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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헌법 제 9조 2항의 현실성에 관하여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1. 20. 19:18
TRANSIT이라는 매체와 가진 일본의 제2차 대전 이후 80년 간을 되돌아보는 결산적 성격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이중 ‘일본국 평화헌법에 대하여’ 부분만 따보았다.
―― 일본은 20세기 중후반 내내 경제가 성장하면서 사회 자체가 크게 변화해 왔습니다. 그러한 변화 가운데 전쟁에 관한 가치관이라든가 헌법에 대한 근본적 의논이 어떤 식으로 변천해 왔는지 고견을 여쭐 수 있을까요?
제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은 죄다 전쟁을 겪어본 양반들이었습니다. 상당수는 천황제와 관제 ‘신토’ 신앙에 비판적이었습니다. 천황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호언하던 어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본국 헌법에 악담을 퍼붓는 어른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헌법은 패전국 국민인 일본인이 유일하게 뿌듯함을 느낄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 말고는 이를 달리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일본은 세계 5대 강국 중 일각을 차지한 국제연맹의 상임 이사국이었으며, ‘아시아의 맹주’를 자임했던 제국이었습니다. 그런 일본이 필요 없던 어리석은 전쟁을 벌였다가 져버려서 제국은 와해되고, 국가주권을 잃었으며, 미국의 속국으로 전락했습니다. 옛 제국의 신민이었던 사람들이 패전으로 말미암아 경험했던 상실감과 굴욕감, 그것은 전쟁이 다 끝나고 난 뒤에 태어난 입장의 저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패전 이후 일본인이 더욱 평화 헌법을 고집했으리라 짐작만은 됩니다.
일본국 헌법 제9조 1항은, 1928년에 조인된 파리 부전 조약 [켈로그-브리앙 조약으로도 알려져 있다. – 역주] 과 거의 문언이 같습니다. “전쟁을 국제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삼기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전쟁을 국가 정책의 수단으로 삼기를 포기한다”는 맹약에 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대일본제국이 서명했습니다. 상호불가침 조약은 최종적으로 세계 63개국이 비준했지만,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전쟁을 막고 싶거들랑, 논리적으로는 “육해공군 및 그 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간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아니한다.”는 9조 2항이 필요하게 됩니다.
9조 2항은 으레 이상주의이자 비현실적이라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그러나 1946년 시점에서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조항이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피해규모가 알려짐에 따라, 미국에서는 명령권자인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동시에 고조되었습니다.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을 하고 있는 이상, 다음 전쟁이 일어날 시 핵전쟁으로 비화됩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경우 인류는 멸망합니다. 어떻게 다음 전쟁의 도래를 막아야 할 것인가? 헌법 기초에 관여했던 GHQ의 ‘뉴딜 세대’들이 사량했던 사항은 무엇보다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근대 시민 사회 모델을 국제 사회에 적용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근대 시민 사회는 로크, 홉스, 루소가 이론화한 것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멈추기 위해 거대한 ‘리바이어던’인 국가와 정부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권력과 실력을 맡겨야 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사인’들의 항쟁을 그만 두게 하기 위해 ‘공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정은 공공이 내립니다. 이에 따르지 않는 사인은 공공이 실력으로 말미암아 처벌을 내립니다.
이러한 근대사회의 작동구조를 국제사회에 적용시키려고 했던 게 유엔 창립의 아이디어입니다. 개별 국가는 자신들이 가진 군사력의 일부, 국가 재산의 일부를 유엔에 공탁한 결과 국제 사회에 군림하는 일종의 ‘리바이어던’을 창조해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앞에서 말한 리바이어던이 나서서 조정하고, 옳고 그름을 판정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유엔군이 출동하여 분쟁을 매듭짓습니다. 그런 식으로 구상했습니다.
근대 시민 사회가 성립하고 국민국가가 만들어진 뒤 국민 사이에 벌어지는 분쟁은 사적인 다툼으로써 끝을 보는 게 아니라 사법으로 매듭짓는 법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래서 똑 같은 수순을 국제사회에 끼워 맞춰보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핵전쟁으로 인류가 망하는 결말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대 상황을 고려해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추론이었지요.
