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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치다 다쓰루론 제3부』저자 서문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2. 19. 18:29

    박동섭 선생의 우치다 다쓰루론 제3가 순조로이 집필되고 있다 한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평행하여 놓고 쓰는 덕에 일본어판의 들어가며부분을 애써 내게 보내주어 여기 공개한다. 사상가로서의 자신에 대해 누가 논한 문장을 스스로 본인 소유 블로그에 올리는 것도 참 겸연쩍은 일이지만, 혹시나 만일 이 글을 읽고서 일본에서도 한번 출판해 볼까?’ 할 일본의 기특한 편집자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게재할 따름이다.

     

     

    독자 여러분, 이 책에 눈길을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으레 발단이 있듯이, 이 책 역시 기묘하고도 살짝 운명적인 첫 순간이 있었습니다. 어찌 잊겠습니까, 제가 침대에서 읽는 비고츠키라고, 참말 몽글몽글한 제목을 앞세웠다곤 해도, 사실은 어렵고 딱딱한 학술서를 끙끙거리며 집필하고 있던 밤을요. 야심한 밤의 분위기를 핑계로 레프 비고츠키에 대한 애닳는 사랑을 온라인 상에 불태우고 있던 찰나, 저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딩동 하고 왔습니다. 보낸이는 빨간소금 출판사대표님이었어요.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었던 지라, ‘이건 결국 대표님이 내 페이스북 글을 읽으시면서 텔레파시 비슷한 걸 보낸 거구나!’ 하는, 조금 몽상적인 사고에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인생이라는 이름의 각본가는 우리의 사소한 예상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는, 정말 엄청난 반전을 마련해 두는 법이옵니다.

     

    대표님이 이르시되, “사상가를 하나 정해놓고, 진득이 앉아서 논해보는 철학서를 좀 써주셨으면 해서요…”. 아이쿠야! 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대표님이 그린 장대한 계획의 단초조차 못 되었던 셈입니다. 보아하니, 대표님이 꽤 오랫동안 숙고에 숙고를 거듭해 구상해 오셨던 기획의 글쟁이로 생각지도 못한 운명의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제가 키보드에서 손을 막 뗀 순간에, 대표님이 메시지를 보낸 그 타이밍이라는 게, 천문학적인 확률로 겹쳤다는 겁니다――딱 그 정도 의미의, 그러나 너무도 신통한 우연의 일치. 인생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센스 있게 깜짝 이벤트를 열어주는구나, 무지막지한 감동을 받은 연고입니다.

     

    어찌됐든, 저는 열의로 충만한 대표님의 기획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동안 제 머릿속에 비고츠키 선생의 모습이 저 멀리서 아른아른 보이나 싶더니, 그것은 곧 우치다 선생이야말로 이 기획에 딱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하는 메시지로 변하여 제 목구멍까지 차오른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밥상 뒤엎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제안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내질렀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주제를 우치다 다쓰루론으로 한번 바꿔보시는 게 어떻겠어요?’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대표님은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거 진짜 재밌는 얘기네요!’ 하고 파안대소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제 화려한 변용은 선뜻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마치 처음부터 일이 그렇게 진행되어 왔던 것마냥, 일사천리로 추진되어 왔던 것입니다.

     

     

    사실을 말씀드리면, 지금껏 우치다 다쓰루를 논한 책을 두 권가량 세상에 선보인 바 있습니다. 그러나 분량 및 문체의 제약이라는 이름의 어른의 사정이라는 게 있는 겁니다. 숫제 소화불량 같은 느낌인데, 말하고 싶었던 내용의 절반도 채 하지 못한 그런 찝찝한 느낌이 항상 들었습니다. 한데 이번에는 약 400 쪽이라는 폭넓은 지면의 바다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거리낌 없이 우치다 철학의 심연에 푹 젖어들어 맘먹은 대로 붓이라는 이름의 물갈퀴를 휘저을 수 있는 겁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쓴 기획서가 빛의 속도로 받아들여져,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우치다 다쓰루론3부작이 될 이 책의 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일이 너무나 순조로이 진행되었으므로, 지금에 와서도 종종 이건 뭔가 장대한 깜짝쇼가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우치다 선생님을 항상 조심하세요. 자나깨나 불조심, 우치다 센세 조심. – 옮긴이)

     

