로벌 파워, 중국의 지역적 우위, 일본의 국제적 리더십이라는 세 가지 힘이 함께 공존하는 환경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미국에 군사적인 협조 자세를 노골적으로 강화하게 되면, 그러한 공존 노선이 위협받는다. 따라서 일본은 미국의 극동에 위치한 부침(浮沈)항모가 되어서는 아니 되며, 아시아에서의 주요한 군사 파트너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한 역할을 미국이 일본에 떠넘긴다면, 미국을 아시아 대륙에서 몰아내고, 중국과의 전략적 합의에 달할 전망을 위축시키며, 미국의 유라시아 안정 강화 헤게모니를 축소케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전쟁 정서’에 휘말려 있는 일본인에게 이 미국인의 현실적이고도 영리한 아시아 전략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독해력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2025-11-23 08:32)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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