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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3. 20. 12:14
일본중학생신문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이 신문의 발행인인 나카가와 다이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이는 중학교 3학년입니다. 혼자서 선거운동을 취재하고 정당의 대표들을 인터뷰하려 애쓰며, 성인 기자들도 감히 캐내지 못할 언설을 거침없이 폭로하는 어엿한 ‘저널리스트'입니다. 요전번 참의원 선거에서는 모 후보자로부터 결정적인 증언을 캐내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나카가와 기자하고 심포지엄에서 동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빠르게 대기실에서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현재 학생회장을 3기 째 역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그의 현안 가운데 하나는 학교 측과 ‘무의미한 교칙‘을 놓고서 강경하게 협상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등하교 하는 도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 규칙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교원들에게 그는 묻고 다닌다고 합니다. 분명히 수업 도중 스마트폰을 만지지 말라는 데에는 일견 합리성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중에 게임이나 메신저를 하면 선생님의 수업에 방해가 되니까요. 하지만 등하교하는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거냐?
‘이런 규칙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다니시는 학교에도 ‘지금 장난하나?’ 싶을 정도로 무의미한 교칙이 있을 겁니다. ‘여기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명확히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하고 교사에게 여쭈는 게 좋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이런 규칙‘이 항상 무의미해서가 아닙니다. 언뜻 보기에 사회의 제도나 규범은 무의미하지만, 사실 깊은 인류학적 지견이 숨겨져 있는 사례가 아주 희소하게나마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 숨겨진 지견을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우선 ’이 규칙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숨겨진 의미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똑부러지게 ‘대체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하고 물어야만 합니다.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들 따르게 되어 있으니’ 하고 지키는 건 자신의 지적 성장을 스스로 저해하는 행위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여러분만의 ‘의미를 측정하는 도량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갖다대어 ‘의미가 있음/없음’을 판정합니다.하지만 세상에는 여러분이 마련해 놓은 ‘측정기구‘로는 고량할 수 없는 의미가 무수히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성장한다는 것은 바꿔 말해 자신이 마련해 놓은 도량형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데 있습니다. ‘길이‘밖에 재지 못했던 측정도구는 ‘무게’나 ‘속도‘를 재지 못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끝 모를 깊이와 넓이를 알려거든 항상 ‘도량형’을 쇄신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대체 여기에 무슨 뜻이 있는지요?’ 하고 묻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의미 따위 내 알 바 아니다. 다들 따르는 거니까 따를란다 내는.’ 이런 사람은 ‘도량형‘의 갱신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지적 성장을 단념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무의미에 내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아무 의미 없는 일에 잘 견디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시험공부를 잘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간판을 따고 좋은 직장에 다녀도 아마 그 사람은 게서도 ’무의미에 대한 내성‘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의미 없는 일에 죽을 힘을 다하며 생애를 마칠 위험성이 있습니다.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해로운‘ 일을 잘 해낼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하는 물음을 절대 잊지 말아주세요. 이 할아버지가 정말 부탁드립니다.
(『형설시대』9월호 8월 25일)
(2025-09-16 11:51)
글쓴이: 우치다 다쓰루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오길비: 으으.. 6개월치나 밀렸다… 정말 온힘을 다해서 일했던 그 구간만큼 비게 되었(?) 습니다. 도와주세요. (대체 뭐를?)
물론 제가 맞는 직역에서 100%의 역량을 낸건 아니지만..
이 블로그는 한낱 블로그질일 수도 있지만 나름의 신뢰로 돌아가는 장인데 이성교제로 따지면 상대와 다 어그러진 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일 하느라고..
여기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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