    그러니까 이 책이 탄생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기적적인 우연인 게 진짜 맞다면, 그 본질은 단순한 연구자와 연구 대상이라는 건조한 관계성을 초월한, 단연 좀 더 뜨겁고, 개인적인 만남에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짐짓 객관적인 척하는 학자의 가면을 일단 벗어던지고, 한 사람의 열광적인 팬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열광적인 팬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자칭 제자로서, 우치다 다쓰루라는 희유한 사상가를 논하겠다는, 다소 무모한 도전을 일삼게 되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우치다 다쓰루의 저작을 읽는 행위란, 백의를 입은 연구자가 수술칼로 대상의 살갗을 째는 듯 그런 냉정한 분석작업이 결단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경애하는 음악가의 라이브에 매번 참석하고, 부클릿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음원을 듣고 또 듣고, 그 영혼의 울부짖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광팬의 몸짓과 흡사합니다. 아니면 고등학생 시절 가방에서 스리슬쩍 LP판을 꺼내 이거 들어봐. 진짜 장난 아니야하고 독특한 어조로 지고한 음악을 은근히 전도해 주었던 학급 친구의 모습과도 겹칩니다(이제 아날로그 LP를 모르시는 세대도 있을지 모르니까, 부디 그런 시대의 깨소금 맛 나는 풍경을 상상해 주세요 / 옮긴이: 사람 무시도 적당히 하시죠. CD시절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팬이 바라는 참된 의도는, 결코 강요가 아니라, 하지만 열정적으로, 타자를 끔뻑 넘어가게 하는것이랍니다. 너무 강권하게 되면 도리어 상대가 스스로 찾아냈다하는 그런 애틋한 감정을 빼앗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서점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이 알고보니 인생을 바꿨던 운명의 책인 것 마냥 꾸며야 된단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이, 독자 여러분께서 우치다 선생님과의 숙명적인 만남을 연출하는 자그만 계기가 되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저는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을 스승으로 우러르며 그 사상을 제자의 입장에서 탐구하는 바입니다. 이건 단지 스승의 말씀을 꿀떡꿀떡 삼킨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스승과의 대화하는 운동을 통해,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그리고 나 말고는 발설될 도리가 없는 자기만의 말을 직조해내는 것. 이게 바로 우치다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제자의 참된 도리란 점을 말씀드립니다. 무릇 앎의 탐구란 대상과 안전한 거리를 두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연구자가 대상에 깊이 감염한 나머지, 연구가 끝날 때쯤에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독서란, 다른 이의 생각이란 것에 스침으로써 자신을 변용해 가는, 짜릿한 모험이나 다름없습니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만, 학술계에서 이라든가 제자라 하는 주관적인 자리매김은 빈축을 사기에 손색이 없는 짓입니다. ‘편애로 가득찬 작가론’? 이거 졸업논문으로 썼다 하는 날엔, 지도교수한테 이건 논문이 아니라 사랑고백이잖아?’ 하고 애정이 담긴 질책이나 받고 끝날 일이지요. 하지만 저는 구태여 말하렵니다. 아무리 사랑타령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충분히 비평적일 수 있으며, 학술적으로 풍양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대관절 무슨 말이냐고요? 제가 생각하는 학술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그것은 단일한 양식이나 목소리에 지배당하는 닫힌 세상이 아니라, 장대한 관현악단이나 마찬가지라고.

    (* 박동섭 선생이 자주 쓰는 말. 일본어로는 흔히 ゆたか라고 한다. – 옮긴이)

     

    어떤 이는 장려한 교향곡을 작곡하고, 어떤 이는 그것을 화려하게 지휘합니다. 또 어떤 이는, 1 바이올린 주자로서 눈부신 독주를 켭니다. 그럼 제 역할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딱 여기다 싶은 장면에서 !” 하고 울려퍼지는 트라이앵글 연주자일 겁니다. 언뜻 보면 보잘것없고 없어도 상관없다 여겨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퍼런 단음이 보태짐으로 하여 악곡 전체의 음향이 보다 풍부해지고, 듣는 이의 마음에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는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선보인 사견’, 다시 말해 아무리 세상이 넓다 한들 이런 말을 하는 인간은 아마 나 밖에 없으리하고 스스로 느낀 허다한 문장은 정말이지 말씀드린 트라이앵글 음색과도 같은 것이랍니다. 자료라는 바다를 헤엄치는 가운데 이거 보시게? A라는 건, Z라는 것과 사실 물밑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데?’ 하고 번뜩이는 순간. 그건 정말이지 저밖에는 칠 수 없는 음이자, 독자 여러분이 채비하실 악기를 발견토록 해드리고자 할 따름인데, 약소하나마 힌트를 잡아보시기를 저는 빕니다.

