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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려지는 태평양전쟁의 기억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3. 6. 10:35

    지난 전쟁의 기억이 점점 옅어져간다. 직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시나브로 저승에 가는 바람에 전쟁에서 졌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전하는 말을 어디서도 접할 수 없다.

     

    필자는 1950년생이므로 전쟁이 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부모님들은 전중파였다. 아버지는 만주사변이 일어난 해에 만주로 건너갔다. 1946년 베이징에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과연 무슨 일을 했는지 당신께서 소상히 밝힌 적은 없었다. 그러나 만년에 쓰신 수기에 따르면 친일[부역 옮긴이] 중국인을 조직하는 정보 공작에 가담했다고 하였다. 아버지의 일을 도왔던 중국인들은 이 애비와 친분이 있었다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도 살해당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세모가 되면 여느 가정 할 것 없이 국기를 게양했다. 우리 집도 그랬다. 연말에 이르러 부친은 창고 깊숙한 곳에서 너덜너덜해진 히노마루를 꺼내왔다. 노란색과 검정색으로 번갈아 칠해진 대나무 깃대를 조립하고서, 그 상단을 황금색 유리알로 장식해놓고서는 국기를 게양했다. 하도 어렸으니만큼 필자는 그런 축제 비슷한 일이 퍽 맘에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한 해가 저물어가자, 아버지에게 ‘올해 일장기는 언제 달지요?’ 하고 여쭸더니, 아버지는 마치 먼 곳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이제 그만 달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계절적인 행사가 하나 사라진 셈이므로 필자는 적잖이 실망했다. 그 실망감이 고희를 넘은 지금까지 기억날 정도다. 그쯤 하여 이웃집들도 일장기를 안 달기 시작했다. 어엿이 “국기 게양은 군국주의적 사고의 산물이므로 철폐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나이를 어지간히 먹고 난 뒤에 그것은 1958~9년 무렵의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그만 달자꾸나하는 아버지의 말씀에는 사실 대일본제국 사망 추념도 이제는 13년이니 그만 끝내자하는 속내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곤 한다.

     

    메이지 시대 선인들이 쌓아놓은 근대 국가를 무모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와해시켰다는 사실. 게다가 왕년에는 세계 5대 강국이었던 제국이 미국의 속국으로 전락한 데에 옛 제국 신민들은 자존심을 상했으며 수치로 여겼다. 그러나 그것도 13년 쯤 지났을 무렵에는 죽은 자식 불알 그만 만지고 새로이 일본국 평화헌법 아래에서 민주적인 국가의 초석을 쌓아나가자, 그렇게 마음들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자존심 문제라든가, 그들이 미래 일본에 기탁했던 것들, 그 어느 것도 이제는 말로 전하는 사람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았다.

     

    (주간 AERA 815)

     

    (2025-09-03 10:05)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주요 저서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하루키를 조심하세요』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오길비: 저 또한, 식민지 외인의 후손으로서, 제가 전해 들은 지난 전쟁의 삽화를 밝힙니다.

    전쟁 기간에 이따금, 조선의 소학생(초등학생, 적어도 저학년)들은 수업이 중단되고, 근로노력에 동원되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소녀들에게는), 숲 속에서 무슨 열매를 채집해 오라고 했습니다. 그걸로 군복을 염색한다고 하였습니다.

    많이 주워 온 아이에게는 상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저희 조모(1930년대생), 그 부상이 갖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열매를 많이 모으지 못해서, 분한 나머지 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모의 부친이 일본인 교장에게 찾아간 뒤, 원래는 상으로 받아야 했던 그 고무신을, 거저 받았다고 합니다.

    한편 제 고조부(아버지의 증조부), 남선 벌교 일대의 지주였다고 합니다. <태백산맥>의 김사용 노인은, 작가 조정래 선생의 창작입니다. 구한말(신분제 동요와 상업의 융성), 해방(토지개혁) 등 이런저런 집안 내력이 있습니다. .

    (미야자키 하야오의 2023년작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소년 버전으로 매우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였습니다. 제가 미야자키 유파의 사람, 구로야나기 테츠코 유파의 사람이라는 자각은 근년에 생긴 것입니다. 일종의 의붓조부모죠. 물론, 가상 인물인 김사용 노인의 유지를 받드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제가 짊어졌었던, 짊어져야 할 짐이 버겁기도 합니다. 그리고, 괜찮습니다. 혼자가 아니니까요. 더구나 실제로 스메르쟈코프는 여느 카라마조프집안에나 있는 법이니까요.

     

     

    , 그리고 <태백산맥> 읽어 보시랑께. 옴죽옴죽허는 꼬막 맛을 한번 보면 잊지를 못헌당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