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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없는 일본 안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1. 21. 18:21
『통판생활』*의 ‘트럼프 특집’ 기사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써서 부쳤다. 썼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원고료가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오고 나서야 비로소 떠올랐다. 그저께도 ‘인권 스콜라’라는 곳에서 엇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어째서 일본에 있는 정치학자와 언론인들은 ‘미일 안보 조약** 폐기 이후에 도래할 선군정치’의 위험성에 상상력을 행사하지 않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우리나라에도 ‘~생활’식 작명법을 채용한 게 분명한 『자동차생활』이라는 잡지가 있을 정도입니다. ‘통판’은 통신판매의 줄임말인 즉, 홈쇼핑입니다.
** 그런데 한미동맹이라든가 그 부수물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볼멘소리를 하면, 단세포적인 반응이든 점잖은 대꾸든, 상당수 한국 사람들이 언짢아 한다는 사실을 요사이 알게 되었습니다. 원문은 ‘일미 안보 조약’ 입니다. – 옮긴이)
‘미국 없는 일본의 안전보장’
이라는 제목을 달기는 했는데, 필자 생각에는 이 주제를 놓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본 정치가라든가 고위공무원, 정치학자 하나가 없을 것이다. 아니 뇌리에 잠시 스쳤기는 했겠으나 ‘진지하게’는 안 한다.
‘미국 없는’이란 말은 미일 안보 조약이 폐기되고 난 ‘뒤에’ 일어나는 안보현상을 의미한다. 전후 80년 동안 일본 정부는 ‘미일동맹을 기반으로 한 안보전략’에만 의존했으며, 그것 말고는 안보 정책과 관련해 계량적으로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없었다”고 나는 단언한다.
일전에 어느 고명하신 정치학자와 대담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미일 안보를 제외한 안전보장 정책에 어떤 것들이 있을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라고 질문을 던졌다. 상대의 견식을 떠보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의 발로에서 질문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정치학자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마치 징그러운 걸 본 마냥 내 앞에서 눈만 끔뻑끔뻑할 뿐이었다. 옳다구나, 일본 주류 정치학자들은 ‘미일 안보 이외의 안전보장’은 아예 입에 올릴 생각조차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미일안보조약은 체결 당사자국 가운데 어느 한 쪽이 ‘해제’를 선언하면 1년 뒤에 자동적으로 해소된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미군의 억지력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독박 군사 동맹은 미국에게 손해일 뿐이므로 그만 하자는 얘기를 꺼낼 가능성이 있다.
일본 언론이 다루기를 껄끄러워하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할 것 없이 미일안보조약 폐기론자가 존재한다. 그 대표격으로 공화당 소속의 론 폴 하원의원이 있다. 그는 유엔과 나토를 탈퇴하라고 또한 주장했다. 미일 안보 조약의 해제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정치가가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일본의 언론은 보도하지 못했다. 따라서, 아마 대부분의 일본인은 미국 내부에 이러한 논의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일본 없는 안전보장’을 계속 고려해 왔는데, 일본은 ‘미국 없는 안전보장’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건 안보조약 해제라는 경착륙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고, 미국이 단계적으로 일본의 방위와 관련한 개입을 축소하게 될 때 일본에는 미국의 자비를 구하며 매달리는 것 말고는 타개책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게 일본 외교가 처해 있는 엄연한 상황이다.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겠지만 80년 동안 사고를 정지해왔기에 이런 귀결이 나오는 것이므로 어쩔 수가 없다.
미국이 일본의 국방은 스스로 생각하라며 이혼서류를 내밀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 거창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 일본인이 귀추적으로 참조할 수 있는 국방 구상은 ‘대일본제국 전쟁 지도부’가 했던 그것밖에 없다. 따라서, 미일안보조약 폐기 다음에 오는 건 그 이름도 아련한 ‘선군정치’이다. 이 불길한 조짐을 지금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통판생활』 7월 6일자)
(2025-08-25 07:25)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번역자 잡소리: 제가 요즘 넓은 의미에서의 체술에 관심이 많은데,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하면 훈련에 있어서 ‘비대칭성’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사 시절에 높으신 분의 부대 시찰을 앞두고 중대장님이 대응논리를 투철히 준비해두라고 하셔서 아직도 기억나는 건데요, 왜 한미동맹이 있어야 하느냐 하면, “미국의 정보자산을 활용할 수 있고, 그렇게 절감된 국방비가 병사복지 증진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정치훈련(정신 전력) 공부한 내용 다 까먹었습니다.
간혹 일본 분들 가운데 국민개병제를 하면 젊은 놈들이 말 좀 잘 듣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거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밝혀진 특정 지역의 통설에 의하면) 소용없습니다. 마법탄환[silver bullet]은 없습니다. (한국에도 그런 나사 빠진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아무리 철권통치자라도 그걸 반년 이상 하지는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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