그뿐만 아니라, 헌법 9조 2항을 유심히 살펴보면 일본이 ‘유엔군에 편성’될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유엔군이 가입국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개입하는 일은 공공성 있는 행동이므로 헌법에서 포기하고 있는 “국가 정책의 수단”이 애초에 아닙니다. 그리고 이 유엔군의 군사행동은 경찰이 범죄자를 잡기 위해 행하는 물리력 행사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관념상 간주되기 때문에, 이를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무력에 따른 위협 혹은 무력 자체의 행사”와는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적 결투’이기 때문입니다.
일본국 헌법 9조 2항은, 개인간의 다툼은 ‘결투(duel)’*로 따지지 말고, 개인들보다 상위에 있는 공공에 의거한 ‘사법적 개입’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는 근대 시민 사회의 발상을 비로소 국제 관계에 적용하기 위해 들어간 셈입니다. 개념 자체는 매우 합리적입니다. 결국, 헌법 9조 2항은 국제 사회가 앞으로 갖춰야 할 자세를 만방에 표방한 것입니다.
[* 유럽에서는 18~19세기까지 정말로 권총을 사용한 결투 관행이 남아 있었다. – 옮긴이]
물론 GHQ는 ‘일본을 군사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을 최우선시했고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헌법에 9조 2항을 집어넣은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언젠가 헌법의 특정한 이념을 따르는 나라가 된다면 유엔군에 군사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국제 분쟁”이라는 말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에 말이지요. 이런 식으로 생각의 지평을 넓혀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는 이 헌법이 제정되고 나서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발상이 파탄났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헌법 9조 2항은 비현실적인 몽상’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어디까지나 ‘후지혜’[hindsight – 옮긴이]입니다. 헌법이 제정된 1940년대 시점에서는 오히려 ‘1928년 켈로그-브리앙 조약이 비현실적인 몽상이었음이 드러났다’고 상정하는 방향이 냉정한 현실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고서도 그대로 가져다 쓴다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이었습니다. 기존의 9조 1항과 같은 생각으로는 전쟁을 멎게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주지의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바로 이 2항이 덧대어진 것입니다.
과거에 헌법 9조 2항이 매우 ‘현실적’인 합의였던 역사적 시점이 존재하고, 바로 이때 2항이 쓰여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가장 세련되고 국제감각이 넘치는 헌법 조문을 가졌다는 게 패전한 일본인들에게는 몇 안 되는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환호성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제 나이또래 세대에 ‘노리오’라든가 ‘노리코’*라는 이름이 결코 적지 않은데 이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 憲은 곧 法을 의미하고 ‘헌병’(법질서를 집행하는 군인)할 때의 憲이다. 法은 사람 이름으로 쓸 때 ‘노리’라고 읽는다. 이런 방식으로 孝효는 ‘타카’, 淑숙은 ‘요시’라고 읽곤 한다. 결국 효식이는 ‘타카오’, 숙자는 ‘요시코’가 된다.
한편 이순자 여사 등 ‘~자’라는 이름이 한국 기성세대에도 결코 적지 않은데, 바로 일본식 작명법을 따른 것이다. 간혹 러시아어가 어렵다느니 일본어가 어렵다느니 하는데, 자신이 직접 그 나라 사람이 된 것 마냥 생각하면 이해가 빨라진다. - 옮긴이]
제가 아는 한 1960년대까지 일본국 헌법을 놓고서 ‘부끄러운 헌법’이라든가 ‘비현실적’ 운운하며 비판하는 자국민은 없었습니다. ‘개헌’론이 사람들 입에 부쩍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전쟁의 기억이 잊힐 무렵이었습니다. 말인 즉 원자폭탄 투하 이래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전쟁 등 무수한 전쟁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핵무기가 쓰인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전쟁은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개헌론은 핵전쟁이 안 일어날 거라는 낙관을 스리슬쩍 전제로 해놓고 있습니다.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고 싶다’는 개헌파의 소망은 ‘일본이 핵무기로 공격받을 일은 없다’는 아무 근거도 없는 예측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만이 과거에 핵무기로 말미암은 공격을 받았다는 엄연한 사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런 낙관을 가질 수 있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2025-08-22 18:43)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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