     

    그리고 2025년이라는 시간과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우치다 다쓰루의 사상을 소개하는 일에는,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의 저작은, 이른바 보이지 않는 먹물로 쓰여진 고대 문서입니다. 그 자체는 완성된 해답을 안겨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2025년을 사는 우리가 안고 있는 어려움과 바람, 그 애달픔이라는 을 텍스트에 비추었을 때, 종이 위의 문자는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유장히 입을 뗄 것입니다.

     

    우치다 다쓰루를 읽는다는 건, 완성된 지도를 믿고서 보물을 찾아 나서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타자성’*, 우리 자신의 유일무이성이 서로 불꽃을 튀기며, 공명하는, ‘기적적인 춤판에 뛰어든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이런 역동적인 춤을 통해 우리는 우치다 다쓰루라는 사상가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장소에 임하는 산 스승으로 삼고서 함께 춤추는 가운데 재창조하고, 동시에, 그라는 촉매를 통해, 어제까지의 나와는 다른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셈입니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말한 철학개념어로서의 타자이다. 절대적 살의를 느끼게 되지만 결국에는 외경과 함께 환대해야 마땅한 그런 존재를 의미한다. – 옮긴이)

     

    제가 생각건대, ‘이것이 진짜 우치다 다쓰루다라든가, ‘절대적이고 유일하게 옳은 우치다 다쓰루 독해법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걸 찾으려 드는 태도는 그의 사상이 담지하는 부단한 재탄생과 저력 그 자체를 질식시키게 될지 모릅니다. 그가 건네주는 가장 큰 선물은 완성된 이론체계가 아니라, 세계와 인간을 되묻는, 어디 또 메울 곳이 생길지 예측 불가능한 땜빵을 유지 보수하기 위한, 길이 잘 든 그러나 막강한 생각 공구함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 극상의 공구함을 손에 들고서, 우리 스스로의 난문을 진득하게 살아내기. 스승과 대화를 이어나가며 자기변용을 불사하고 새로운 내 모습을 계속 만들어가기. 이야말로 스승의 지성을 정녕 계승하는 것이리라 저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이 책이 독자 여러분에게 우치다 다쓰루 사상과의 숙명적인 만남의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그 만남이 여러분 자신의 악기와 함께 새로운 자신으로의 변용을 향한 모험을 떠날 서장을 선포하는 팡파르가 된다면 저자로서 그 이상의 기쁨은 없겠습니다.

     

    (8 25)

     

    (2025-08-25 08:10)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야구 팀의 외야수(外野手)와 같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나는 좋아한다. 베토벤 교향곡 제5스켈소의 악장 속에 있는 트리오 섹션에도, 둔한 콘트라베이스를 쩔쩔매게 하는 빠른 대목이 있다. 나는 이런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스 연주자를 부러워한다.

     

    전원 교향악 제3악장에는 농부의 춤과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나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서투른 바순이 제때 나오지를 못하고 뒤늦게야 따라나오는 대목이 몇 번 있다. 이 우스운 음절을 연주할 때의 바순 연주자의 기쁨을 나는 안다.      

     

    팀파니스트가 되는 것도 좋다. 하이든 교향곡 94번의 서두가 연주되는 동안은 카운터 뒤에 있는 약방 주인같이 서 있다가, 청중이 경악하도록 갑자기 북을 두들기는 순간이 오면 그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자기를 향하여 힘차게 손을 흔드는 지휘자를 쳐다볼 때, 그는 자못 무상(無上)의 환희를 느낄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공책에 줄치는 작은 자로 교향악단을 지휘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토스카니니가 아니라도 어떤 존경받는 지휘자 밑에서 무명(無名)의 플루트 연주자가 되고 싶은 때는 가끔 있었다. (피천득)

     

     

    오길비:

    모두가 CEO가 될 수는, 또는/혹은 버크셔 해서웨이같은 업종의 CEO 비슷한 게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요근래 깨달았습니다. 작은 조직에서 지켜보니 정말 십년은 감수할 일이더라고요. れてしまう

    플루트는 단 한 번도 손에 대본 적조차 없지만, 쇼와의과대학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오구치 가쓰지씨가 중학생 시절에 다루던 바로 그 플루트라면 되고 싶기는 합니다. “우치다 군,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해서 뭐가 될라고 그래?” 옆에서 바라보며 실실 웃던 소년 오구치의 플루트말예요.

    아 맞다. Y모 출판사의 멍케터께서 우치다 선생님을 대하여 약간 바람이 빠진 뉘앙스의 센세センセイ라고 거리낌 없이 칭하시는 걸 보고 기절할 뻔했습니다. , ‘센세センセイ라고 부르며 같이 손하트 하는 투샷을 찍어도 되는구나?? 그제서야 납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