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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자와 카나리아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3. 30. 10:07

    어떤 매체든 저 좋을 것을 쓴다. 강연을 의뢰받아도 저 좋을 것을 얘기한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나는 할 수 없다. 필자가 온 생애를 각별히 정직자‘로 살아와서만은 아니다. 젊은 시절에는 예사로 거짓을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직하게 살자’고 마음먹었다. 30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연구자로 살자고 뜻을 굳혔기에 그랬다.

     

    연구자에게는 거짓말이 허락되지 않는다. 아니, 거짓말하는 연구자는 사실 많이 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한다든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든지, 자신의 사견을 주지의 사실과 같이’라고 가장한다든지 하면, 어느새 연구할 인센티브를 잃는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연구자란 것은, ‘모르는 것‘을 알기를 바라고, ‘이해할 수 없는 것’과 조우했을 떄 마음이 떨리며, 사견을 전하기 위해 길 가는 사람의 옷깃을 붙잡고 부탁이니 알아 주시오‘하고 간청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니, 필자가 그리 생각한다는 것일 뿐, 이게 세간의 상식이란 건 아니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것을 전제로 하여 될 수 있는 한 정직한 인간이 되고자 힘써왔다.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을 만나면 알람’이 시끄럽게 울린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만남 그 자체가 부조리인 경우도 있고, 자기 자신의 지적 형틀이 작아서 그 대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라면 자신의 지적 형틀을 일단 해체하고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는 그런 작업을 되풀이하는 생물이다. 따라서 이치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감수성은 항상 높게 설정되어 있다. 누구보다도 먼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에 감응하는 게 주무인 것이다. ‘탄광의 카나리아‘같은 것이다.

     

    카나리아는 가스가 발생하면 바로 죽는다. 그렇다 함은, 연구자는 세상에 독이 가득하기 시작할 때 바로 죽는 모습을 보이는‘게 주된 임무인지도 모른다. 요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만큼 일본 사회의 공기가 탁하다.


    하지만 필자는 연구자인 동시에 무도가이다. 무도가의 경우 잘 죽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야규 무네노리는 『병법가 전서』에서 좌를 보는 마음, 기를 보는 마음‘의 중요함을 설하고 있다. ‘같이 앉은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기를 보는 마음 이것이 병법의 모든 이치다. 기를 보지 않을 시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오래 있게 되고, 그 탓에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고, 남의 기를 보지 않고서 행동하고 말을 하게 되는 바, 자기 주위에 일어나는 일에는 항상 기를 똑바로 보아야 한다.’

     

    있지 않아도 되는 곳에 오래 있는 탓에 조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게 된다든지,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입에 담는 탓에 논쟁이 일어난다든지 몸을 다치게 된다고 무네노리는 충고한다. 무도가는 공기(분위기 옮긴이)가 더러워지는 곳에는 애초에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다. ‘카나리아‘가 되어 남들보다 먼저 죽을 것인가, 무도가로서 몸을 다칠 리스크를 회피할 것인가. 어려운 선택이다. 무엇을 택할지 결정이 서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일단은 정직한 무도가’라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위치에서 건들거리기로 했다. (2025124)

     

    (2025-12-07 10:01)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