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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문제의 본질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3. 24. 07:56

    크라이테리언』의 주선으로 시라이 선생, 시바야마 선생과 탈이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 내 모두 발언만을 수록해둔다. 나머지는 직접 잡지에서 접하기 바란다.

     

     

    저는 일본은 이민에 적합하지 않다고 밝혀둔 이유는 오늘날 일본 사회가 미숙하고 유아적인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타자와의 공생이 불가능합니다. 이렇듯 시민적으로 미숙한 사회에 이민이 들어오면 곧장 여론은 외국인 배척으로 기울고 극우 정권이 탄생합니다. 저는 이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며, 무방비한 이민을 들이는 데 반대해 온 것입니다.

     

    지금 이미 삼백 팔십 만 명의 외국인이 일본에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늘겠지요. 인구의 10%에 달하는 것도 시간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공생할 것인가에 대해 마땅한 의논이 행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늘어나면 사회불안이 증대된다고 하는데, 받아들이는 측인 일본인의 시민적인 성숙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뼈아픈 현실인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외국인을 둘러싼 의논은 노동력 문제라든가 관광 활성화 등 오로지 경제 문제로만 귀결됩니다. 그리고 부동산 매입이라든가, 한편으로는 인종이나 언어, 종교가 다른 인간이 한 곳에 뭉쳐 있으면 불온한 느낌이 든다는 식의 감정 층위에 그칩니다. ‘언어, 인종, 종교, 생활문화가 전부 다른 타자와 공생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만은 아무도 논하지 않습니다.

     

    참정당의 일본인 제일주의주장은 노골적인 외국인 배척(xenophobia)’입니다. 여기에는 국제 사회에서 명예로운 지위를 얻고자 하는긍지가 터럭도 없습니다. 일본 사회가 나빠진 건 모두 바깥에서 온 오물때문이다 하는 건, 19세기 말 근대 반 유대주의 이래의 지극히 위험한 사회이론입니다. 이에 대해 일본의 유권자가 정말로 무방비하다는 것을 보면, 일본인은 유아적이므로 더 이상 이민을 들일 능력이 없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번 특집 테마로 탈이민이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저는 이 말에 유보를 달아두고 싶습니다. 원칙 없는 이민 수용에 제가 반대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나 정책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단적으로 일본인이 유아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유아적인 태도를 유지하겠다고 일본인의 과반수가 마음먹는다면, 이를테면 일본인에게는 이민과 공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동질성 높은 <일본인만의 나라>로 점점 쪼그라드는선택지도 괜찮다 봅니다. 많은 수의 국민이 바란다면 그런 미래가 도래한다 해도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타자와 공생할 수 있을 정도의 시민적 성숙을 염두에 두는미래가 있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후자를 선택하려면 목숨을 건 도약이 필요합니다. 일본 사회는 전통적으로 공감과 동질성을 기반으로 한 공감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계약 공동체로 제도를 바꿔야만 합니다. 공감도 불가하고, 동질성도 없는 타자와, 그럼에도 공생하고, 협동할 수 있으려면 나라를 일종의 계약 공동체로 전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계약만 잘 지켜준다면 그 사람의 인종, 언어, 종교, 생활습관도 신경쓰지 않는통 큰 마음가짐, 이라기보다는 근본이 없는태도를 취하는 인간에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까지 공동체의 개념을 확장하지 않으면 타자와 공생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계약공동체로 전환하지 않는 한, 인구의 10%가 외국인인 사회를 평온히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과연 그런 각오가 일본인에게 있을지 저로서는 그 점에 매우 비관적입니다.

     

    (2025-09-23 14:30)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